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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0. 2024

드디어 정체를 드러 내셨군

이젠 버릴 때가 된 건가?

2024. 11. 1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버릴 거야?"

"생각 좀 해 봐야겠어."


이미 정체가 다 드러난 마당에 내가 앞으로 계속 거두어 줘야 하는 건가?

이럴 줄 모르고 키운 건데, 최소한 이건 아닐 거라고 믿고 지극정성이었는데 결국엔 이렇게 되어 버렸다.

나는 허브도 화초 비슷한 것도 전혀 아닌 '풀'을 금이야 옥이야 길러냈던 것이다.


2024. 6. 30.

"아무래도 불길해."

저것들이 커 갈수록 점점 불길함이 엄습했다.

처음에 씨앗을 싹 틔웠을 때만 해도 아주 (물론 내 기분에만)전도유망한 레몬밤 내지는 페퍼민트로 추정되는 허브일 거라고 확신했었디.

작년에도 레몬밤 씨앗을 직접 심고 싹 틔우고 키워서 제법 허브 티가 날 정도까지 잘 길러 냈었다. 물론 난생 처음 해 본 일이라 우여곡절은 꽤 있었지만 말이다.

올해는 망했다.

정말 망했다는 이 다소 극단적인 표현 이외에는 달리 지금의 참담한 내 심정을 대신할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2024. 6. 30.

올 6월 말에 허브라고 단단히 믿고 작업에 착수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레몬밤과 페퍼민트와 허브딜 세 가지 종류의 씨앗이 든 것을 '다있소'에서 급히 사온 후 하루라도 빨리 싹이 틀 수 있게 요령을 부려 씨앗들을 물에 담갔다가 싹이 나온 것을 확인한 후에야 화분으로 옮겨 심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2024. 7. 2.

대개 저런 허브들은 4월 정도면 심을 수 있다고 했는데 올해 초부터 내 신변에 하도 사건 사고도 많고 몸이 안 좋아서 그 시기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그래도 한 두 가지는 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초여름부터 찬바람 부는 지금까지 넉 달 가까이 정성을 다했다. 여기에 들인 정성은 가끔 내 아이들도 샘을 낼 정도였다.

2024. 7. 16.

싹이 나고 잎이 무성해지는 것을  보고 깜빡하고 물을 줘야 할 시기를 놓쳤을 때는 하마터면 저것들을 다 말라 죽게 할 뻔했다고 자책하면서 급히 수습하곤 했었다.

"엄마, 엄마는 허브에 정말 정성이네."

언젠가 아들이 이런 내게 말했었다.

"그럼. 이게 나중에 레몬밤이 될지 페퍼민트가 될지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는 분명히 되겠지. 그럼 우리도 허브를 키울 수 있게 되는 거야.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

2024. 8. 18.

한여름이었을 때였던가?

덥긴 해도 그래도 햇볕도 골고루 쬐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하루 종일  창가에 두고 깜빡한 적이 있었다.

화분에 흙은 다 말라서 먼지가 폴폴 날릴 지경이었고 초록잎은 시래기마냥 축 쳐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한다.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명이 있는 것이라 그런 모습 앞에서는 주인으로서 진심으로 미안해지는 것이다.

"우리 아들이 만든 화분에서 자라니까 더 잘 자라는 것 같네. 이건 과연 레몬밤일까 페퍼민트일까?"

시간이 지날 수록 내 기대감을 자꾸만 상승했다.

동시에 살짝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작년에 분명히 레몬밤을 키워봤기 때문에 키워보면 대충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자라나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쑥쑥 자라날 때 부인하고만 싶은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말았다.

2024. 10. 24.

"어떡해, 엄마가 그동안 엉뚱한 걸 키웠었나 봐."

"왜?"

"아무리 봐도 레몬밤은 아닌 것 같아."

"그걸 어떻게 알아?"

"페퍼민트는 발아율이 낮다고 해서 진작 포기했고 그나마 레몬밤 씨앗을 더 많이 심었으니까 그래도 돋았으면 레몬밤이 돋았겠지. 근데 아무리 봐도 생긴 게 이상해. 설마 풀은 아니겠지?"

내가 현실을 받아들인 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제 막 돋아서 그러겠지, 아직 성장 초기라 저렇게 생긴 거겠지, 시간이 지나면 잎이 제대로 생기겠지. 레몬밤이 다 같은 모양으로 자라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법이지 팥이 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일단 잎 모양이 레몬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신품종이라고 해도 원조에서 너무 빗나갔다.

"설마 저거 풀은 아니겠지? 엄마는 분명히 레몬밤하고 페퍼민트를 심었는데 다른 게 날 리가 없잖아?"

아무리 합리화를 하려고 해도 아닌 건 아니었다.

콩 심은 데 콩은 안나더라도 풀이 날 수는 있는 법이었다.

내가 증명해 보였다.

"아무래도 저건 풀 같아. 돋으라는 허브는 안 돋고 풀만 돋았어. 그게 풀인 줄도 모르고 그동안 엄마는 그렇게 열심히 기르고 있었네."

아들 앞에서 하소연을 했다.

"엄마. 어떻게 풀이 돋을 수가 있어. 심지도 않았잖아?"

"생각해 보니까 저 화분에 있는 흙을 외할아버지 집에서 가져와서 섞었잖아. 거긴 시골이니까 풀 씨가 흙 속에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걸 가져다 여기 화분에 담아서 엄마가 매일 물도 주고 햇볕도 쬐게 해주고 바람도 쐬게 해 주니까 잘 자란 것 같아."

"그래도 아닐 수도 있잖아. 기다려 보자. 허브가 맞을 지도 모르잖아."

"아니, 풀이 거의 확실해. 엄마가 밭에서 저렇게 생긴 풀을 봐 버렸어. 똑같이 생긴 것 같아."

"정말? 어떡해?"

"일단은 모르겠다."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정성들였는데."

"세상에 풀을 엄마처럼 이렇게 정성껏 키운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야."

"아휴. 그동안 풀을 키웠다니."

"그러게 말이야. 풀을 키우려고 그렇게 열심히 돌봤다니."


지금 바질 화분에도 저렇게 똑같이 생긴 생명체가 같이 자라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허브가 하나 더 늘었다고 좋저 하면서 그것도 어떻게든지 살려 보겠다고 심혈을 기울여 키웠는데 이젠 뽑아내야 하는 건가.

저 화분에 있는 세 포기 풀도 죄다 뽑아 버려야 하나.

어차피 내가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했으니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잔인한가?)

하지만 또 기른 정이 있으니 당장 뽑는다는 것도 너무 매정해 보인다.

풀이라는 것이 확실시 된 후 이제 흙이 말라도 나는 더이상 호들갑 떨며 물을 주지 않는다.

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스스로 흠칫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다하다니.

허브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때는 당장 숨 넘어갈 듯 달려 들어 물을 줘 놓고 고작(?) 풀이라고 정체가 드러나니 이렇게 야박해지고 만다.

뽑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나는 기로에 서 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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