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몸 아픈 것 가지고 김장을 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그런 일은 천부당만부당하다는 듯 첫째 며느리에게 강하게 말씀하셨다.
아예 김장을 안하기는 힘들긴 하다, 솔직히.
일단 아빠가 그걸 받아들이기 힘드실 거다.
아빠 혼자라도 하겠다고 나설 분이시다.
김장없는 겨울이라니, 아무리 엄마가 편찮으셔도 할 건 해야 한다는 입장인 분이다.
가끔 아빠는 너무 고집스러울 때가 있으시긴 하다.
그래서 엄마가 힘들 때도 있다.
옆에서 보는 나도 답답하고 힘든데 엄마는 오죽할까.
올 초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그때 나는 앞으로 친정의 모든 것이 획기적으로 다 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 기대했었다. 이젠 농사 일도 줄이시겠지, 아니 어쩌면 완전히 접어 버릴지도 몰라. 당분간 엄마는 아무 것도 안하시겠지. 충격적인 검사 결과의 여파로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지, 아빠도 달라지시겠지. 그 전과는 같을 수가 없겠지. 아마도 엄마나 아빠도 모두 혼란스러우시겠지 했었다.
그러나, 충격의 여파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 친정 가족은 모두 그 사실을 받아들였었고 최대한 발빠르게 4남매가 대처했었다.
의료 파업 때문에 가슴 졸이며 불안해 하기도 했었고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루하루 애가 탔었다.
여기서는 나와 둘째 오빠가 병원을 모시고 다니고 수술과 관련해서는 큰오빠와 남동생이 번갈아 가며 엄마와 함께 했었다.
그동안 평범했던 일상이 어쩌면 앞으로는 불가능해질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마음은 봄부터 쭉 이어져왔다.
하지만 엄마는 해내셨다.
올해도 김장을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살짝 실패(?)한 기분이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며느리들에게 들키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내가 친정에 도착한 것은 토요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엄마는 막 버무리기 시작하셨다.
엄마의 며느리들 몰래 엄마랑 나랑 둘이 다 해버리자고 하긴 했지만 거실에 잔뜩 쌓인 배추를 보니 막막하기도 했던 건 사실이다.
아직 진도가 하나도 나가지 않았으니 며느리들이 오기 전에 해치워 버리겠다는 당찬 계획은 아마도 무리일 듯 싶었다. 항상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지는 법이니까.
어쨌거나 엄마랑 내가 완벽히 김장을 다 끝내기도 전에 며느리들이 속속 도착하고야 말았다.
이를 어째? 이건 예상 시나리오에 없던 내용인데.
"어머님, 이 양념 섞는 거 어떻게 하셨어요? 양도 엄청 많아서 힘드셨겠는데."
며느리들이 안쓰러워 하며 물었다.
"아빠랑 같이 하다가 하도 허리가 아파서 쉬었다가 밤 12시 넘게 했다."
엄마는 정말 힘드셨는지 저 말을 내게도 몇 번이고 하셨다.
아빠가 같이 하셨다고는 하지만 엄마 말씀처럼 '그런 거 하면 여자들만 힘들다'.
아무래도 김장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주도적이 돼서 하는 일이다보니 어쩔수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전날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는 살짝 불화도 있었다고 엄마는 슬쩍 내게 제보하셨다.
"내가 느이 아빠가 쪽파 다듬는디 한 소리 했더만 '나는 안해.' 이라고 방에 들어가시더라. 그냥 아무 말도 않고 하는 대로 보고나 있을 것인디. 나만 고생했다."
엄마는 웃으면서 뒤늦게 후회하셨다.
"그러게 뭐하러 그런 말을 해? 마음에 안들어도 아쉬우니까 그냥 아무 말도 않고 있었어야지."
칠순이 넘은 부부도 저렇게 유치할 수 있다니, 부부는 젊으나 안 젊으나 다 비슷한가 보다.
일을 시키고 못미더워서 잔소리하다가 내 일거리만 더 늘어났던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밤새 엄마가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며느리들이 올해는 유난히 빨리 도착해서 같이 김장을 했더니 확실히 진도가 빨리 나가긴 했다.
보통 나랑 엄마랑 하면 정말 하루가 꼬박 걸리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끝냈다.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할 때는 아들들이 나서 주고 내 아이들도 양념을 덜어주거나 배추를 날라주는 등 한 몫 톡톡히 해 줘서 훨씬 수월했다.
"OO 어매야, 맛있게 됐냐?"
엄마는 꼭 음식을 하고 난 후 며느리들에게 물어 보신다.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으신다.
"어머님, 정말 김치 맛있네요."
며느리들은 꼭 맛있다는 대답만 한다.
"언니, 짜. 난 짠데? 안 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휴, 아가씨 하나도 안 짜."
"짠데 안 짜다고 그러네."
"김장 김치는 이 정도는 돼야 돼. 짠 거 아니야."
그때 갑자기 엄마가 말씀하셨다.
"너는 그것이 뭣이 짜다고 그러냐. 저 정도는 돼야제. 안 그러냐, OO어매야?저것은 지가 싱겁게 먹음서 짜다고 그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