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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 Jul 13. 2022

과거의 하루 기록 (8)

2021년 07월 04일의 기록

"장마"


7월 3일 토요일부터 대략 1-2주 동안 비가 많이 오기로 예정되어 있다. 대략 장마 시즌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장마를 어째서인지 "五月雨(사미다레)"라고 한다. 대략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국가인데도 한국은 7월에 장마가 내리니,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모든 게 같은 것은 아닌가 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에게 찍힌 사진이 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큰 우산을 들고 있는 내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나중에 그 사진을 본 다른 친구는 그 사진을 보고서 내 뒷모습만 보이는데도 무척 신나 보인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렇다. 나는 비를 굉장히 좋아한다. 가볍게 내려서 맞으면 시원한 이슬비부터 주룩주룩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까지 안 가리고 좋아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더운 날에 내리는 끈적거리는 비는 나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다. 어쩌면 비가 내리는 날의 그 차분하고 선선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가 내리는 분위기와 맞을 때 느껴지는 청량함 말고도 비 오는 날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우산 덕분이다. 누군가에게는 우산이 단지 비만 가려주는 번거로운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우산을 '공간을 나누는 도구'로써 좋아한다. 우산을 들고 있을 때, 우산 밑은 온전한 나 혼자만의 공간이다. 누구에게도 그 공간을 침범당할 이유도 없고, 남들도 비 오는 날에 자기 우산을 들고 다닐 테니 처음부터 침범할 이유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엄청 심각한 상황이 아닌 이상, 우산을 나눠서 쓰지 않는 것은 내 공간을 침범당하기 싫어 그러는 것이다. 어쨌든 여러 이유를 들어서라도 비는, 특히 며칠 동안 쭉 비만 내리는 장마철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이 들어서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전만큼 온전하게 비를 그냥 즐길 수 없어졌다는 것이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남의 생각을 하게 돼서 그런가 보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는 나와 다르게 비가 싫다고 한다. 하늘이 우중충하게 흐려지는 것도 싫어하고, 그냥 비가 내려서 젖는 것도 싫다고 했었다. 기분이 축 처지는 느낌이 난다고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비가 오게 되면 제일 먼저 그 사람이 생각나기도 한다. 요즘은 뭐하고 지내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연락이라도 먼저 해줬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 2022년 6월 22일의 첨언


오늘은 2022년 6월 22일 수요일이다. 빠르면 내일부터 다음 주까지 장마가 예정되어 있다. 작년에는 장마가 온다면서 정작 비는 거의 오질 않았는데, 올해는 공기의 습도부터가 진짜 비가 내릴 날씨다.


매년 장마가 오기 시작하면 드는 생각이 있다. ‘, 올해도 벌써 절반 정도가 지나갔구나.’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 것에 대한 놀람과 벌써 그렇게 됐나 싶은 아쉬움과 허탈감이 섞인 그런 생각이다. 장마가 시작할 때는 늘 6월의 끄트머리와 7월의 초입이 걸쳐 있어서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제가 때마침 하지였으니, 이제 날이 점점 짧아진다는 생각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서 많이 느낀다. 분명 시간은 상대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던  같은데, 어째서 내가 가진 시간은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어제같이 생생한 기억들도 벌써   전의 일이 되고, 앞으로 다가오게  일들은  깜짝할 새에 넘어지면 닿을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스물을 넘어서 2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이 되어있었다. 분명 나는 아직 사람이 덜된 철부지 같은데.


우야마 게이스케의 소설 중 『이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라는 작품이 있다. 소설의 내용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죽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죽고 나서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비를 뿌릴 수 있다고 했다. 맑은 대낮에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는 그런 비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간혹 비가 내리는 것을 보다가 가끔씩은 어떤 곳에 비가 내리면 좋을까 혼자 생각해볼 때도 있다. 누군가를 애도하기 위한 비가 될지, 나를 기념하기 위한 비가 될지. 대충 그런 고민이다. 이런 부류의 고민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게 되면서 누구나 해보는 고민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냥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문득 낯설어 멋쩍어져서 그런 것이다.


비는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것 같다. 비는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창 밖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순간들이 늘 있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에 쉼표같이 내리는 그런 비가 나는 좋다. 분명 비가 오기 시작하면 이런저런 일들이 불편해질지도 모르지만, 역시 나는 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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