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과 집착 동반 주의
지난 추석 연휴에 집을 오래 비우게 돼서 할 수 없이 화분을 친정으로 피신시켰다.
"우리가 계속 집에 없는데 저것들을 어쩌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나는 자주 저 말을 했었다.
"엄마, 그럼 가져가면 되잖아."
옆에서 듣던 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정말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것들을 어떻게 가져가? 한 자리에 계속 있어야지. 그리고 우리가 여기저기 이동하는데 계속 어떻게 옮기겠어?"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그래."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어쩔 수 없지. 외할머니 집에 갖다 놔야겠어. 어디 부탁할 데도 없고."
아무리 고민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연후 내내 집을 비울 예정이었으므로 그동안 저것들의 거처를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가 내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사활도 걸린 문제였다. 맨 먼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마침 그 친구의 딸이 식물 돌보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화분도 몇 개 나눔을 했고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잘 키우고 있는 현장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그 친구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너희 집 화분에 물 줄 때 내 것도 좀 챙겨 줘."
살짝 말하면 되겠지?
하지만 이 한마디 부탁으로 안심할 수 있을 거라는 내 생각은 완전히 오산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 친구도 집에 없다.
시가에 간다고 했다. 그것도 하루 만에 갔다 오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도 2박 3일 일정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미리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인데 속도 없이 저런 부탁을 한다는 건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님, 제가 친구한테 부탁이 있어서 그런데 하루 만에 얼른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친구의 시어머니에게 난데없이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친구 성격상 그런 일로 시어머니에게 먼저 가겠다고 말할 사람도 아니었고 말이다.
결국 내겐 친정밖에 없었다.
솔직히 부모님이 화분에 매일 조금씩이라도 물을 주는 일을 깜빡하지 않고 하실 수 있을지 걱정은 됐다.
부모님에겐 본업인 농사일이 우선이지 갑자기 출연한 딸의 허브들은 눈에 잘 안 들어오실 터였다.
농사일도 바쁘신 데다가 추석을 맞아 사방에서 아들과 며느리를 비롯해 어마어마한 손주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이쯤 되니 그 많은 조카들 틈에서 내 허브들이 무사할 수나 있을까 그것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까불고 놀다가 화분을 엎지르기라도 하면 어쩐다지?
하지만 일단 친정으로 옮겼다.
어디 한 번 나갔다 오려면 이게 가장 문제다.
"엄마, 아직 날씨 더우니까 날마다 물 조금씩 줘야 돼."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올해는 유난히 늦더위가 기승이어서 하루라도 물을 주기 않으면 금방 생기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걱정하지 마라. 날마다 주믄 되냐? 저것이 뭣이라고."
여전히 엄마는 저것들이 다 무엇인지, 꼭 풀처럼 생겼는데 내가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고 석연치 않아하신 것 같은 건 내 느낌이었을 뿐이겠지.
"허브라니까. 제일 많이 돋은 것은 바질이고 이제 막 돋은 것은 허브야, 허브."
물론 최근에 허브가 아니라 엄마의 짐작대로 풀이었음이 판명 나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레몬밤 내지는 페퍼민트라고 굳게 믿었으므로 그 작은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매일 햇볕과 바람을 좀 쐬어 주라고 엄마에게 부탁하는 것까지는 염치가 없어서 못하겠고 해서 내가 친정에 머무는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실컷 바깥 구경을 시키고 다시 거실로 들여놓고 친정을 나왔다.
내 자식들만 집에 남겨 놓고 집을 나와 있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집을 비우면 온통 나는 화분 생각뿐이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이 많아질수록 흐뭇하고 기쁜 건 사실이지만 반면에 이런 경우에는 시름이 몇 배로 깊어진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는 기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알고 보면 모든 일에는 좋고 안 좋은 일이 함께라는 것을.
기쁨은 집착을 낳고 시름을 낳는다는 것을.
기쁨도 주고 시름도 주는 너희들, 결국에는 내가 거둬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