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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3. 2024

모두 라이벌뿐이네

많을  수록 불리한 일

   

2024. 12. 1.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제 중학교 가니까 내년 설에는 용돈을 더 많이 받겠지?"

딸은 혼자 신이 나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벌써 설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

"누구 맘대로?"

나는 딸에게 찬물을 끼얹은 게 틀림없다.(고 뒤늦게 반성한다.)

"에이, 그래도 초등학생이랑 중학생은 다르지."

그래도 딸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졌다.

"글쎄, 과연 그럴까?"


지금,

여기,

한 소녀가 있다.

내일 모레 중학생이 되는 소녀,

아마도 중학생이 되면 용돈을 더 많이 받게 될 거라고 착각에 빠져있는 (혹은 혼자서만 부푼 기대에 기뻐하는) 소녀.


"너 중학교 가는 거랑 용돈이랑 무슨 상관인데?"

나는 딸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기 때문에 의아해서 물어 본 거다.

"엄마, 그래도 중학생 되는데 용돈이 더 생기지 않을까?"

무슨 근거로 딸이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뜻밖이었다.

대놓고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놀라웠지만(물론 나도 어릴 적에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혼자만 기대했었지 대놓고 그런 말을 부모님께 한 적은 없었다.) 딸 혼자서만 이미 기정사실화 해버린 것 같은데,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건데 너무 저렇게 기대에 차 있으면 그리 좋을것도 없을 텐데, 만에 하나 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닥쳤을 때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는 게지? 물론 용돈 같은 걸 가지고 현실을 감당하네 마네 하는 말도 우습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딸이 너무 자신 위주로 생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철이 없기로소니, 아이들은 가끔 보면 정말 철없는 생각과 말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어린이도 아닌 나도 가끔 철없는 생각과 말을 할 때도 있으니 사돈보고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란 것을 양심상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엄마, 중학교 가면 나 용돈 올려 줄 거야?"

"엄마, 나 내년에는 용돈 올려 줄 거지?"

"엄마, 그래도 중학생인데 좀 더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 초등학생하고 중학생하고 같아?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그래."

엄마, 엄마 하면서 딸은 올 하반기부터 꾸준히 '용돈 인상'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엄마 그만 좀 부르렴, 엄마 닳아 없어지겠다.

"그래. 생각 좀 해 보자."

"쉽게 결정할 건 아닌데."

"아빠랑 얘기해 볼게."

"지금도 적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다 쓰기 나름 아니겠어?"

나는 매번 저런 종류의 대답만 했다.

"아니, 얘가 지금 엄마 앞에서 용돈 협상을 하려고 드네? 용돈을 얼마나 줄지는 어디까지나 엄마 아빠가 결정할 문제지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할 건 아니지. 한 달에 2만원 정도면 절대 적은 금액도 아닌데 그래? 엄마 어렸을 때는 용돈이나 있었는 줄 알아? 용돈도 매달 안받아봤어. 그냥 어디서 생기면 그걸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 쓰고 그랬지 부모님한테 매달 용돈 달란 소리 한 번 안하고 살았다고. 너희는 지금 호강하는 거야. 꼬박꼬박 매달'2만원씩이나' 받잖아. 그리고 그 돈을 어디에 쓰든지 별 간섭도 안하잖아. 네 나이 또래 친구들 중에서도 용돈 안 받는 친구들 있을걸? 거기에 비하면 넌 정말 부자지, 부자!"

라는 한오백년 전 잔소리같은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게다가 최소한 용돈을 줄이겠다는 어마무시한 말 같은 것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

솔직히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매달 부모님께 일정한 금액의 용돈을 꼬박꼬박 받아쓰던 사람이 얼마나 있엇을까?

가장 확실한 증인으로 나의 둘째 새언니를 추천하는 바이다. 적어도 나의 둘째 새언니도 나처럼 어렸을 때 따로 용돈이란 걸 매달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고 평소에 어디서( 물론 그건 어두운 골목길에서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것도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돈이 생기면 그런 쌈짓돈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곤 했었다고 분명히 내게 알려왔다.

또, 갑자기 이 시점에서 그 양반이 생각났다.

"아빠도 어렸을 때 용돈 매달 받아서 써 본 적 없었어."

이렇게 종종 아이들 앞에서 하시던 말씀이 불현듯 생각났던 것이다.

다른 라떼 타령은 적극 사양하지만 저런 종류의 라떼라면 자꾸 자꾸 마시라고 적극 권장하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 딸은 콧방귀 뀌기 일쑤다.

"엄마 아빠랑 내가 같아? 요즘 애들은 다 용돈 받아. 그리고 나보다 더 많이 받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이다.

당장 우리에게 용돈 인상을 바라는 건 무리로 보였는지 딸은 신분상의 변화(초등학생->중학생)를 이용해 틈틈히 친척들에게 받는 용돈의 인상을 꾀하려고 했다.(고 내 눈에는 다 보였다.)

"근데 합격아. 내년에는 너만 중학교 가는 거 아니야. 큰외삼촌네, 그리고 고모네 예비 중학생이 있잖아."

큰오빠의 둘째 아들과 둘째 시누이의 막내 아들도 딸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고로 그 셋은 어떤 면에서는(내 마음대로)운명 공동체다.

"뭐???"

딸은 미처 그 부분까지는 생각 못했던 모양인지 화들짝 놀랐다."

"아, 맞다. 그렇지..."

"그러니까 너만 중학교에 가는 게 아니라고. 네 말대로라면 중학생이 되니까 용돈을 더 줘야 한다면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좀 부담스럽지 않겠어? 외할머니나 외삼촌들은 말이야. 안 그래?"

"어? 정말이네. 어떡하지? 그걸 생각 못했네."

"그러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아이, 좋다 말았네."

"근데 합격아. 엄마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 해 주랴?"

"뭔데?"

"내년에 막내 삼촌네 OO이도 초등학교 입학하는 거 알아? 그럼 내년에 초등학교랑 중학교에 입학하는 손주들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세명이나 되는 거야.(딸이 가장 믿는 구석은 저 두 분들이다.)"

딸은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뭐야. 다 내 라이벌이잖아!"

누가 어린이 아니랄까 봐.


지금,

딸에게는,

세상에 두 부류의 학생이 있다, 일단.

초등학생과 중학생.

지금,

딸에게는,

라이벌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사촌동생과 중학교에 입학하는 외가쪽 사촌, 역시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하게 될 동갑짜리 친가쪽 사촌.

그녀에겐 사촌도 많고 라이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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