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상담 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인호 Oct 04. 2024

우린 스스로를 빨리 치유하려다 오히려 더 자신을 망친다

상담 일지 ⑧

아주 오랜만에 상담 일지다. 마지막 기록이 작년 12월이었으니,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상담은 쉬지 않고 받고 있다. 단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 뿐.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란 생각과 동시에, 여유가 흘러넘치다 못해 따분해 죽겠는 일상의 반복이다. 매일매일 비워내면서 동시에 채우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 한동안 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보여지는 모든 것에 피로감을 느낄 때.


설령 SNS가 보여주기식일지언정, 기록을 멈추니 자연스럽게 정리도 멈춰버렸다. 정리되지 못한 채로 부유하는 생각들이 많아지니 머리가 무거워졌다. 생각이 서랍을 여는 일이라면, 기록은 서랍을 닫는 행위다.


상담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삶의 리듬이 있다. 분명 좋은 날이 있고, 나쁜 날이 있다. 더 크게 보면 좋은 시기가 있고, 나쁜 시기가 있다. 이 시기는 때때로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그냥 어쩔 수 없는 흐름 그 자체인 것이다. 아등바등 노력해서 사라질 감정은 많지 않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희석되거나, 반대로 단단히 응축될 뿐이다. 문제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 끝에 깨달은 것은, ‘우리는 스스로를 빨리 치유하려다 오히려 자신을 더 망쳐버리곤 한다’는 사실이다.


선생님이 나에게는 슬픈 감정이 거의 없다고 하셨다. 슬픔을 짜증이나 화로 치환해 빨리 감정에서 극복하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다 보면 생기는 부작용들이 있다. 감정이 억압되고, 왜곡되고, 종종 공허해지고, 무기력해지며, 궁극적으로는 회복이 지연된다. 때로는 슬픔에 잠길 필요도 있다. 펑펑 울고 나서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아이처럼. 그런 나도, 이런 나도, 다 나다.



₁.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나오는 대사

                    

매거진의 이전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