유부남에게 바람 넣지 마세요
아무(빈)말 대찬치의 후유증
2023. 12. 23.< 사진 임자 = 글임자 >
"얘들아, 아빠가 진짜 어려 보이긴 한가 봐."
에구머니!
망측해라!
누가 들을라!
이 양반이 순진한 어린이들 앞에서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신가?
"팀장님이 나보고 총각인 줄 알았대."
그 양반이 또 시작했다.
인사이동이 있고 직원이 바뀌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호구 조사를 하면서 하나마나한 빈말을 하면서 직원들과 만담을 나눈 결과를 퇴근 후에 내게(굳이 내가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들려주며) 착실히 보고하는 일 말이다. 이렇게나 그 양반은 성실한 가장이시다.
이제 해가 바뀌고 팀 멤버가 바뀐 지 일주일이 됐으니까 슬슬 시작할 때도 됐다.
"물어볼까 말까 하다가 전부터 궁금해서 물어본다면서 아빠보고 결혼 했냐고 그러더라. 결혼했다고 하니까 총각인 줄 알았다고 놀라더라니까."
아니 내가 더 놀랍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총각인 줄 알았다느니 어쨌다느니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도 할 수 없고 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일)에 내가 더 놀랐단 말이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이 말을 하면서 그 양반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총각은 총각인데, '노총각'인 줄 알았다 이 말이겠지."
사람 너무 기고만장해서 앞뒤 안 가리고 우쭐대는데 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나는.
행여라도 본인이 정말 그렇게 보인다고 착각이라도 하고 엉뚱한 행동을 하고 다닐까 봐 미리 단속도 할 겸 말이다.
"나보고 혹시 그럼 애도 있냐고 물어보길래 있다고 했지."
"어휴, 너희 아빠 또 시작한다, 얘들아."
"애가 몇 명이나 있냐고 해서 두 명 있다고 하니까 두 명이나 있냐고 놀라는 거 있지."
"용케 결혼도 해서 자식이 둘이나 있다고 해서 놀란 거라니까 그러시네."
"애들이 몇 살이나 됐냐고 물어봐서 첫째가 5학년이라고 하니까 더 놀랐다니까."
"적당히 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 빈말이 그렇게 듣기 좋아?"
"아니야, 사람들이 어디 가면 다 나 총각인 줄 안다고."
"그러니까 노총각인 줄 알았는데, 그 성격에 결혼도 못했을 것 같은데 결혼까지 한 게 용해서 그런 거라니까."
"아빠가 그렇게 어려 보이나? 얘들아, 너희가 보기에도 아빠가 그렇게 어려 보여?"
"어려 보이는 게 아니라 속 없어 보여."
"하여튼 너무 어려 보여도 문제야, 문제."
아니,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하는 게 문제야, 문제.
이번엔 정말 빈말을 잘하시는 분이 팀장님으로 오셨나 보다.
아니지, 저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지.
본인 입으로는 사람들이 다들 자기를 총각으로 알았다느니 어쨌다느니 하지만 그 진실은 내가 모르는 거니까.
왜 저렇게 어려 보인다는 말에, 총각이라는 말에 기분 좋아하는 걸까?
아,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일 게야.
그런데 가만,
들어보면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거 보니까...
혹시?
시나리오 짜 놓고 인사철마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거 아니야?
매번 멘트가 똑같잖아.
응용력이라고는 없는 양반 같으니라고!
융통성이 뭔지도 모르는 양반 같으니라고!
적어도 어휘 한 두 개쯤은 바꿔줬어야지.
진부해, 대사가 너무 진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