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월 25일 수요일. 이제 겨우...수요일이다.
내 몸은 천근만근... 금요일의 컨디션으로 축축 늘어지는데,
달력이 가리키는 오늘은 아직도 수요일이다.
내가 '아직도'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월요일에 이미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다 못해 토해내었기 때문이다.
요즘 낚시에 한창인 아들은 지난 달에는 영어학원을 그만두더니, 이번에는 수학학원도 그만두고...
낚시와 주짓수. 두 가지에만 올인하고 있다.
아들이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데에는
늘 할 일을 먼저하고 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내 잔소리에 대한 반항심이 한 몫 한 듯하다.
늘 하고 싶은 것이 끝없이 많은 아들은,
노느라 잠 잘 시간도 부족한 녀석이라...
매일 해야하는 학원 숙제는
아들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 같은 것이었다.
평생을 해야만 하는 일이 우선이었던 나에게
늘.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인 아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 그 자체였다.
부모로서 그래도 해야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도리라 여겼지만,
아들은 온 몸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결국, 학원을 빠지고 낚시를 다니기 시작한 아들과 며칠 간의 실랑이 끝에 나온 말은,
"그래! 다 때려쳐!"
아들에게 모진 소리를 내뱉고 나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면하는 일은, 심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내 새끼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엄마인데,
다른 아이들을 걱정하고 위로하고 고민을 상담해주는 내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한심하고, 영 기운이 나질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결국, 이런저런 고민과 고민 끝에 나는
아이의 공부보다. 원하는대로 그냥 두고 지켜보고 응원해주자.
한 발짝 뒤로 물러나자.
그렇게 큰 마음을 먹고....
월요일 퇴근 후에는 오랜만에 아이들을 위한 요리에 열을 올렸다.
퇴근하자마자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베이킹을 한다는 딸아이를 도와 구름빵을 만들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아들이 함께 낚시를 가자는 말에....
푹푹 꺼져가는 눈두덩이를 간신히 뜨고...
함께 무심천으로 나갔다.
이미 해가 져버린 깜깜한 저녁.
무심천에는 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한 분은 붕어며 쏘가리를 쑥쑥 잘도 건져올리고 계셨는데,
아들은 그 분을 '낚시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그날이 스승님과 세 번째 만남이었는데,
얼굴이 두꺼운 편에 속하는 아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편이라...
이미 서로에게 익숙한 사이처럼 보였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온 유전자인지...아직도 모르겠다.)
아들의 낚시 스승님은 낚싯줄을 던지며...
아들에게 낚싯줄 던지는 요령과 자세를 가르쳐주셨고...
릴을 감는 법도 직접 봐 주셨다.
나는 그 곁에서 어깨너머로...
처음 잡아보는 낚싯대의 손잡이를 만지며 어설프게나마 따라해보고 있었다.
그때 아들의 낚시 스승님은
"지난 번에 그 낚싯대 아직도 잘 쓰고 있냐?"하시는 것이었다.
"무슨 낚싯대요?"
"저번에 네가 릴이 다 엉켜서 버리고 간 낚싯대 있잖아~
그거 내가 집에 가져가서 직접 다 푸느라...진~짜 힘들었다."
"그래요?"
나는 생면부지 남인 아들의 낚시 스승님이
아들의 엉킨 낚싯대를 일부러 가져가
직접 풀어서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아 두신 거란 말씀에....
아들이 써 내려가는 소설 속의 일화에 내가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아들과 함께 살다보면
믿기지 않는 여러가지 일들에 휘말릴 때가 종종 있는데,
그날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다.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꾹꾹 닫기로 결심한 채 살아가는 나에게
아들의 낚시 스승님은 단박에 내 가슴 속의 빗장을 풀어주셨다.
그분이 베풀어 준 친절은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뜨거운 가슴을 일깨워주었고,
공부와 담을 쌓겠다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가겠다고 하는 아들에 대한 걱정.
그 무거운 짐들을 한 번에 벗어던지게 해 주는 순간의 각성이기도 했다.
아들은 나와 약속한 시간을 어기고 낚시를 더 하겠다고 우겼지만, 낚시 스승님께서
"그래도 네가 해야 하는 일은 하고서 낚시를 하는 거야. 엄마랑 약속을 했으면 지킬 줄도 알아야지."
하시자, 그 고집불통이던 아들은 군말없이 "네."라고 대답하고 나를 따라 나섰다.
그런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겁던 고민이 헬륨 풍선처럼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한없이 가벼운 깃털로 변신하던 순간이었다.
꼭 영어, 수학 지식이 아니라도.
세상을 배움터로 삼은 아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스승님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혜를 얻게 될 지. 얼마나 많은 순간. 행복할 지.
나는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로서의 행복을 모두 얻은 것만 같았다.
영어와 수학 공부는 내려놓았지만,
함께 낚시를 하러 나오는 것만으로도
둘이서 대화를 하고
세상을 배우고
어제 멀어진만큼 오늘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돈을 내고 배우는 지식. 그 이상의 가치를 전해주신 아들의 낚시 스승님께 감사를.)
하지만, 나의 체력은 월요일. 그날로 끝이었다.
하루 5시간의 수업과 업무로 지칠대로 지친 내가
퇴근과 동시에 요리와 베이킹과 낚시를 하고
둘째의 숙제를 봐주고,
청소를 하는 일들은
일주일치 에너지를 몽땅 갈아넣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내 눈꺼풀에조차...
힘을 주기가 어렵다.
그래도 마음조차 힘에 부치지는 않는다.
아들이 만나게 될 세상.
그 너머에도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았으므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에 드는 9월26일.(12시가 넘었다.)
비록 아들의 방에서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개구리 사육통에서 풍겨오는
곰팡이 냄새가 온 집안을 장악하고 있지만,
나는 잠시 본분을 잊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스승님을 찾아 꿈나라로 떠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