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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3. 2024

공직자 재산등록이라는 요물

나도 보고 싶다

2024. 8. 16.

< 사진 임자 = 글임자 >


"문자 갔지?"

"응."

"뭐라고 갔어?"

"정보제공 동의서 확인 완료됐다고."


솔직히 동의 안 할 수도 없게 만들어 놓고(대뜸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내미는데 안 하고 배길 수 있나?) 동의서를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거부할 수도 있는 건가?

얼핏 듣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한 것 같긴 한데 그땐 타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어차피 나는 거부할 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이번에도 그냥저냥 보냈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불미스러운 비리와 연루된 것도 아니고 거리낄 것이 없으니 심드렁했다.

다만, 나도 좀 보고 싶었다.


작년부터였던가, 몇 번 그런 문자를 받고 나니 이젠 그것이 도착하면 그러려니 했다.

또 조사하나 보구나.

뭘 더 볼 게 있다고 자꾸 그러나.

"근데 상반기랑 하반기에 이렇게 두 번 하는 거 아니었어?"

"원래 그런데 이번에 추가로 한대. 비트코인 때문에..."

한낱 민간인으로서 비트코인하고 공직자 재산등록하고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으나(특히 내 경우엔 더욱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일 뿐이었으므로) 아무튼 구실은 그거였다. 정확히는 나도 모르겠다. 하라니까 하는 것일 뿐이지. 그 양반도 위에서 하라는 지시대로 했을 뿐일 테고 말이다.

"아빠한테도 전화드려야겠다. 갑자기 그런 문자 받으시면 놀라실 수 있으니까."

"그래. 생각날 때 얼른 전화드려. 설명 잘 드리고. 느닷없이 저런 문자 오면 보이스 피싱인 줄 알고 오해하실라."

"알았어."

하도 보이스 피싱 수법이 다양하고 희한해서 저런 비슷한 문자가 올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심코 봤다가는 딱 보이스 피싱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내용 아닌가.

특히나 '공직자'라는 단어와 '재산등록'이라는 거창한 말은 참으로 그럴듯한 단어들이다. 왠지 정말 정부에서 보냈을 것만 같은(실제로 보내기도 했겠지만) 내용이다. 만약 그 양반 신분이 지금의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단번에 저건 '사기' 문자라고 무시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뭔가 미심쩍은 마음은 남아있을 거다.


그 양반을 기준으로 직계가족의 재산을 다 조회한다고 했다, 또.

재산이라고 할 것도 없는 걸 미미하게 가진 나는 그런 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가족의 신분상 저런 절차를 거쳐야 할 수밖에 없으니 그냥 수긍하는 수밖에.

그런데 불현듯 나도 그 양반의 재산이든 뭐든 그가 소유한 모든 것들이 궁금해졌다.

상대는 배우자라는 명목으로 나를 다 조회하는데 반대로 나는 그 양반의 것을 조회해 볼 수 없다.

물론 그 양반도 직업상 필요에 의해 그 과정을 거치는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뭐라도 알아내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가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때로는 내가 다 말하고 싶지 않아도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아도 나의 모든 것은 고스란히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럴 수 없는 거지?

나도 알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다.

그 양반을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그런 게 궁금해질 때가 있는 법이니까.

더욱이 뭔가 내게 솔직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는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 봐. 지금 살림 어떻게 하고 있어? 살림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그 양반이므로 경제권은 그에게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늘 그 양반의 살림 방식이 못 미덥다.

가끔 보면 씀씀이가 너무 헤픈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내 기준에서만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럴 때면 그 양반은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 필요한 거야. 사회생활 하는데 필요한 거야."

문제는 내가 보기엔 딱히 그렇게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 못 한다고(그 양반은 내가 일을 그만둔 후로 걸핏하면 세상 사람을 딱 두 부류로 사회생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눈다.) 그 양반이 반박할지도 모르지만 잠깐 사회생활을 했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까지는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 말씀이다.

"나도 볼 수 있으면 한 번 봤으면 좋겠네.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전에 지인이 공직자 재산 등록 덕분에(?) 남편이 자신 몰래 대출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도 당해보기 전까지는(?) 평온했었다.

그 양반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합법적으로(그 방법이 실질적으로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나는 모르니까 패스다.) 그 양반 소유의 모든 것을 하나씩 파헤지기에 이르렀다.

"더 말해 봐. 또 뭐 있어? 더 있는 거 아니야?"

처음엔 나도 온순하게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라니까! 내가 모를 줄 알아? 다 알고 있어. 이미 알고 있다고!"

순간 그 양반이 흠칫 놀라는 것을 보니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박차를 가해야 한다.

"나도 알아보려면 다 아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숨기지 말고 다 말해."

그러나, 나는 그 수가 어떤 수인지는 전혀 모른다.

그게 바로 나의 최대 약점이다.

그것은 아주 치명적이다.

한참을 추궁하고 적당히 내가 예상했던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어떤 이는 '공직자 재산 등록'은 부부가 싸우라고 만든 거 아니냐고 했다.

차라리 몰랐으면 더 나았을 것을 알게 되면 불화가 생기기도 하니 오죽하면 저런 말이 나왔을까 싶다.

서로에게 솔직해질 필요도 있겠으나 한 켠에서는 부부라고 해서 또 모든 걸 다 알릴 필요가 있을까(정말 차라리 몰랐던 때가 더 평온했던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싶은 생각도 느는 걸 보면 저 공직자 재산 등록이 요물은 요물이다.

"숨길 생각하지 마. 내가 모르는 줄 알아?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아? 나도 다 안다고!"

끝까지 나는 세게 밀고 나갔다.

그러나, 내가 아는 건 '나는 모른다.'는 것 그뿐이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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