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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1. 2024

올해 김장도 며느리는 패스!

시어머니의 이유

<사진 임자 = 글임자 >


"새언니한테 요새 날마다 전화 온다."

"왜?"

"김장 언제 하냐고."

"언니가 와서 한다고?"

"아이고, 오믄 정신만 사납고 일 안된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며느리는 와서 같이 김장하고 싶어 하고, 시어머니는 한사코 이를 마다하신다.

벌써 몇 년째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이렇다.

사실, 시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딸(=나)과 합세해서 작정하고 만든 일이다.


"애기들 와서 돌아다니믄 일이나 되겄냐. 그냥 아무 말 않고 있다가 다 하고 나믄 연락해야제."

올해도 나는 얼마 전에 엄마의 원대한 김장 계획을 들었다.

최근 2, 3년 간 엄마는 딸만 부르신다.

며느리는 일부러 안 부르신다.

특히 큰 며느리는 더욱더 거절하신다.

이유인즉, 큰 며느리의 아들들, 그러니까 엄마의 친손주들 때문(?)이다.

굳이 며느리들이 김장날 안 왔으면 하는 엄마의 이유를 들어 보면 몇 년째 한결같다.

손주들이 오면 부산하고 일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나도 격하게 동감하는 바이다.

몇 년 전의 경험으로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냥 아무도 몰래 부모님과 내가 하고 말지 혈기 왕성한 초등학생 남자 어린이들이 거실을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사이에서 김장할 일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는 친정과 가깝게 사는 편이라 아이들을 집에 남겨 두고 혼자 가도 상관없지만(물론 처가 같은 곳에는 갈 생각은 전혀 없는 사위 덕분에 남매를 집에 남겨 둘 수도 있는 나는 안심하고 홑몸으로 친정에 간다.) 멀리 사는 아들과 며느리와 친손주 들은 사정이 다르다. 안 올 거면 몰라도 올 거면 모두 데리고 와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 집처럼 아들한테 애들 보고 있으라고 하고 며느리만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친정이니까 나 혼자 간다 치더라도 친아들인 오빠는 빠지면서 남인 며느리만 참여하게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긴, 새언니가 아이들과 집에 있고 오빠만 오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손주들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엄마는 며느리만 제외하고 아들과 손주들만 오라고 좀처럼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엄마와 며느리의 사이가 그런대로 원만하기도 하고 서로 얼굴을 보고 싶어 하니 무조건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눈치다. 아들 며느리가 반드시 안 와도 상관없지만 오면 온 김에 또 이것저것 다 싸주고 싶은 마음에 아예 아무도 오지 말라고는 딱 잘라 말하지 못하신다.(엄마는 아들 며느리에게 줄 보따리를 기원전 3,000년 경이 이미 꾸려 놓으셨다.) 택배로 무언가를 보내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진작에 파악하신 거다. 택배로 야금야금 보내는 것은 성에 차지 않으니 차라리 와서 가져가라고 말이다. 물론 '김장이 다 끝난 다음'이라는 전제 조건 하에 말이다.

아들만 셋을 둔 큰며느리를 항상 고생하고 산다고 안쓰러워하는 것을 기본으로 엄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김장 같은 것은 내가 다 알아서 할란다.(=내 친딸과 함께 다 해치우련다.) 그런 것은 걱정도 하지 말아라."

그러나, 나는 살짝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양이 많으니까 최소한의 인원으로 김장을 하는 것은 경험상 결코 녹록지 않다.

부모님 두 분과 우리 사 남매 가족이 다 먹을 양을 하려면 최소 100 포기에서 150 포기가 될 거라고 예상한다. 매년 비슷한 양을 해 왔으므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전에는 200 포기 이상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하다.

며느리들에게는 올해 김장을 언제쯤 할 건지 절대 귀띔도 해주지 않으시면서 내게는 지난주부터 언제쯤 김장을 해야겠다고 벌써 몇 번이나 일러두셨는지 모른다.

"올해는 김장을 10일쯤에나 해야쓰겄다.(=너는 그날 스케줄을 비워놓거라.)"

자꾸 말씀 안 해도 나는 당연히 가서 같이 하겠지만( 많이 먹는 집은 아니지만 우리 집 반찬은 거의 다 친정으로부터 온다.) 내가 별다른 대꾸가 없자 엄마는 신경 쓰이셨나 보다.

"엄마, 너무 많이 하지 마. 이젠 옛날같이 그렇게 김치도 많이 안 먹어."

다만 나는 김장 양을 좀 줄이십사 제안을 했다.

"그냥 우리끼리 얼른 해야제, 애기들 오믄 일도 못한다. 다 해 놓고 갖고 가기나 하라고 해야제."

엄마는 다시 한번 결심을 굳히셨다.

나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몸이 더 힘들긴 하겠지만 엄마의 며느리들 없이 일하는 게 백번 나았다.

올해 고2인 첫째 조카를 제외(하면 손주가 모두 여섯 명이다.)하고라도 부모님의 손주들이 다 모이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과 초등학생들로 정신이 없다.

김장하느라 몸이 힘든데 아이들이 사방팔방에서 까불고 돌아다녀서 혼이 다 빠졌던 과거의 김장날은 우리는 되풀이하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본 지 오래다.

더군다나 몸이 안 좋아진 후로 엄마는 집안이 시끄러운 것을 점점 못 견뎌하신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아이들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엄마 말씀대로 하는 게 결국 나를 위한 거라고 결론 내렸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큰 새언니는 자꾸 같이 하자고 하지만 우린 김장 속의 고요를 선택했다.

굳이 와서 같이 김장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조카들 잘 키워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오기 싫어서 어떻게든 빠지려고 하지 않고 먼저 나서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누가 오고 안 오고가 그리 중요한가?

엄마와 나는 그저 조용히 일할 수 있는 환경만이 중요했다.

사정이 있으면 못 올 수도 있는 거고 오기 싫으면 안 올 수도 있는 거고, 바로  먹고 싶으면 가서 도울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지.

나는 파스나 미리 준비해 두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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