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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4. 2024

만나본 적은 없지만 1000일

눈 깜짝할 사이에

2024. 11. 2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제 엄마도 천 일이다!"

"축하해, 엄마. 엄마도 드디어 천일 됐네. 나도 그때 그렇게만 안 됐어도 엄마보다 먼저 천일 되는 건데."



중간에 사고만 안 났어도 아들도 나랑 비슷하게 천 일이 됐을 텐데.

솔직히 본인은 일이 꼬여 버려서 속이 상할 만도 한데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들의 표정을 보니 안타깝기도 했다.

오해는 마시라, 내가 지금 이 시점에 외간 남자를 만난다거나 한다는 건 결코 아니다.


"엄마, 나는 오늘 천일 됐어. 엄마는 얼마나 남았어?"

"엄마가 너보다 한 달 정도 늦었으니까 좀 더 있어야 돼."

"그럼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천일 됐네."

"축하해. 정말 3년 동안 열심히 잘했네."

한 달 정도 전에 딸이 제일 먼저 우리 집에서 천 일을 달성했다.

2021년 1월 정도였을 것이다.

아들이 막 2학년으로, 딸이 4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무기력해할까 봐 그 양반이 영어 학습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우리 집 멤버 4명이 모두 참여해 매일 영어 공부(그것도 공부라면 공부였다.)를 하게 했다.

내가 일을 그만둔 것과 전혀 그러지 않는데(그럴 일도 없는데 내가 무기력해할지 모른다며 그 양반은 지레 혼자 짐작으로 엉뚱하게 온 가족이 영어 공부를 하는 일로 승화시키도록 하셨다.) 앞으로 내가 무기력해할 예정이라고 왜 그렇게 넘겨짚으신 건지 당최 이해가 안 되지만 아무튼 덕분에 우리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연속학습 일수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그 말인즉, 나도 이제 일을 그만둔 지 천 일이 지났다는 것이다. 겨우 열 흘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데 말이다.


과연 1년이라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천일까지는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까도 싶었다.

그 사이트는 매일 연속학습을 해 나가지 않으면 그동안의 진도를 잃게 되고 어쩌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다. 며칠 계속 빠지면 (우리 세 멤버는 그런 경우가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해 냈다.

물론 중도 이탈자가 딱 한 명 있긴 하다.

그 이탈자가 누구인지 그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해서 결코 밝힐 수는 없지만 말이다.

정작 그 일을 주도한 이는 제일 시큰둥해져 버렸고 나머지 세 멤버만 매일 열심히 듣고 따라 하고 쓰고 익히고 복습하는 중이다.

가족 모두 참여하는 공통 학습 공간이 있다는 것은 꽤나 쓸모 있는 일이다.

"아빠, 이거 꼭 해야 돼?"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처음엔 이렇게 반응했던 아이들도 지금은 더 높은 순위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xp를 얻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사이트를 방문한다.

"오늘 학습했던 것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표현은 뭐야?"

나도 하나 건져볼까 하는 마음으로 매일 아이들에게 묻다시피 한다.

내가 학습하다가 헷갈리는 표현이 나오면 이제는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꼭 알아 뒀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보이면 캡처해서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아이들에게 곧바로 전파한다.

물론 항상 아이들이 적극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은근슬쩍 이렇게 하면 아이들도 좀 더 신경 써서 학습에 임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나는 이렇게나 만족스러운(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과 언제 어느 때고 의지만 있으면,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할 힘만 있으면 24시간 내내 학습이 가능한) 그 사이트를 혼자만 알고 있기 너무 아까워 자꾸 주위에 소문을 냈다.

내 친구들, 지인들, 새언니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다들

"그거 진짜 괜찮다. 나도 한 번 해 봐야겠다. 사이트 좀 알려줘."

라고 당장 '오늘부터 1일' 할 것처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아직까지 정말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는 아직 못 봤다.

언어는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매일 편한 시간에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어쩌다 깜빡하고 하루 정도씩 빼먹은 걸 빼면 지금까지 거의 매일 하다시피 했으니까 결코 거기 들인 시간도 적지는 않다.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다. 이렇게 편하게 공부해도 되는 건가 싶다.

"엄마, 알고 보니까 내 친구도 하더라."

어느 날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내 친구가 나보고 너는 학원도 안 다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물론 그 잘한다는 의미가 정말 잘한다기보다 초등학교 4학년 입장에서 봐서 후하게 쳐준 건 같긴 하다.) 해서 내가 그 사이트 알려줬어. 그래서 그 친구도 이제 시작했대."

아들도 내게 말했다.

분명히 밝히지만 나는 그 사이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순한 이용자일 뿐이다.

혼자 해도 좋지만 온 가족이 다 함께 하면 더 좋은 영어 학습(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도 학습할 수 있어 아이들도 호기심이 발동한다.), 적어도 서로 확실히 공유할 수 있는 게 있으니 종종 대화거리도 생기고 아주 나는 만족스럽다.

한참 아이들이 거기 나오는 스토리를 달달 외워서 우리 앞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묘기를 펼친 적도 있었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살살 추켜주면서 부모가 매일 같이 학습한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나는 꼭 공부를 한다기보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을 보느니 하나라도 건져보자 하는 마음에, 아이들이 물어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대답해 줄 정도는 되어야겠다(물론 내가 원어민도 아니니 정확성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엄마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기라고 말할 것이다.)싶어 연속학습을 이어나가고 있다.




만 번째, 만일이 되는 날을 잠깐 상상해 봤다.

일,

만일에 만일이 된다면?

그때 내 나이가 몇이지?

그때도 만일이 됐다고 이렇게 남길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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