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l 07. 2024

절대 네가 원하는 대로는 안될걸?

안되어야 해...

2024. 7. 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손흥민 머리로 해 줄까?"

"아니! 엄만 절대 그렇게 못 하잖아."

"그렇긴 하지. 그럼 다른 선수 머리로 해 줄까?"

"어차피 못 할걸?"

"그래. 알았어."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도 아니고 난데없이 축구를 보다가 아들에게 헤어스타일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냉혹한 현실을 인지하게끔 하는 아드님의 대꾸, 그뿐이었다.


"우리 아들, 머리 자를 때가 됐는데, 이번 주에는 잘라야겠다."

"안 길었는데?"

"안 길었다고 믿고 싶은 거겠지."

"엄마, 다음 주에 자르자."

"날도 더운데 머리가 길면 더 덥고 냄새 나. 3주면 자를 때도 됐잖아. 아빠도 아무리 늦어도 3주에 한 번 정도는 자른다니까."

평소 그리 친하지도 않은 그 양반까지 출연시켜서 아들에게 이발을 강요하던 중이었다.

"근데, 엄마는 머리를 이상하게 자르잖아."

아들은 최근 들어, 아니 솔직히 그런 반응을 보인 지는 좀 된 것 같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엄마가 보기엔 멋지기만 하구만."

"내가 옆머리만 조금 자르라고 했는데 짧게 잘라 버리고 그랬잖아?"

"생각을 해 봐. 옆머리만 자르면 앞머리랑 뒷머리랑 균형이 안 맞잖아. 서로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맞춰 줘야지 안 그래?"

"그래도 너무 이상하게 자르니까 그렇지."

"이상하다는 건 네 생각 아니야? 어디가 이상해? 안 그래?"

나머지 두 멤버에게 구조 신호를 보냈으나 둘 다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들은 점점 까다롭게 굴기 시작했다.(고 느낀 지도 꽤 된 것 같다.)

나는 머리가 길어서 자를 때가 됐다고 주장하고 아들은 아직은 아니라고 자꾸 나를 피하고 있었다.

"엄마, 제발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알았지?"

언제부터인가 저렇게 요구하더니 이발을 다 마치고 나면

"엄마,  왜 내가 하라는 대로 안 했어? 이상하잖아."

이러면서 불만을 표시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 솔직히 어떤 날은 내가 보기에도 사알짝, 쬐끔 이상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엄마. 이번엔 잘 잘랐네?"

라면서 면허도 없는 나이롱 이발사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 더러는.

그러나 이젠 아니다.

"엄마, 앞머리는 여기까지, 옆머리는 이렇게 뒷머리는 조렇게, 알겠지? 다른 건 손도 대지 마. 제발 내가 말한 대로만 해야 돼. 알았지?"

요구 사항은 점점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던 것이다.

종종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아드님은 며칠 동안 나를 원망하는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물론.

나는 긴급 처방 내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앞으로 미용실 가서 이발해. 가서 네가 원하는 대로 잘라 달라고 해. 하지만 명심해. 절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스타일이 나오지는 않을 거야. 그것만은 알아 둬. 진짜야. 엄마도 옛날에 미용실 가 보면 그런 적 진짜 많았어. 아빠한테도 물어봐. 그런 경우 진짜 많아."

기회는 이때다 하고 잽싸게 끼어드는 성인 남성이 있었으니

"엄마 말이 맞아. 원하는 대로 나올 확률은 적어."

이렇게 기특할 데가!

찰나, 나는 생각했다.

아빠의 존재 이유는 엄마의 어떤 주장에 대해 근거를 뒷받침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자녀에게 어떤 사실을 주입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그 성인 남성에게 기원전 5,000년 경에 저런 기특함을 느껴 보고 아주 오랜만이었다.

'부부는 일심한패!'

그 순간만큼은 한패여야만 했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경험상, 그리고 우리 집 성인 남성의 간증도 그러하거니와 대체로 사람들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이 있다고 해서 온전히 그대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누구처럼 해 달라고 해도 그 사람이 그 누구는 아니니까 똑같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그동안 엄마가 편히 집에서 이발해 주니까(물론 실력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나도 진심으로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나마 원하는 대로 해 준다고 맞춰주고 있는데 얘가 뭘 모르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호강에 겨웠다'라고 한다지 아마?

물론 정말 호강에 겨웠는지는 나이롱 이발사 입장에서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란 것은 안다.

하지만 나는 나름 아들의 요구에 충실했다고 생각해 왔다.

안타깝게도 아들이 그 점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


"내일은 그냥 미용실 가서 이발해. 일요일에도 하는지 모르겠네. 엄마나 되니까 일요일 아침에도 해주고 밤에도 해 준거지, 이렇게 해주는 미용실이 어디 있는 줄 알아? 가서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절대 네가 원하는 대로는 안 나와. 알겠지?"

유치하게 나는 아들에게 그 대단한 영업 비밀을 다시 한번 발설함과 동시에 그동안의 나의 노고를 대놓고 거듭 상기시켜 주고야 말았다.

그런데 가만,

만에 하나,

아들이 원하는 대로 헤어스타일이 나와버리면 어쩐다지?

처음 간 미용실에서 아주 흡족한 마음이 들어버리면 나는 이제 어쩐다?

그러면 나는 신실한 단골을 한 명 잃게 되는 셈인데?


아, 손님 떨어져 나가는 소리 들리는구나...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학알못'이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