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실행
신고
라이킷
13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글임자
Nov 12. 2024
그건 고마운데, 저건
계산은 정확하게
2024. 11. 11.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잠깐만 기다려봐. 보지 말고!"
또 뭘 들고 오셨길래 아드님이 저리 호들갑이신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뭔가 내게 좋은 일인 것 같기도 했다.(고 일단 헛다리부터 짚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 셋이 외출을 하고 돌아온 일요일 오후였다.
멤버들이 없는 틈을 타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쓸고 닦고, 김밥 싸고 정리하고.
이제 독서를 좀 해 볼까 하고 폼을 잡았는데 딱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어쩜, 타이밍 좀 보라지!
설마설마했는데 그날도 그 양반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자신의 몸집만 한 상자 가득 먹이를 담아 귀가하셨다.
나가기 싫다고 싫다고 끝까지 버티던 아드님은 평소에 절대 나는 사 주지 않는 음료수를 내 앞에서 들이켜며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엄마를 위한 거야."
마치 자신이 준비한 것마냥 자랑스레 그것을 꺼내 놓았다.
"이건 엄마를 위해서 아빠가 산 거야."
친절하게 그것의 출처가 어디인지 밝히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물론.
아,
그러고 보니 다음날이 바로 그날이구나.
"정말? 고마워."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인사는 빠뜨리지 말아야겠지?
"근데 이런 건 안 사 와도 되니까 내 말이나 잘 들었으면 좋겠다."
이건 이거대로, 저건 저거대로 따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 나도 문제다.
결정적으로 앞으로 그리 하겠다는 그 양반의 확답도 받지 못했고 말이다.
평소엔 그런 건 상술이네 어쩌네 하면서 질색팔색 하더니 웬일이람?
또 장바구니에 뭘 잔뜩 담아 두셨나?
이제 택배 폭탄 맞을 준비만 하면 되는 건가?
피차 살 만큼 산(?) 사람들끼리 이런 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중에 또 무슨 아쉬운 소리를 하시려고 저러나 싶기도 했다.
오전에 이발해 준 것에 대한 보상인가?
"아직 안 끝났어.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지? 녹기 전에 일단 얼른 냉장고에 넣고 올게."
아드님은 후다닥 냉장고로 뛰어갔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그것이었다.
"우린 다 먹었어. 엄마 것만 가지고 왔어."
셋이서 몰래 먹고 입을 싹 씻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집에 혼자 남은 나를 가엾이 여겨 이렇게까지 살뜰히 챙겨 주시다니 저 멤버들이 컴백하면 먹이려고 지지고 볶아서 김밥을 싼 보람은 있구나.
"자, 이거. 당신이 저번에 말했잖아."
웬걸? 며칠 전에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전에 내가 맛있었다고 했던 짜장면이었다.
"저 짜장면 옛날에 먹었을 때 맛있었는데. 지금도 나오나?"
내가 그렇게 말문을 열었을 때 거침없이 지금은 안 나올 거라고 자신 있게 외치던 양반이었다.
"안 나오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나오네. 당신이 맛있다고 해서 샀어."
"백 년 전에 먹고 안 먹어서 이젠 맛있는지 어쩐 지도 모르겠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한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착실하게 구매해 온 그 양반이 잠시 달리 보이기까지 했다.
달리 보이긴 했지만 달리 어찌해 볼 마음은 없다고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우리 집 멤버들이 각자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골고루 잔뜩 사 온 것을 정리하며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요즘 애들 빵 잘 안 먹는데 무슨 빵을 이렇게 많이 샀어?"
"냉동실에 넣으면 돼."
"냉동실 들어가면 안 보여서 안 먹게 된다니까."
"일단 냉동시켜 두면 되지."
"근데 날짜가 하루밖에 안 남았네? 지금 저녁이고 김밥 먹을 거라 빵도 안 먹을 거 같은데."
"그랬어? 몰랐네."
"이런 건 살 때는 날짜를 꼭 확인해야지. 이왕이면 날짜 넉넉한 걸로 사지 하필이면 달랑 하루 남은 거롤 사 왔어?"
"그건 못 봤지."
"양도 너무 많은데 저걸 다 어째?"
물론 하루 이틀 두고 더 먹는다고 사경을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제발,
나한테 아무것도 주지 말고 신경 쓸 거리도 주지 않았으면.
잘 나가다가 왜 이러실까.
"그래, 아빠. 음식 살 때는 그게 기본이지. 날짜부터 확인을 하고 샀어야지."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 봐 아드님이 또 한 번 나서 주셨다.
결정적으로 저렇게 많이 사놓고 정작 본인은 잘 먹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충동적으로 집어든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이제 나와 다른 멤버들은 분발해야만 한다.
최대한 그것을 야금야금 축내도록, 맛 같은 건 모르겠고 그냥 버릴 수는 없으니 일단 해치우고 보는 걸로.
keyword
쇼핑
가족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