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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pr 05. 2024

신규자를 산으로 보냈다

세상은 넓고, 무서운 날은 많다

2024. 4. 4.

<시진 임자 = 글임자 >


"식목일 행사 준비는 다 됐어? 누구도 오시고 누구도 오시고 누구도 오시는데."


나무 심는데 왜 '굳이' 그 많은 분들이 산꼭대기까지 오시는 걸까.

정말 이해되지 않은 일이었다.(물론 나만)

준비하고 말 것도 없이, 아니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식목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해에 나는 산업계 산림 담당자였다.


전 해에 복지계에 첫 발령을 받고 같은 사무실에서 이듬해 1월에 산업계로 내부 인사이동이 있었다.

"우선 직원이 올 때까지만 거기 있어."

라고 면장님 이하 계장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나는 어서 빨리 다른 직원이 오기만 기다렸다. 계의 특성상 복지계는 사회복지직으로 자리가 채워지는데 내가 발령받았던 해는 그쪽 자리가 하나 비어서(단지 빈자리가 있어서였다) 그 자리에 그냥 나를 앉힌 것이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복지'와 관련된 그 어떤 지식도 없는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자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분야의 업무를 아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과연 윗분들의 말씀대로, 약속하신 대로 새 직원이 왔고 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부 인사이동으로 옮긴 자리는 농촌행정의 꽃(이라고 나만 생각한, 어딜 가나 내가 가면 거기가 제일 일도 많아 보였고 대단해 보였고 전부인 것만 같았다)이라고 나 혼자만 여겼던 산업계였는데 거기에서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당연히.

면사무소에서 해년마다 산에 나무를 심는 줄은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정말 매년 그런 행사를 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기존 공문을 뒤져보면 확실히 증거는 있었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니 담당자인 내가 식목일 행사를 치러야 하는데, 군에서도 오시고 다른 기관장들도 여기저기서 오신다는데(왜 오시는지 정말 모르겠다) 행사 준비가 잘 되어가는지 계장님께서 갑자기 기습 점검을 하셨다. 뭔들 제대로 하는 게 있었겠냐마는 식목일 행사도 매끄럽게 준비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도 먼저 나서서 일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특히 내가 주가 되어서 하는 일은 없었던 터라 식목일 기념 나무를 심는 일씩이나 되는 대행사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게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들 투성이니 공문을 받고 뭘 하기는 해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나는 요령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눈치껏 여기저기 알아보고 지난 공문들도 들춰보고 모르면 물어도 보고 어떻게든 해야 하는 거였는데 그냥 시골 마을 산에 올라가 식목일을 기념하는 취지에서 가볍게(?) 나무 몇 그루 심는 일이었는데 나 혼자만 무슨 국제적인 행사라도 치르는 줄 알고 잔뜩 겁만 먹었다.

보다 못한 계장님이 나서 주셨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여기 연락하고 저기 연락하고 음식 준비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어쩜, 고맙기도 하셔라.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 부모님이 농사짓던 그 일을 대입해 보면 세상 쉬운 일이었는데.

먼저 식목일 행사에 참여할 인원을 점검한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람과 나무이다. 나무를 심어줄 사람, 나무를 싣고 올 사람, 심을 나무, 그리고 높으신 각 기관장들, 그들이 식목일 행사의 8할이다.

다행히 군에서 함께 하는 행사라 어느 정도는 군 담당자가 해결해 주었고 나는 면사무소 담당자라 살짝(?) 거드는 정도였는데 지레 겁만 먹은 것이다.

내가 직접 나무를 심을 것도 아닌데 혼자 잔뜩 긴장하고 식목일까지 내내 걱정만 하느라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그렇게 담당자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새 나무는 다 심어졌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였다가 흩어졌다.

나무를 심을 때 한 번, 음식을 먹을 때 한 번, 결정적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한 번, 잽싸게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무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심는 게 아니었다.

뭘 얼마나 잘하고 싶어서 그렇게 걱정만 하고 있었을까.

그냥 하면 되는 것을.


담당자가 나무를 심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나 혼자 밤을 새워서라도 그 나무들을 심으라고 하면 얼마든지 하겠는데, 갓 시보를 뗀 신규자는 그해 4월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말이 참 맞다.

4월은 잔인한 달, 신규자에게 식목일이 있는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었다.

아는 것이 없어서 잔인하고 요령도 없어서 잔인했다, 그 시절의 나에게만.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이도 점점 들어가는 지금, 뭐든 심고 싶다.

싹 틔우고 싶고 꽃 피우고 싶고 길러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참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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