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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의 화원 Aug 30. 2024

너는 무심천에서, 나는 도서관에서

-너와 나의 서로 다른 성공방식-

개학을 앞두고, 대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족 휴가를 짬짬이 다녀오고 2학기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날 때마다 아파트 도서관에 와서 일을 하는 중이다. 어리고 젊은 학생들도 많지만,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아주머니들도,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노부부까지...이곳엔 나이를 불문하고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이 참 많다. (피서를 이곳 도서관에서 즐기시는 듯 하다.) 

 유튜브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으므로, 듣고 배운 내용을 하나씩만 실행해도 성공하기 쉬운 세상이라고 했는데, 이곳에 와서 느끼는 것은 이렇게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성공이 상대평가라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어제는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에 열람실을 나서는 아들 또래(초등학교5학년)의 학생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저 아이는 마음 속에 벌써 목표가 있나보다...벌써 자기 목표를 향해 달리는구나...참 기특하다...'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정확히는 그 아이의 부모가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낮에 아들과 함께 잠시 도서관에 들를 일이 생겼는데, 오는 길에 아들 또래의 한 학생이 가방을 챙겨 열람실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아들에게 "너 또래의 친구들도 여기서 늦게까지 공부 정말 열심히 하더라. 엄마는 어젯밤에 여기서 10시 넘어서 열람실에서 나서는 학생을 봤는데 넘 신기하더라고." 눈치가 빠른 아들은 내 속마음을 이미 간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한테 저렇게 공부하라는 말은 아니지?"

역시나...짜식...눈치가 백단이다. 아님 내가 너무 속이 보였거나. 하지만 이실직고 할 수는 없다.

"아니지~ 그냥 신기하더라고. 우리 아들은 나름 열심히 하고 있잖아. 네 방식이 있는 거지 뭐."

하고 얼버무렸다. 그렇게 도서관을 나와서 함께 간 곳이 아들이 졸라서 할 수 없이 찾아간 '낚시 마트'이다. 

이젠 집 앞의 무심천에서 낚시까지 할 모양이다. 


 지난 가을부터 온갖 지상 생물을 채집하며 탐구해 온 아들은 사마귀 알을 부화시키고 짝짓기에 성공해서 알을 낳게하고, 사마귀 생육을 위해 산 밀웜을 성체까지 키워 짝짓기에 성공한 후 다시 알을 낳게하고...밀웜을 자체생산하는 데에 성공했다. 거미도 종류별로 모조리 잡아와서 키우고 탈피과정을 보고, 짝짓기에 성공 후 알을 낳는 과정까지...나도 덕분에 아들의 어깨너머로 생물 공부를 하는 중이다. 


 그 모든 과정을 집 안에서 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집 밖에 있는 모든 곤충과 생물은 집 안에서 다 본 듯 하다. 부화한 수백마리의 사마귀가 아들의 방을 360도로 누비며 다니는 광경을 보며 할 말을 잃기도 했고, 전망좋은 우리집 거실 창에서 방목하며 거미를 키우는 바람에 거실창이 거미줄로 도배되는 것도 참아야했다. 매사에 깜빡하는 것이 일상인 아들은 채집통을 열고나면 뚜껑을 닫는 것을 잊기 일쑤라...손가락 마디만한 거미가 채집통에서 나와 온 집안을 누비고 다니다 곤히 자고 있던 내 몸을 기어다니기도 했고, 저녁 준비를 위해 야채를 씻던 씽크대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했고, 새벽에 볼일 보러 간 화장실 벽에서 발견되면서 내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순간마다 치미는 분노는...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ㅜㅜ 

 제발 좀 채집통 뚜껑을 닫으라고 말하면(물론 좋은 말로 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아들의 능력 밖의 무리한 요구인지 아들은 스스로를 탓하며 자꾸만 속상해하다 울기 일쑤이고...생물을 그만 잡아오라고 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며 엄마를 원망하다 또 눈물을 쏟아내며 집을 나간다고 시위를 하기 일쑤이다. 그 순간마다 생각했다. 이것은 부모로서의 단호함으로 끝까지 내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원하는대로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 맞는 일일까.


 어린시절, 무서운 아버지와 예민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원하는 것을 말할 줄도 몰랐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지도 않고 성장해 온 나에게 아들의 이런 고집은 수시로 나를 당황시킨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못했고 부모에게 고집부려보지 못했기에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부모가 안 된다고 하면 안 하는 것이 옳다고만 믿고 성장했던 나에게 아들의 모습은 감당하기 힘든 '반항'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언제까지고 내 경험의 틀 안에만 아이를 가둬둘 수는 없을 터였다. 모래가 뒹굴고 채집통 뚜껑이 열려있고, 가끔 밀웜이 바닥을 기어다니는 아들의 방을 볼 때면 미칠 것 같은 내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도. 이것이 아이가 끝까지 알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나는 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지금은 개구리 4마리와 잠자리 유충과 거북이2마리, 거미가 우리집에서 공생하는 중이다. 


 낚시마트에 다녀온 아들은 기분이 좋아져서 낚시 바늘을 끼우다 영어학원엘 갔다. 학원이 끝나고나면 또 집 앞 무심천에서 낚시하느라 해가 지고 깜깜해져야 돌아올 것이 뻔하다. 이제 아들 얼굴은 땡볕에 더욱 그을리고 얼굴 볼 시간은 더욱 더 줄어들겠구나...그리고 이제 채집통에는 물고기가 그득하겠구나...마음에 각오를 한다.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에이...기대말자...

아들은 지금 마음껏 자기 세상 속을 탐험하는 중이다.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안 하면 어떠랴...

도서관 밖에서 하고 싶은 배움을 원없이 하는 중이니...

앉아서 하는 공부로 상대평가를 하는 세상이라면, 그냥 두고보기에 불안할 따름이겠지만...

이제는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마음껏 파고들며 배우면 그것이 곧 밥벌이로 이어질 수 있는

'절대평가 세상'이니, 

너는 너의 세상을 마음껏 만들어 가거라.

 

내 옆에 아이를 붙들어 두는 것보다, 내가 아이 곁으로 가는 것이 아이와 더 가까워지는 방법일 터.

낚싯줄이나 낚시 바늘이 필요하면 또 엄마랑 같이 가자. 

너는 너의 세상에서. 나는 나의 세상에서. 

그렇게 각자의 트랙을 존중하며 살아보자.

너는 무심천에서, 나는 도서관에서.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잘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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