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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13. 2024

네가 2 시에 온다면 난 12시부터 심란할 거야

고작 1교시가 줄었을 뿐인데

2024. 7. 1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이제부터 방학할 때까지는 5교시가 마지막이야."


아들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하늘이 노래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그런 기분, 출산할 때도 안 느껴봤던 그런 기분, 그날 나는 좀 그런 기분(물론 거짓말을 좀 보태자면 말이다.)을 느꼈던 것 같다. 한두 번도 아니고 딸이 의무교육을 시작한 이래로 몇 번 있었던 일이지만 저런 말은 들을 때마다 새롭다 못해 뜨악해지기까지 한다.


"아, 이제 방학하니까 그러나 보네."

라고 대꾸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아들이 눈치채지는 못했다.

"엄마. 나 일찍 오니까 좋지?"

아드님은 엄마에게 그런 어마무시한 질문은 하지 말아야 했다.

"좋지."

그러나 내 진심은...

아들이 조금 더 일찍 하교한다고 해서 세계 경제가 휘청인다거나 인류 평화가 깨어진다거나 그럴 일은 결코 없다. 하지만 뭐랄까, 그 상황이 좀, 내게는, 어쩐지...

"엄마는 말로는 좋다고 하면서 표정은 안 좋은 것 같네?"

"아니야. 엄마는 우리 아들 학교 가자마자 보고 싶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실제로 딸이 먼저 등교하고 아들이 느긋하게, 너무나도 느긋하게 등교하는 아침이면 나는 곧잘 그런 소리를 한다.

"우리 아들 학교 가면 엄마는 어떡하지? 우리 아들 보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면 아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나가려다 돌아서며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 현관문을 닫으려다가도 다시 한번 손을 흔들어 준다.

물론 나는 어서 나가라고 등 떠밀고 말이다.

세상에!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엄마가 아들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솔직히 우리 집 멤버들이 다 나간 후 집안일을 비롯해 이것저것 하다 보면 아들 생각 같은 건 (아들에게 이 글은 최대한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도 안 난다. 물론 느닷없이, 한 번씩, 너무 뜬금없게도 아들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생각나면서 혼자 실실 웃게 되는 순간들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그런 순간들이 1교시 먼저 하교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이길 수는 없다.(고 정말 나는 진심으로 양심고백 하는 바이다.)

결혼 전 그 양반에게도 안 했던 닭살 돋는 말을 언제부터인가 아들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는 줄 나도 미처 몰랐다.

"하여튼, 당신은 애교라고는 없어!"

라고 그 양반은 자주 내게 불만을 표시하지만 먹지도 못하는 거, 그런 거 어디다 쓰게?

입지도 못하는 거, 그런 거 도대체 어디에 쓰냔 말이다.

'그나마 그 양반과 나 둘 중에' 애교의 'ㅇ'정도는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사람은 그 양반이다.(라고 우리 둘은 의견일치를 보았다.)

학교에서도 이젠 1교시가 줄었다고 공식적으로 알림이 왔고, 과연 아드님은 어김없이 2시 정도에 집에 컴백하셨다.

아들이 나를 못살게 군다거나 하루 종일 내 옆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그러나 어쩔 때는 거의 그런 비슷한 행동을 할 때가 있긴 하다. 그래서 진심으로 힘들 때가 있다. 여기서 잠깐, 아들을 낳고 임신 때 찐 살이 바로 다 빠지다 못해 입맛이 떨어지고 몸무게가 자꾸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는 점을, 그래서 지금은 미혼일 때보다도 더 몸무게가 덜 나간다는 점을 느닷없이 꼭 밝히고만 싶다. ) 최근 일찍 하교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만 심란해지는 것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다면 '원하고 원망하죠' 정도랄까? 아무 상관없는 노래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이거다. 원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낮 12시에 전날 방송됐던 'Easy Writing'을 재방송하는 시간이 되면 나는 슬슬 심란해지고야 만다.

그리고 당일 아침 6시에 방송했던 'Easy Writing'을 재방송하는 오후 1시가 되면 은근히 초조해지기까지 하고 말이다.

내가 어린 왕자는 아니라서,

아들이 여우는 아니라서.


그래, 내 아들이 이쁘긴 하다.

사랑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뭔가가 있다.

그게 바로 고작 하교 시간이 조금 앞당겨진 데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내비치는 내 구차한 변명이다.

앞으로 남은 날은 열흘 정도,

나는 긴급대책을 세우고 뭔가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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