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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7. 2024

그 사람은 할인도 안 했는데 내가 왜 데려왔을꼬?

호구가 살고 있어요

2024. 12. 16.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 포도씨유도 4개나 들어 있는데 할인을 엄청 많이 하는 것 같더라. 몇 개 안 남았길래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내가 얼른 집어 왔어. 나 잘했지? 당신 할인하는 거 좋아하잖아."

"할인을 많이 하는 것 같을 때 사는 게 아니라 정말 할인을 하는 게 맞는지 확인해 보고 샀어야지. 물건은 할인한다고 사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필요한 걸 사야 하는 거라고. 할인했다고 하면 용량을 줄였다거나 같은 무게인데 나눠 담아서 결국은 가격은 그대로인데 얼핏 보기에는 할인이 많이 들어간 것처럼 착각하게 한 건 아닌지 그런 걸 알아봐야지."

"진짜 마지막으로 하는 할인이라고 했다니까."

"그럼 진짜로 마지막이라고 하지 가짜로 마지막이라고 할까? 솔직히 말해 봐. 나 몰래 보따리 장사 나가려고 그러지? 저거 떼어다가 다시 내다 팔려고 산 거지? 얼마나 더 붙어서 팔아 먹을 거야? 설마 정말 다 먹으려고 산  아니지?"


'까마득 한 날 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이육사의 '광야' 중에서)' 어디 호구 탄생하는 소리 들렸으랴...


김치는 그렇다고 치자.

난데없이 먹지도 않는 포도씨유는 뭐 하자고 4개씩이나 사 오신 거람?

그것도 500ml짜리도 아니고 900ml씩이나 되는 게 4개나 들어 있는 것을?

씨간장도 아니고 1번부터 차례대로 이 포도씨유 다 먹고 나면 저 포도씨유 새로 꺼내서 그 전설이 백 년이고 천년이고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란 말인가?

"그래서 얼마 주고 샀는데?"

"얼마 안 줬어. 저게 4개나 들어있는데 진짜 싼 것 같더라."

"싼 것 같을 때 사는 게 아니라 정말 확실히 쌀 때 사는 거라니까!"

"아,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그렇다니까!"

"그냥 놔두고 먹자."

그럼 놔두고 누군가 먹기야 먹어야지 놔두고 바를까?

"기름은 특히 미리부터 사서 쟁여 놓을 필요가 없다니까.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250ml짜리 올리브유 하나 사도 몇 달을 먹는데 저 많은 걸 다 언제 먹을 거야? 그리고 내가 며칠 전에 새로 올리브유 샀다고 했잖아. 내년 초까지 먹게 생겼다고."

"아, 그랬어?"

"그랬어가 아니라 그랬다고! 내가 그거 새로 사 온 날도 분명히 말했는데, 앞으로 쓸 일 있으면 쓰라고 위치도 알려 줬잖아. 오래 두고 안 먹으려고 일부러 작은 거 사서 먹는다고 했잖아. 많이 안 먹으니까 그렇게 사도 꽤 오래 먹더라고 내가 말했다고. 그런데 지금 900ml짜리를 4개나 사 왔어?"

"그래도 할인했잖아."

"할인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아? 다른 데서는 얼마에 파는지 알아? 내가 보니까 다른 데랑 비슷해. 다른 데도 다 그 정도 가격에 팔고 있어."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당했다'라고 한다지 아마?

이런 사람을 고급 전문 용어로 '호구'라고 한다지 아마?


"정말? 어떡하지?"

"어떡하긴. 혼자 5백 년 동안 입고 먹고 마시고 바르면 되지."

"당신 많이 먹으라고 난 당신 생각해서 그랬지."

"제발 내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

"왜 그래? 잘 먹을 거면서."

"내가 다른 건 그런대로 먹어도 포도씨유는 향이 비위에 거슬려서 절대 못 먹겠다고 한 거 생각 안 나? 옛날에도 어디서 가져와가지고 아까워서 할 수 없이 먹어 보려다가 결국 안 먹었다고. 그래서 너무 오래 돼서 그걸로 연마제 닦았다고! 어쩜 하필이면 내가 먹지도 않는 포도씨유를 골라서 사 왔을까?"

"그럼 어머님 갖다 드리자."

"우리 엄마도 생각해 주지 말라니까, 제발!"

나는 비위가 강하지 못한 편이라 음식 냄새나 향에 아주 예민한 편이다. 포도씨유는 향도 못 맡겠다. 그런데 왜 꼭 하필이면 그걸로 골라 왔냐는 말이다. 하나도 아니고 250ml 짜리도 아니고 4개씩이나, 900ml씩이나.

"그럼 이거 살 때 소비기한은 확인했어?"

"어?"

어쭈, 당황하는 거 보니 보나 마나 확인도 안 하셨구먼.

아나나다를까, 소비기한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내가 항상 말하잖아. 먹는 걸 살 때는 그걸 확인하는 게 기본이라고."

이왕이면 소비기한 내에 없애버리는 게 좋을 테니, 그 기한 내에 저 많은 걸 소비하려면 우리 집 멤버들이 밤마다 너 한 그릇 나 한 그릇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할 것만 같다.

재주다, 재주야.

어쩜 내가 안 좋아할 내용으로만 이렇게 알차게 꾸리셨을꼬?


물건은 할인을 하면 싸게 사는 맛으로 사기라도 하지, 그 양반은 할인(?)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굳이 데려왔을꼬?(과거 나는 발령 지역을 어디로 선택할지 고민하는 그 양반에게 당시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지원하라고 적극 권장한 사실이 있다.)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마감임박 인간도 아니었는데, 다른 여인들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벌떼같이 달려든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꼬?


설,

마,

진정한 호구는..... 난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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