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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칠도씨 Jan 23. 2024

2022 취준일기 (5)

08/18 제약회사 브랜딩개발/상표관리 신입 1차 면접


    높은 층에 있는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숨 막히게 느껴졌다. 조용한 21층 입구에서는 면접 대기장을 알리는 종이만이 붙어있고, 면접 중이라 자리를 비운 듯한 지원자들의 짐이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아마도 시간대를 다르게 해서 조금씩 면접을 보나보다. 기다리고 있으니 옆 그룹한테 미리 설명을 해주던 인사 담당자가 나에게 와서, 안 그래도 지식재산권 면접자가 두 명밖에 없었는데 한 명은 불참이라 나만 들어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잘 주눅 드는 내 특성상 좋은 쪽에 조금 가까운 것 같았다. '영어면접은 1대 1이고 직무면접은 4대 1이다, 부장님도 와계신다, 네 분이나 계셔서 조금 긴장될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지식재산권 쪽을 담당하는 분들이다 보니 약간 표정이 무섭거나 예민해 보일 수도 있다, 아 실제로 그러실 수도 있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다'는 등 약간은 농담도 하면서 그는 내 긴장감을 최대한 누그러뜨려 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초롱초롱하게 들어서 더 열심히 설명해 준 것도 같다. 우황청심원 효과가 들기 시작해서 이유도 모르게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나중에 직무면접 가는 길도 그분이 데려다줬는데 가면서도 '이러저러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이러저러 해라' 하고 조언까지 해줬다. 내부를 잘 모르는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면접 중 마주치는 면접관과 회사 사람들이 전체의 이미지를 대변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인상을 남긴 회사였다. 이번 면접에 통과하면 인적성 시험과 임원면접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면서 정말 다시 뵈면 좋겠다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셨다. 

    영어면접은 특이하게 원어민이 아닌 내국인 직원이 봤다. 다행히 내가 준비했던 무난한 질문들이 대부분이어서 수월하게 이야기했다. 뒤집어진 종이에 과제가 있었다. 보기 네 개중에 상표 관련 전문용어가 많은 지문을 해석하는 거였다. 2분 동안 내용 자체를 이용하기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직접 말할 때 말하면서 문장을 다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무사히 끝냈고 다시 대기실에 와서 기다렸다. 두 번째 직무면접에서는 그 예의 서글서글한 담당자가 문을 두드리고 열어주었다. 면접관이 정말 네 사람이나 있었다. 그래도 지난번 면접보다 좋았던 건 다들 인사도 해주고 대체로 경청해 주는 자세라는 거였다. 여기저기 축구공처럼 채이던 시기라 존중받는 면접에도 눈물 나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면접 과제는 두 쌍씩 네 묶음으로 제시된 상표 중 하나를 골라 유사점이나 비유사점을 찾는 거였다. 2분간 시간을 줘서 동그라미 점 여러 개 있는 짝을 골라 열심히 해석했는데 중간에 무서운 부장님이 질문을 다시 말해줬다. 모두 표정이 묘한 걸 보니 안 유사한 걸 유사하다고 말했거나 내용이 산으로 갔나 보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다른 항목 골라서 다시 설명했다. 다시 기회를 줘서 감사했다. 

    과제가 끝난 후에는 면접관 별로 묻고 싶은 질문을 물어봤다. 브랜딩이라는 말만 보고 마케팅이나 영업인 줄 알고 오는 분들이 많다, 요즘 수시 채용이라 다른 직무에서도 뽑는데 왜 여길 골랐는지를 물어봤다. "여행 다니고 공모전 입상하고 이런 걸 보면 되게 외향적인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자기소개서에서 상상한 내 이미지와 달리 내가 되게 조용하게 느껴졌나 보다. 보신 것처럼 차분한 성격이라고 털어놨고, 공모전과 여행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항공사 직원이라 표가 저렴해서 여행을 다닐 수 있었고 공모전도 글을 써놨다가 우연히 제출했는데 당선된 거라고. 실제로 분석력을 쓴 경험 있냐 해서 교육봉사한 이야기를 했다. (이래서 자소서에 모든 걸 다 쓰면 안 되는 것 같다. 면접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니까.) 심지어는 자소서에 '이런 걸 읽겠어'하며 쓴 심청전 관련 조별과제의 내용도 자세히 물어봤다. 이런 지엽적인 것까지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혹시 말씀드려도 괜찮겠냐 묻고 대답하면서도 괜히 횡설수설한 건 아닌가 싶었다. 다른 지원자가 없어서 기준도 잡기 어렵고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심적인 스트레스는 덜하지만 배우는 점이 없어서 아쉽다. 다대다 면접을 하면 압박도 되긴 하지만 많은 스펙을 쌓고 경험을 해온 다른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동기부여받는 계기도 되었던 것이다. 

    스트레스 잘 받는 편인지 물어봐서 안 받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을 찾아내서 괜찮다 이렇게 얘기했다. 등산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이야기하니 부장 아저씨가 관심 가지는 것 같았다. 졸업하고 그 사이에 아무 데도 합격 안 됐냐고 물어봤다. 너무 떨어서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못 얻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괜찮은 것 같다는 면접관의 말에 우황청심환의 효과를 새삼 느끼며 약을 먹고 왔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하냐고 놀라면서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다 똑같은 사람이라며. 마지막으로 질문할 게 없냐고 하여, 준비했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보건 부문도 있는데 혹시 회사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생각하시나를 부장님에게 물어봤다. 과장님이 웃으면서 부장님이 면접 보셔야겠다고 했다. 지식재산권 관련 질문이 아니라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회사 질문 말고 상표 질문을 했어야 했나... 어쨌든 면접관 자신의 의견이긴 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자사의 입장에서는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대답이 왔다. 이렇게 무사히 끝나나 했는데 다른 궁금한 게 없는지 다시 물어서 그땐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상표관리에는 어떤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 물어봤다. 아무래도 차분하고 꼼꼼하고 그런 게 중요하고 실제로 사무실에도 그런 분이 많은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대해 당시에 생각해 낸 말이, 내가 오탈자도 잘 찾고 하니 성향에 잘 맞겠다는 거였다. 순발력이 왜 이 모양일까.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네 분이나 제 말씀을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라고 인사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 회사는 좋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꽤나 괜찮은 면접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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