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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8. 2024

첫째 새언니가 자매님들 앞에서 코웃음을 쳤다

어느 며느리들과 시누이의 수다

2024. 12. 4.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가 우리 어머님네는 예전에 김장을 200 포기 이상씩 한다니까 다들 나보고 거짓말한다고 그랬어."


첫째 새언니가 무용담을 풀듯 난데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언니네 친정도 보통 스무 포기 정도만 김장을 한다고 했으면서 남들 앞에서 시가의 김장 규모를 가지고 거짓말한다는 의심을 받아가면서까지 사람들 앞에서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갑자기 신이 난 듯 보였다.


"그쪽 사람들은 보통 스무 포기, 많으면 서른 포기 하거든. 근데 그거 하면서도 힘들다고 그래. 배추도 그냥 절인 배추 사서 하는 거야. 어머님은 직접 배추도 다 절이고 양념도 다 만들어서 하시잖아. 그래서 내가 그 사람들이 하는 정도는 장난이라고 했지. 그 얘기 들으니까 웃음이 나오더라니까. 우리는 기본이 200 포기가 넘었는데 말이야. 어머님네에 비하면 스무 포기 그 정도는 김장 축에도 못 끼지. 근데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믿어. 내가 20 포기 하는 걸 '0'을 하나 더 붙여서 200 포기라고 거짓말로 말한다고 생각하더라니까."

언니는 다시 생각해도 뭐가 그리 우스운지 스무 포기 하는 김장은 이제 애교스럽다고 깔깔댔다.

이게 바로 며느리 경력 20년의 여유란 말인가?

내일모레면 정말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큰 새언니는 종종 지인들에게 시가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사람들이 다들 안 믿는다는 거다. 새언니가 없는 말 하는 것도 아닌데, (좀 뜬금없긴 하지만) 불신지옥이라던가? 하지만 정말 이건 언니가 다니는 교회 자매님들과 있었던 일이니 나는 그 '불신지옥'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교회에 가서 어머님이 얼마나 김장을 많이 하시는지 사실대로 말해도 다들 안 믿어. 무슨 김장을 그렇게 많이 하냐고. 하긴 다들 거긴 많이씩 하진 않거든, 우리 교회도 김장을 하긴 하는데 많아야 서른 포기 정도야. 근데 그거 하는데도 사람들이 열 명도 넘게 와서 같이 한다니까. 그러니까 금방 끝나긴 해. 우리 김장하는 거 와서 보면 놀랄 거야. 그치, 아가씨?"

나는 새언니에게 동의하는 대신 돌발 퀴즈를 냈다.

"언니,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 줄까? 둘째 새언니 친정에서 이번에 김장 몇 포기 했는지 알아?"

그제야 큰 새언니는 동서가 생각났다는 듯 잠자코 있던 둘째 새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600 포기 했대."

나는 입이 근질근질한 나머지 발설하고 말았다.

동시에 큰 새언니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머, 정말? 정말 600 포기나 했어? 세상에!"

방금 다른 자매님들이 우리 집이 전에 200 포기 이상씩 했다는 말을 안 믿는다고 거짓말이라고 한다고 그러더니 이번엔 내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성당에도 드리고 동네 어르신들도 드린다고 올해 600 포기 했어요. 김장봉투 사는 데만 5만 원 넘게 들었어요."

"세상에! 고생했겠다. 말이 600포기지. 그 많은 걸 다 어떻게 했어?"

"동네에서도 도와주시고 엄마 친구분들도 오시고 성당에서도 오셔서 다 같이 했어요. 저는 심부름만 했는데도 정신없고 힘들더라고요."

"심부름도 힘들지. 차라리 가만히 앉아서 김장만 하고 말지."

"이번엔 아빠가 동네 어르신들 대접 한 번 하신다고 해서 김장 김치랑 고기랑 떡이랑 간단히 준비해서 마을회관에서 대접해 드렸어요."

"정말? 진짜 대단하다.  그런 것도 다 준비하려면 일인데 말이야."

"엄마가 고생 많으셨죠."

계속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친정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닌디. 김장하는 것도 바쁜디 동네 양반들 대접하신다고 엄마만 고생하셨겄다. 그런 거 하믄 여자들만 힘들다."

같은 여자로서 동지애를 느낀 엄마는 다음부터는 절대 그리 하지 마시라고 둘째 새언니에게 신신당부했다.

"엄마도 아프고 힘드니까 다음에는 하지 말라고 하셔라. 남자들은 모른다. 안 해 봐서 몰라. 그런 것이 얼마나 힘든디..."

이번에 엄마도 김장 준비를 하시면서 아빠와 살짝 삐끗하셨다고 했는데 안사돈의 고충을 백번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셨다.

"저도 엄마 힘드니까 내년에는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안 하신다고 하긴 했는데 진짜 안 하실지 어쩔지는 내년 돼 봐야 알죠. 이번에도 아빠가 600포기 하고 배추 좀 더 사서 할까 그러셨다니까요."


큰 새언니는 이제 더 이상 시가의 김장 수준을 주제로 자매님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을 것이다. 더 대단한 집이 나타났다. 둘째 새언니 친정의 600 포기는 감히 우리 친정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마도 그 교회의  자매님들은 이 말을 더더욱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법 신실한 편인 큰 새언니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착실히 성당에 나가는 둘째 새언니도 거짓말 하나 보탤 리도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번 김장에도 큰 새언니는 에피소드 하나를 건졌다.

"내가 가서 우리 동서네는 600 포기 했다고 말하면 진짜 아무도 안 믿을 거야."

신기록은 역시나, 깨지라고 있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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