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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Aug 16. 2022

원래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다도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주말에 티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가 있다.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은우야,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밝고 환한 너였는데."


"오라버니, 원래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

"은우님, 은우님은 여인의 몸으로 원래 그렇게 의술을 잘 아십니까?"


"아씨. 원래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아씨도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습니다."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장면이었다.


살면서, "그게 원래 그래."


"그 사람은 원래 그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한다.


다도를 배운지도 어느덧 세 달이 넘어가고 있다. 내가 다도를 배운다고 하면, "네가?"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다.


요즘 남편에게 줄곧 말한다.


"나는 고요히, 차분히, 집중해서 다도 하는 이 시간을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만들어 보려고. "

 

"자기는 우당탕탕, 시끌벅적, 왁자지껄 이런 단어가 어울려. 고요히, 차분히는 무슨. 전혀 너랑 반대되는 단어들인데?"



그러던지, 말던지.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오늘 날씨는 어떤지, 나의 기분은 어떤지에 따라 무슨 차를 마셔볼까 하는 고민을 시작으로 물을 끓인다.

물을 식히고 천천히 집중하여 다관에 물을 붓고 차를 우리고 향을 맡고 맛을 음미하는. 느리지만 천천히 나에게 집중하여 우린 찻잎에서는 나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다.


다도(茶道).


원래 그런 사람이든,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내가 알던 나의 모습이든,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이든. 모두 끌어안아 그날의 나를 차 한잔에 담을 때 마침내 나는 다도를 하고 있다. 다도를 가고 있다고 느낀다.



차의 길. 우당탕탕 나의 일상에 무심코 툭, 고요하게 찾아오는 고마운 친구. 이제부터 나 자신과 사귀어 볼 기회가 생겼다. 나는 나를 꽤 좋아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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