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이란 무엇인가? 이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고전’과 ‘문학’이라는 단어의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고전’은 단순히 옛날에 창작된 작품(old)의 의미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작품(classic)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20세기 이전, 더 특정하자면 갑오개혁 이전에 만들어진 문학으로 보지만, 후자의 경우는 ‘정전’을 어떠한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존재한다. ‘문학’의 경우도 정의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문학의 정의를 따라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로 본다 해도 무엇을 예술로 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긴다. 아름다움이 예술의 전제조건이라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미를 추구하는 글이 아니라고 해도 예술성이 있다고 여겨져 문학으로 연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정약용의 혁명적인 정치 논설문은 문학적 의도를 가지고 지어진 것이 아니지만 그 표현의 유려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문학으로 연구되고 있다. 따라서 고전문학의 범주는 굉장히 자의적이다.
한국문학의 문제의식은 일제강점기와 그 극복기의 ‘민족’, 20세기 후반의 ‘민주화, 통일, 민중’을 거쳐 21세기 초의 ‘개인, 일상, 문화, 세계화...’ 등으로 변화해 왔다. 그렇다면 21세기 이후의 한국문학이 가지는 문제의식은 어떨까? 고전문학이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학이 변화해갈 방향, 즉 현시대에 대해 문학이 가지는 관심 분야를 자세히 분석해야 한다. 그 관심분야에 맞춰 고전문학을 재해석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가 보다 흥미를 가지고 고전문학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문학을 대하는 여러 가지 입장을 크게 독자, 연구자, 교육자로 나눠서 생각해 보자.
우선 세 계층이 모두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예민하게 감지할 줄 알아야 한다. 문학을 분석하는 것은 결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는 것과 같다. 시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고전 문학에서 재발견하는 방법도 좋다. 예를 들어, 고전문학에서 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화두였던 젠더와 페미니즘 이슈를 고전문학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자. 삼국유사에 수록된 <조신이야기>나 <노일부득과 달달박박 이야기>를 보면 종교적 수도의 주체는 늘 남성이고 여성은 수도를 방해하는 악역처럼 보인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여성이라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이용해 남성을 ‘타락’시키려는 욕망의 화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젠더학적인 시선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면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여성의 육체와 그 육체에서 일어나는 생리, 임신, 출산 등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긍정한 것이다. 조신 이야기에서 여성이 생리대를 빨래한 물을 더럽다고 보지 않고 보살의 신성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나온 사례를 보면 오히려 현시대보다도 여성의 육체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고전문학을 읽는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현대문학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대의 생생한 흐름을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문학이 열등한 것에서 고등한 것으로 ‘발전’해간다는 진화론적 시각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고전문학이 현대문학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면 고전문학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치들 또한 고정관념 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교육자는 시대적 요청에 가장 먼저 응답해야 할 계층이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한다면, 교육자는 과거의 가치를 고집한다기보다는 새로운 가치를 반영한 시각으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고전문학은 남존여비 사상을 담고 있다’고 가르치기보다는 ‘고전문학 속에서 왜 여성은 악역이 되어야 했는가, 처첩문화라는 잘못된 제도 속에서 가려진 악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줘야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사는 반복된다. 20세기 초에 유행한 딱지본은 우리가 ‘고전문학’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책과 거리가 있다. 빛바랜 갈색 표지에 검은 한자로 쓰인 글씨 대신, 화려한 색감의 표지에 읽기 쉬운 내용이 한글로 쓰여 있다. 그러한 딱지본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그 시절과 지금이 많이 다르지 않다. 최근에도 서점에서 변치 않고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은 "instagramable"한 예쁘고 쉬운 책이다. 고전문학이 과거의 문학이므로 더 이상 가치가 없거나 진부하다고 생각해서는 고전문학의 가치를 알기 힘들다. 고전문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문학은 결국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이야기의 자질이란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그 대상을 이해하게 만들어 공감하게 하며 감정의 움직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고전문학은 대부분 그러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가치관과 세계를 담고 있는 고전문학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