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이렇게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가 있었나 싶다. 사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라고 하기는 그렇고 일주일 내내 엄마로만 살고 있는 나에겐 월요일의 2시간이, 겨울의 서리를 듬뿍 머금은 차나무에서 새순이 비집고 피어나 마침내 우전이 되었을 때의 기다림 같은 것이다.
나는 왜 차(茶)가 좋을까?
1. 맛있는데 건강하다.
티베트의 고산지에서는 채소가 자라지 않아, 차에 들어있는 카테킨 성분으로 비타민을 보충한다고 한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왠지 안될 것 같은데 차는 많이 마셔도, 왠지 그래도 될 것 같다.
2. 차가 너무 많다.
죽을 때까지 차를 매일 마셔도, 세상에 있는 모든 차를 마셔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중국의 윈난 성(운남성)은 우리나라 크기의 4배인 지역인데, 대부분의 차가 이곳에서 자란다고 한다. 중국, 인도, 스리랑카, 일본, 네팔 등 차를 생산하는 국가들이 정말 많고 종류도 몇천 가지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생산량이 매우 적어 전 세계에서의 생산 점유율을 따지면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가 만든 차 종류만 해도 5가지이다. 마셔볼 차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마시면 마실수록 궁금해지는 차의 세계이다.
3.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차를 고르고, 차를 우리는 시간.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 마시는 시간도 좋다. 차가 있으면 나를 둘러싼 공기가 달라진다. 내가 조금은 나에게 집중을 하고 차분한 사람이 된 느낌이 든다. 생각이 깊어질 수도, 생각을 비울 수도 있다.
4. 차를 마시는 사람이 좋다.
함께 차 공부를 하고, 차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차를 통해 알게 된 좋은 사람 말이다. 함께 차 마시는 언니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그 말에 너무 공감하는 요즘이다. 나는 차가 좋다. 그렇지만 차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더 좋다.
5. 부모님과 차를 마신다.
우리 아빠는 하동에서 나고 자라, 1991년부터 차를 만들어왔다. 엄마는 대학 때 차 동아리를 들어 그때부터 찻집에서 일을 하다가, 차 팔러 온 아빠를 만나서 결혼했다. 어릴 때부터 차를 마셨지만, 차가 진심으로 좋아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요즘은 부모님과 전화를 하면 거의 손녀 이야기 아니면 차 이야기만 한다. 차를 좋아하게 될 운명을 만들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6. 차에 대한 지식이 재미있다.
차는 알면 알수록 배울게 정말 많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차를 마셨다. 차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2737년에 차의 전설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발견,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중국의 삼황오제 이야기로 시작하여 승려로부터 우리나라와 일본에 차나무 씨앗이 심어진 유래까지. 차의 역사와 인문학적 지식이 너무 신기하면서 재미있다. 한, 중, 일의 차 공부만 해도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7. 차 마시는 내가 좋다.
내가 차를 마실 때 이런 표정이라니! 처음 알았다. 차로 둘러싼 이 시간과 공간을 무척이나 사랑함에 틀림없다. 함께 차를 마시는 언니들이 내가 우린 차는 중국차여도 언제나 하동 차의 맛이 난다고 한다. 홍차를 우려도 구수하고, 녹차를 우려도 구수한, 구수한 하동의 맛.
차가 좋은 이유는 이 밖에도 정말 많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차는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차를 마실 때는 내가 돈을 얼마나 벌고,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능력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뭐든 빨리빨리가 아닌 천천히 조금 느리게 해도 괜찮다. 인생을 '잘'산다는 것은 그저 나의 속도를 맞추어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차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내가 차에 너무 빠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