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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10. 2024

나 다시 일어났어요

일어 난 김에 꽃까지

2024. 7. 8.


<사진 임자 = 글임자 >


"저번엔 시들시들하더니 이젠 완전 살아났네. 그땐 정말 무슨 일 나는 줄 알았어. 이젠 꽃까지 피고."

"하여튼 엄마는 꽃 좋아하더라."

"보기만 해도 좋잖아. 향기도 좋고."

"뭐, 그렇긴 하지."

"꽃 지고 나면 분갈이해야겠다. 둘이 살기엔 좀 좁아."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고무나무 화분에서 더부살이 신세로  내가 방심한 사이 축 늘어져 있더니 이젠 줄기가 똑바로 섰다. 이 모습을 보는 내 허리가 다 쭉 펴진다.


거의 한 달 전만 해도 온통 한 방향으로만 줄기가 기울어져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워 보겠다고 매일 방향을 조금씩 바꿔주며 지극정성이었다. 그동안 무심했던 지난날들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한동안 저 화분에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았다. 지금의 화분으로 분갈이를 한 지는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스파티필름이 어찌나 잘 자라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방면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다 큰 스파티필름에서 새 싹이 나온 것들만 따로 작은 화분에 분갈이를 여러 개 했었다. 쓰러진 줄기가 일어선 것만도 대견한데 어느 날 보니 가장 안쪽 줄기에서 흰 봉오리가 보였다. 아직은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벌써 꽃을 볼 줄이야.

2024. 7. 4.

경험상 스파티필름은 꽃을 피우기 직전에 꽃봉오리 끝에 저렇게 물 한 방울을 매달고  있다.

나는 화분 흙위로 직접 물을 주는 편이지 꽃이나 이파리에 물을 뿌리는 경우는 샤워시킬 때 말고는 전혀 없는데 어느 순간 보면 저런 풍경이 나타나곤 했다. 그렇다면 뿌리에서부터 물을 저 꼭대기까지 끌고 가는 건가?

말은 못 하는 식물이지만 이 얼마나 기특한가 말이다.

현재 저보다 더 큰 스파티필름도 여러 그루 있는데 그곳에서는 아직 꽃이 필 생각도 안 하는데 저 혼자 느닷없이 꽃을 피웠다.

처음 꽃 봉오리를 본 후 마르고 닳도록 보고 또 보려고 당장 식탁 위로 옮겼다.

장마철이라 햇볕을 보기 힘든 날이 많지만 어쩌다 한 줄기 빛이라도 거실 창가에 들면 그 기회도 놓치지 않고 볕도 쬐어줬다. 요양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불현듯 생각했다.

아마, 스파티필름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나보고 고맙다고 인사라도 할 거야.

요즘은 내 아이들에게 쏟는 마음 못지 많게  화분에 열과 성을 다하다 못해 집착하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을 낳는다던데, 이제 막 꽃을 봤는데 얼마 후면 시들어버리고 지겠거니 하며 벌써 서운해졌다.

어떤 이는 꽃이 피면 하얀 가루가 날린다며 꽃대가 올라오자마자 잘라버린다고 했다.

그 가루가 날리는 게 싫다면서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식물이란 이파리도 보고 꽃도 보는 재미, 그런 재미가 8할은 아닌가?

꽃이 피고 며칠이 지나면 살짝만 건드려도 하얀 가루가 사방에 떨어지긴 한다.

그래서 나는 꽃이 핀 다음에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꽤나 신경 쓰는 편이다.

좋은 향이 난다고 그 앞에서 킁킁대다가 느닷없이 새파란 이파리에 분가루 세례를 얼마나 많이  퍼부었는지 모른다.


보기도 아까운 저 예쁜 꽃을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싹둑 잘라버릴 수가 있는 거람?

그래도 자를 거면, 꽃이 노래지고 시들어진 다음에, 향기도 다 하고 줄기도 흙빛으로 변한 다음에, 그 이후에 해도 좋을 텐데.

나는 꽃이 다 말라가도 최대한 그대로 두는 편이다. 죽은 자의 그것처럼 줄기가 물기하나 없이 딱딱해진 후에라야 자를 때도 그나마 덜 미안해서.

변명하자면 나는 그렇다.

피었으니 이젠 질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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