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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5. 2024

과거를 물어 주세요

여전히 미심쩍은 과거

2024. 11. 14.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가 옛날에 탁구를 했다고?"

"응. 했지."

"외할머니는 안 했다고 하던데?"

"탁구 선수를 한 게 아니라 옛날에 교생실습 갔을 때 그때 '해봤다'고."


느닷없이 딸이 나의 전생만큼이나 까마득한 20년 전의 나의 과거를 들추기 시작했다.

언젠가 그 양반이 신문을 보다가 올림픽 얘기를 하던 도중에 각종 경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에 한창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에헴,

또 나의 화려한(지 흑역사로 얼룩진 것인지 판단 불가능한) 과거를 소환할 때가 된 건가?


"너희 엄마가 탁구를 다 했다고? 엄마는 운동 신경이 없는데?"

이양반이 또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들기 시작하시네?

"내가 왜 운동 신경이 없어? 나 잘했어.(아마 잘했을 거야. 잘했을 것으로 추정이 돼. 잘했다고 믿고 싶어. 못했어도 잘했다고 치자. 이제 와서 과거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당신이? 당신은 진짜 운동신경은 없어. 보면 못해."

듣자 듣자 하니까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고백하자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알겠네.

"내가 말했지? 나 6학년 때 학교 대표 달리기 선수였다고."

"너희 엄만 '달리기만' 잘했어."

이 양반이 내가 달리기만 잘했는지 달리기도 잘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또 아무 말 대잔치람?

"그때 내가 군에서 3등 했다니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게 기억한다. 3등이었어야 한다. 무슨 상을 받기는 받았다. 적어도 육상 경기에서 '개근상'을 받아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지금 생각해도 그건 정말 미스터리이긴 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다.(하지만 이런 양심 고백을 그 양반에게만은 들키지 않기를) 그래도 달리기에는 조금 소질이 있었나 보다. 그래도 학교 대표인데 잘 달리지도 못하는 학생을 대표로 내 보낼 리는 없지 않은가. 아주 가끔 너무 사람이 없어서 그냥 아무나 내보내는 일도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내가 당첨이 됐는지 지금도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학교 대표로 오래 달리기 선수로 육상 대회에 나가긴 했다.

수학 경시대회라든지 과학 경시 대회 이런 대회에는 절대 추천된 적도 없고 나도 관심도 없었지만(나는 그렇게 욕심이 많은 학생이 아니었다. 그런 대회는 다른 친구에게 양보했다. 애초에 나는 그런 대회에 나갈 만큼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거니와) 글짓기 대회라든지 사생 대회, 이런 대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갔다.

평소에는 글짓기나 사생 대회에만 나갔는데 갑자기 오래 달기기 선수로 육상 대회에 나가게 됐을 때는 너무 뜻밖이라 나조차도 놀라웠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대회에서 3등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솔직히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닌 나였기에 상을 받고도 얼떨떨하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나는 100m 달리기를 거의 20초가 다 돼서 달리던 아이였는데 어쩌다 육상 대회에 나가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6학년 때의 나는 달리기를 잘하게 생기기는 했다, 당시의 사진만 보면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생활기록부에 그에 관한 증거가 기록되어 있는지 한시바삐 팩스민원이라도 신청해 보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이것도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다.

팔다리가 가늘고 살집도 없던 나는 '잘 뛸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얼떨결에 육상 대회에 나가서 운 좋게(그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상까지 받아 와서 오늘날 이렇게 우리 집 멤버들에게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그 사건을 걸핏하면 우리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아직 어린 남매는 내가 운동에 소질이 살짝 있는 줄 착각을 하고 있고, 그 양반은 그럴 리가 없다고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것이다.

"교생 실습 할 때 교장 선생님하고 탁구를 했거든. 엄마는 잘 쳤다고 생각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처음에는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시더니 나중에는 대놓고 신경질 내시더라. 너무 못한다고."

"안 봐도 뻔하다."

또 그 양반이 끼어들었다.

"엄마는 양손잡이인데 왼손을 더 많이 쓰잖아. 그래서 뭘 하든 상대방이랑 좀 안 맞아.(물론 네 아빠랑 가장 많이 안 맞지.) 거의 다들 오른손잡이라서 엄마랑 경기를 하면 좀 이상하게 되더라고."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며 나의 왼손을 탓하고 상대방을 탓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운동신경이 없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왼손을 더 많이 쓰는 근본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나는 운동신경이 좋아질 수가 없다.(고 나는 백 년 전에 결론 내려 버렸다)

친절하게 알려주시던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돌변해서 신경질적이 되어버리자 당황스럽고 억울하기까지 했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차라리 탁구 말고 배드민턴을 쳤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지 모르는데.

하지만 이마저도 자신할 수 없다는 현실에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이 운동신경이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사람이 완벽할 수도 없는 거잖아? 모든 걸 다 잘하기는 힘들어. 살짝 부족한 면도 있고 해야 인간미도 있는 법이잖아. 안 그래?"

라고는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았다, 물론.

만에 하나 저런 말을 눈치 없이 우리 집 어떤 성인 남성 앞에서 했다가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격하게 항의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운동신경은 없지만,

분위기를 파악하는 눈치라는 것은 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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