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l 22. 2024

너는 '프랑스에 가서' 먹고 싶다고 말했어

이 달팽이 말고 그 달팽이로

2024. 6. 8.

< 사진 임자 = 글임자 >


"파리 올림픽 기간에 지하철 요금을 두 배로 올린다고 하네. 그런다고 해서 갈 사람들이 안 갈까?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가야지."

"왜 당연히 가?"

"엄마, 내가 프랑스에 얼마나 가고 싶었는데 그래. 그리고 가서 축구도 보고 달팽이 요리도 먹고 좋잖아."

"근데 교통비나 다른 것들이 평소보다도 훨씬 더 비싸질 수도 있는데 그 정도도 다 감당하고 갈만하다고 생각해?"

"평생에 한번뿐일 수도 있잖아. '내가 살면서' 올림픽을 직접 볼 날이 언제 또 있겠어?"


저런 말은 올해 6학년인 딸보다는 이미 40년도 넘게 살아버린 내가 더 할 법한 말이 아닌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넌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마음먹으면 가고 또 가고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엄마는 (나는 비관적이라기보다 낙관적인 사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이도 있고(나이만 있지 가진 게 없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고(그건 그렇다,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아무래도 너보다는 내가 할 법한 말이 아니냐고는 정색하며 말하지 않았다 물론.

딸은, 파리를, 프랑스를 원하는 거다, 그저.


벌써 좀 된 얘기이긴 하지만 그날 마침 '귀가 트이는 영어'의 뉴스 기사 내용이 '파리 올림픽'에 관한 것이었다. 올림픽 기간에 대중 교통비가 거의 두 배로 오를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사였는데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가 불쑥 딸에게 물어봤다.

딸은 비용이야 어찌 됐건 자신이 원하면 다른 조건이 바뀌더라도(설사 여행 경비가 몇 배가 더 들더라도)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두 배가 될지도 모르는 파리의 교통비는 고사하고 우선 파리로 날아갈 비행기 표를 끊을 금전도 없으면서 말이다.

나도 아직은 안 가 본 파리, 이번 생에 내가 갈 기회가 있을까 싶은 파리, 정말 먼 나라일 뿐, 이웃나라도 아닌 그냥 먼 나라, 내게는 그런 나라의 한 도시다.

딸은 어려서부터, 그러니까 6살 때였던가, 그때 느닷없이 프랑스 타령을 했다.

"엄마, 프랑스 멀어?"

"잘은 모르지만 가깝진 않아."

"여기 '먼 나라 이웃 나라 '프랑스'라고 되어 있는데?"

집에 그런 책이 있었다.

먼 나라는 건너 띄고 '이웃 나라'라는 책 제목에 딸은 프랑스가 바로 옆집 정도나 되는 줄 알았나 보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와 뭐가 다른 게지? 띄어 읽기의 치명적 단점, 하필 프랑스 앞에 '이웃나라'라는 표현 때문에 딸은 그 나라를 가깝게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세상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고 우리나라랑 가까운 나라도 있고 먼 나라도 있어."

"엄마, 나 프랑스 갈래."

"갑자기 프랑스는 왜?"

"가서 달팽이 요리 먹고 싶어."

아마도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 보다.

"달팽이는 외할머니 집에 가서 텃밭에서 몇 분만 돌아다니면 몇 마리 잡을 수 있을 텐데 '굳이' 프랑스까지 갈 거야?"

내가 말해 놓고도 좀 무리수인가 싶긴 했다.

그 달팽이랑 이 달팽이랑 비교할 게 아닌데 말이다.

"엄마, 외할머니 집에 있는 그 달팽이는 먹는 게 아니잖아."

어라? 식용 달팽이가 따로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그냥 아무 달팽이로 요리해서 먹으면 안 돼?"

"먹을 수 있는 달팽이가 따로 있다니까."

어쭈, 제법이네?

"근데 달팽이 요리는 가격이 좀 나가는데 괜찮겠어?"

"돈 모아서 사 먹으면 되지."

특정 음식을 '돈을 모아서'까지 먹고 싶다고 확고한 의지를 보이던 6살 어린이, 내 딸은 그런 어린이였다.


프랑스 하면, 나는 '달팽이 요리'가 먹고 싶다던(그것도 반드시 프랑스에 가서) 6살의 딸이 생각난다.

"옛날에 너 어렸을 때 프랑스 가서 달팽이 요리 먹고 싶다고 말한 거 기억나?"

"응."

"이젠 먹고 싶은 생각 없지?(=먹더라도 네가 직접 돈 벌어서 비행기 표도 사고 달팽이 요리도 사 먹고 할 거지?)"

"아니, 지금도 먹고 싶은데?"

이렇게나 딸은 일관성이 있는 어린이다.

"아, 그래? 엄만 이제 네가 달팽이 요리에 관심 없어진 줄 알았지."

"나중에 먹을 거야, 프랑스 가서."

어쩜 이렇게 한결같을 수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 걸까?

어쩌면 나도 언젠가 먼 훗날에 딸이 그 '먼' 나라로 떠나서 앙증맞은 엽서 한 장이라도 세세한 사연을 적어 내게 보내 준다면, 그 달팽이 요리 후기보다도 나는 그 손바닥만 한 종이 조각이 더 기다려질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2 시에 온다면 난 12시부터 심란할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