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17일의 기록
죽기 직전에 내 인생을 아무도 없는 텅 빈 영화관에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내 인생을 영화로 놓고 봤을 때 어떤 장르가 될까.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들이 나올까.
주인공은 얼마나 멋진 사람일까.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멋진 사람들일거야.
죽기 직전에 보는 나의 인생 영화.
내용이 어떻든, 분명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인생이지 않았을까.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인생.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인생 영화.
나의 혹은 당신의 인생 영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20년 한국에서 흥행했던 10편의 영화의 평균 상영시간은 114.3분, 2021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가장 흥행했던 영화들은 평균 상영시간이 130.9분이다. 최근 2년간의 영화와 관련된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해서 한 편의 영화를 대강 120분, 2시간의 상영시간이 평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다"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인 80년을 이 영화의 120분과 같다고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어떤 영화가 될까.
80년을 120분이라고 가정했을 때, 영화 속 1분은 현실의 시간으로는 1.5년이 된다는 사실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실제로 영화가 80년 분량이라는 다소 황당한 가정을 해본다면 어떨까. 디지털 영화가 보급되기 전에 영화를 찍는 것에 가장 널리 보급된 필름은 '35mm 필름'이라고 한다. 이 35mm 필름은 초당 24 프레임인 영화를 기준으로 했을 때, 분당 27m 정도 쓰인다고 한다. 이 계산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인 80년을 영화로 담기 위해서는 필름만 대략 114만 km가 필요하다. 일본의 유명 밴드 "Official髭男dism"의 노래 중에 있는 "115万キロ の フィルム" (115만 킬로미터의 필름)이라는 노래도 이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인생을 하나의 영화로 본다면 어떨까. 내가 주인공이고 내 삶이 줄거리인 그런 영화 말이다. 우리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80년 길이의 필름만 115만 km에 달하는 영화가 될지, 1분에 1.5년의 시간을 압축한 영화일지는 모른다. 다만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내 기분과 감정은 그 영화의 분위기가 될 것이고 내 인생의 내용이 곧 영화의 내용이 될 것이다. 내 삶에 조금이라도 머무르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조연이자 관객이 될 것이다. 직접적으로 개입을 한 사람들은 조연이 되어 그 영화에 나오게 될 것이다. 그에 반해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사람들은 관객으로써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연과 관객의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도 분명 특별한 영화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수많은 가능 세계 중에서 지금 여기의 존재하고 있는 나 자신이 내린 선택들에 의해 만들어낸 유일무이한 영화이다.
조연과 관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다시 말해, 내가 아닌 내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의 영화에 나오게 될 수많은 조연들과 그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언제 어떻게든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는 늘 내 곁을 지켜줄 것이다. 그게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선생님이나 친구 혹은 애인, 배우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삶에 있는 사람들은 내 주위에 계속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내 곁에 없을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잠시 동안 떠나 있을 수도 있고, 영영 떠나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늘 내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보기에는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그 조그만 변화는 생각보다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마치 어린 시절에 오랜만에 뵙게 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왜 이리 훌쩍 커버렸냐고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남들이 놀란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분명 그들도 영화를 지켜보면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처럼 놓친 부분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늘 함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의 총량으로만 계산해본다면 의외로 내 곁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 있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출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를 지켜보는 사람도 일이 있어 중간에 나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시간의 분량이 아까 이야기한 필름 길이로 따지면 수십 km, 수 km 혹은 그보다 더 적은 몇 m나 몇 cm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시간 영화 기준으로는 1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게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누는 시간에는 다른 시간들에 비해서도 더욱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분량은 오로지 신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