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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 Jul 13. 2022

과거의 하루 기록 (7)

2021년 07월 03일의 기록

"우주"


우주는 되게 포괄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자로 쓰면 그냥 '집(宇)'과 '집(宙)' 두 글자를 붙여 놓은 말이다. 만물의 '집'인 이 우주는 지구에서 관측하고 탐구하기에 아직 미지의 영역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어느 분야보다도 기술 발전의 영향을 많이 받고 과학 기술의 정점에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납작한 지구'를 여전히 믿는 사람들이 있듯이, 아이러니하게도 비과학의 끝에 있는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주에서 제일 많이 언급되고 이론도 가장 많이 제기되며 논란이 되는, 미디어에서도 많이 등장해서 익숙한 이야깃거리 중 하나는 평행우주와 관련된 것이다. 나 또한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나, 대강의 지식으로는 '내가 한 사건을 마주칠 때 이 일의 원인과 결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가능세계는 무수히 많이 존재하며 내 선택으로 그 가능세계가 확정이 된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포기한 선택지를 선택한 가능세계들도 충분히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약 이 세계의 내가 택하지 않거나 저지르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서 나와 다른 결정을 하고 다른 삶을 사는 또 다른 '내'가 있다면, 어떤 삶을 얻은 '내'가 가장 부러울까?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히 내가 할 수 있었는데도 포기하고 하지 않았다거나 선택의 기로에서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들을 떠올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가장 크게 궁금한 것은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고등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으로 넘어가던 그 무렵에 지금의 나와 다른 결정을 한 평행 세계이거나 재수를 시작한 2019년, 스스로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엄청 많이 품었었던 그때가 아닐까 싶다. 물론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선택의 기로가 많기는 했었지만, 이 정도로 중대한 결정을 했던 순간들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나는 지금 그리고 오늘의 나 자신을 썩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내 선택들에 대해서는 결코 후회와 원망은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야 그런 일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 2022년 07월 11일의 첨언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선택한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은 태어나고 죽는다는 사실과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게 되는지 정도이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선택함으로 인해 결정된다. 그만큼, 삶을 살면서 무언가를 고른다는 행위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살다 보면 정작 내가 능동적으로 고를 수 있는 행위를 실행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지만 정작 그 선택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때가 많다.


하지만 뭘 고른다는 행위가 인생에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선택 하나하나의 영향은 미미할지도 모르지만 티끌모아 태산이 되듯이 이런 선택들도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처음과 비교해보면 꽤 차이가 크게 날 수도 있다.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 쌓이면 더 좋아지는 것처럼, 안 좋은 일과 실수도 쌓이면 쌓일수록 겉잡을 새도 없이 커져 감당하기 힘들어지니까.


하지만 살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신중한 것과 망설이는 것은 분명 다르다. 막상 무언가 고르려고 할 때 두 가지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고민하고 지켜보는 것을 신중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신중하다고 해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니다. 신중한 것의 핵심은 내가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망설이는 것은 결정하지 못해 단순히 뒤로 미루는 것이다. 얼핏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선택을 하냐 못하냐의 실은 굉장히 큰 차이다.


운명론이란, 모든 일이 정해진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움직인다는 철학적 이론이다. 실은 우리의 삶도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지가 발휘할 수 있겠지만 시작과 끝은 일정한 틀 안에서 움직이는 운명론적으로 결정된 삶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실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고민은 썩 중요치 않을 수 있다. 단지 내가 그것을 고르고 나서 후회를 하느냐 마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다 나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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