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는 계절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제 독감 예방 접종 하는 것 같던데 하셨어요?"
"우리는 아직 안 하는 것 같던데?"
"그래요? 여긴 한다고 하던데요?"
"그래? 엄마는 하셨냐?"
"곧 하신대요."
"그래. 나도 해야겠다."
"시작하면 아버님 하고 같이 바로 주사 맞으러 가세요, 어머님."
"그래. 그럴란다."
가을이 되면, 쌀쌀해지고 찬바람이 불면 으레 당연한 숙제를 하듯 시가에 확인 전화를 한다.
'독감 예방접종'이라는 숙제, 누구에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지만 일찍 해치워버리면 왠지 (근거 없는) 안도감이 든다고나 할까?
엘리베이터에 독감 예방 접종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 때가 됐구나.
또 그럴 시기구나.
안내문 본 김에 시가에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이젠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죠?"
"그래, 아침저녁으로는 춥더라."
"그렇죠? 그래도 낮엔 어쩔 때는 덥더라고요."
"여기도 그런다. 거기도 그러냐?"
"네, 그런데 이런 날씨가 제일 위험해요. 이럴 때 감기 걸리기 쉽잖아요. 독감 예방 접종 시작한다고 하던데 혹시 하셨어요?"
"아니, 아직 안 했다."
"그래요?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시작하는 것 같던데요."
"모르겠다. 여기는 아직 아무 소식 없어."
"그래요?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이 붙어 있길래 생각나서 전화드렸어요. 어차피 하실 거면 일찍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래, 고맙다. 며늘아."
"저도 요즘 일교차가 너무 커서 몸이 좀 안 좋아지려고 하더라고요. 어머님도 조심하세요.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세요?"
"응, 다리가 아파서 그렇지."
"또 무슨 일 하신 건 아니시죠?"
"안 해. 다리 아파서 못해."
"아버님은요? 아버님도 어디 편찮으신 데 없으시죠?"
"아버님도 맨날 다리가 아파서 그러지 뭐."
"요즘도 두 분이 같이 병원 다니세요?"
"응. 같이 갈 때도 있고 나 혼자 갈 때도 있다."
"어머님 가실 때 아버님도 같이 가시자고 하세요."
"그래."
"별 일은 없으시죠?"
"우리는 잘 있지. 우리 손주들도 잘 있냐?"
"다 잘 있어요, 어머님."
"그래. 애들 키운다고 고생 많지?"
"고생은요."
"그래도 우리 며느리가 애들 잘 키워줘서 고맙다."
"네, 다음엔 애들 학교 갔다 오면 전화드릴게요. 애들이랑도 통화하세요."
"그래."
"그리고 어머님, 예방 접종 한다고 하면 바로 주사 맞으세요."
"걱정 마라. 얼른 가서 맞을란다."
"아버님께도 안부 전해 주시고요. 다음에 또 전화드릴게요. 어머님, 일 무리하지 마세요."
"응. 나 아무것도 안 한다.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시고 저번에도 일 많이 하셨잖아요."
"어쩔 수 없다, 시골에서. 너도 엄마 아빠한테 일 줄이시라고 해라. 이제 그만하시라고."
"네, 그럴게요."
얼른 독감 예방 접종 하시라고, 더 쌀쌀해지기 전에 다녀오시라고 용건만 간단히 말씀드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결국 또 만담을 하고야 말았다.
시부모님이 아이들도 아닌데 때가 되면 이거 하시라 저거 하시라 하며 나는 오지라퍼 며느리가 되고 만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신경 안 쓰고 계실까 봐 말이다.
나야 가까이 살지 않아 자주 가지 않으니 시부모님이 어떻게 지내시나 안부도 살필 겸 혹시나 깜빡하신 일이 있으면 챙겨 드릴 겸 해서 전화를 드리는 것뿐이지만 그분들은 자꾸 며느리가 이러면 불현듯 귀찮으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났다.
이런 오지랖을 어머님이 귀찮아 하시진 않으시려나?
(현재까지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라 오만가지 간섭을 다 한다고 싫어하지는 않으시려나?
그래도, 날씨가 쌀쌀해졌다고 그런 핑계라도 대고 전화하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