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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의 화원 Aug 26. 2024

무심천 강태공

아들이 낚시에 꽂혀버린지 이제 열흘 남짓.

그 열흘은 폭풍과도 같은 사건과 사고를 몰고왔다.

낚시 첫날 낚시마트에서 바늘과 미끼 구입.

낚시 첫날 낚시 후 첫 번째 낚싯대 분실.

다음날 낚시마트에서 두 번째 낚싯대 구입.

낚시 이틀째 되는 날 

들고오기 귀찮아서 강가에 모셔두고 온 낚싯대 분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낚싯대를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하고 속상했던 아들은 방 안에 틀어박혀 한참을 울었다.

사실 낚싯대를 강가에 잘 두고(?) 왔다는 말은 

누군가에게 '여기 낚싯대 있으니 가져가세요.'라는 말과 다름이 없음에도.

아들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전거를 아무리, 아무곳에나 던져놓고 오더라도

훔쳐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그간의 경험에서 

세상이 모두 그러할 것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시간을 울던 아들은 이번에는 어딘가에 던져두고 온 자전거마저 낚싯대처럼

사라질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전거를 찾으러 나섰다.

나는 눈물로 온몸이 범벅이 된 채 자전거를 찾으러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들, 엄마가 맛있는 저녁 해 놓을게. 자전거 찾아와서 맛있는 저녁먹자."라고 인사를 건넸다.

잠시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자전거 찾았어. 자전거 좀 타다가 갈게. 

근데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곧 꺼질거야."

"응, 이따 조심해서 와."

그렇게 낚싯대 사건은 일단락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20분도 채 되지 않아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기 아드님이 자전거끼리 부딪혀서 사고가 났어요."

첫마디에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 가슴을 강타했다.

"네? 그래요? 거기가 어디죠? 아이는 많이 다쳤나요?"

"여기가 시내 국민건강보험공단 아시죠? 거기 앞에 무심천이에요. 

아이는 많이 다친 건 아닌데 다리 한 쪽이 저리다고 하네요."

아들의 저녁을 준비하던 나는 혼비백산 한 채로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아이를 찾아 나섰다. 

무심천 어딘가라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를 빠른 시간에 찾아내기가 어려워

전화주신 분과 몇 번의 통화 끝에 다행히...아이를 찾았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40Kg에 가까운 아이를 내가 등에 업고, 

남편은 자전거를 짊어지고 계단을 올랐다.

다행히 심한 외상은 없었지만, 절뚝거리는 다리가 얼마나 다쳤는지 몰라

근처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이 의사가 없어 문을 닫는 바람에

2차병원 응급실은 인산인해였다.

하루종일 낚시할 생각에 끼니를 굶었던 아들은 그제서야 

배고픔을 눈치챘는지 속이 아프다고 한다.

병원 내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다.


2년 전에 아들이 클라이밍을 하다가 오른손 팔목이 부러져서 수술했던 그 병원.

그 편의점이다.

그날도 똑같았다. 하루종이 뛰어노느라 끼니를 잊은 아들은 

손목이 부러진 채로 진료를 보기 전에 이 편의점에 와서 라면과 핫바를 먹었었다.


다시 찾아간 그 병원 응급실 대기순서를 기다리며 

라면과 핫바를 먹는 아들을 바라보며.

ADHD아들을 키우는 나의 숙명을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또다른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앞에 

나는 담담하기로 마음먹는다.

지금껏 그래왔듯, 이런 일들을 내 일상의 기본값에 두고

충격의 역치를 한껏 올려보기로 한다. 


다행히 아들은 큰 이상 없이 그날의 충격을 흘려보내고 있고,

낚시 실력은 점점 일취월장하는 중이다.


낚시 성공 영상



사고 이후, 아들은 다시 자신의 용돈을 털어 낚시마트를 갔고,

세 번째 낚싯대를 샀다. 

낚시마트 사장님이 이제는 반갑게 맞아주시며 노하우도 전수해주신다.


책은 한 자도 보지 않지만, 좋아하는 낚시를 하면서 블루길과 배스가 생태계 교란종임을 알았고

직접 잡은 물고기 중에 토종인 모래무지와 붕어는 다시 살려주고 

생태계 교란종인 블루길과 배스는 생명을 앗은 후 땅에 묻어버린다고 한다.^^;;;

본인이 나름 생태계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저렇게 좋아하는 낚시를 하는 아들을 보며, 나는 저 몰입의 즐거움이 대단히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몰입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스스로 찾아내며 살아가는 아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런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낚시 의자 2개를 사다 주었다. 

동네 친구들에게 낚시 전도사가 된 아들이 낚시할 때 외롭지 않게.

그 옆을 지켜주는 친구 혹은 내가 앉을 의자이다. 


오늘 하루는 또 저 녀석에게 얼마나 행복한 하루가 펼쳐질까?

나도 너처럼. 오늘 하루 행복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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