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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pr 04. 2024

아까워서 잠을 못 자겠어

아까운 봄날에

2024. 4. 2.

<사진 임자 = 글임자 >


"진짜 기다리고 있으면 꼭 그러더라."

"엄마, 뭐가?"

"꽃 말이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안 피었는데 하루 이틀 사이에 다 피었어. 근데 하필이면 꼭 이럴 때 비가 와서 꽃이 다 떨어져 버리잖아. 꽃이 너무 불쌍해. 너무 안 됐어."

"벚꽃 말이야?"

"그래. 꽃 피기만 기다렸는데 아까워서 잠이 안 올 것 같다."


내 소유도 아닌데, 그냥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인데, 평생 붙들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냥 아까웠다, 다 아까웠다. 나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는데 피자마자 지는 게 어디 있어?


"이상하네. 항상 그래.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꽃이 피자마자 계속 비가 와. 벌써 꽃잎이 사방에 떨어져 있더라니까."

"그랬어?"

"하긴 세상에는 영원한 건 없으니까. 꽃도 그냥 올해 떨어지는 시기가 좀 빠른 거지."

"세상에 영원한 건 없을까?"

"응, 엄마 생각에는 없는 것 같아."

"하긴 그렇긴 하지."

이제 만 10살 된 어린이가 뭘 안다고 불멸의 어떤 것에 대해 한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으나 너무 아쉬워하는 엄마 장단에 맞춰 나름 애써줬다.

보기에도 아까워서 건들면 꽃잎이 떨어질세라 만져보지도 못하는데 이틀 연속 비바람에 꽃이 남아나질 않게 생겼다. 나는 진작에 아이들과 올해는 어느 장소에 가서 어떻게 꽃구경을 해야겠다고 계획씩이나 다 세워놨었는데 이젠 다 틀렸다.

이틀 전 밤에 도서관 가는 길에 나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그 전날에는 봉우리가 더 많았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사달이 났다. 밤이었는데도 가로등 아래 몽글몽글 터진 그것이 온통 환했다. 이게 아닌데, 내 스케줄하고 뭐가 안 맞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조지훈 시인의 '낙화(落花)' 중에서)' 했지만 분명히 비는 탓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모든 게 다 비 탓이다. 내가 원망할 대상은 오로지 비뿐이다. 저 많은 꽃나무에 우산을 씌워 줄 수도 없고 비옷을 입힐 수도 없고, 더군다나 오겠다는 비를 오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연일 내리는 비를 탓하는 것 외에는.

그저 아까웠다. 피자마자 져버리는 생명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때에 끝나버리는 일이. 욕심이란 걸 알지만 그 욕심을 버리는 일조차도 결코 쉽지 않다. 어느 정도 무뎌지고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움켜 잡고 싶은 게 넘쳐나는 사람인가 보다, 나는.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을까.

너무 이르기 때문에, 다들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 갑작스레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할 때도 그렇다.

특히 요즘, 미처 대비하지도 못했는데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느닷없는 상황에 멍해지기도 한다.

믿을 수가 없다. 믿기 힘들다. 부인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사실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영원하지 못하리란 것을 알면서, 끝이 있을 거라는 것도 알면서 가끔은 나도 어리석게 살고 있다.

언제 비바람이 몰아칠지 모르고 언제 뙤약볕 내리쬐는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게 우리 사는 세상인데 말이다.

다 안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일이 설마 내게 일어나랴 싶으면서도. 그래도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욕심인 줄 알면서도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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