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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볼말 Apr 09. 2024

지적증여시대의 마케팅

#2. 신분상승 아니, 신분세습의 열망

눈높이수학, 구몬학습... 어렸을 적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학습지들. 교육열이 높지 않았던 우리 부모님도 구독했을 정도니 다른 집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도 똑같다. (눈높이, 구몬은 지금도 있다)

건국 이래 우리나라 사교육은 늘 뜨거웠고 그 열기와 비례해 교육시장의 마케팅 전쟁도 대단하다. 도대체 왜때문에 자녀교육은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인지, 내가 만약 교육 카테고리의 마케터라면 어떻게 플레이해야 할지 망상회로를 돌려봤다


우선 우리나라는 (적어도 내 기억엔) IMF 까지는 고도성장을 이어왔다. 모두가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좋은 교육이 좋은 미래를 담보해 주었다. 그리고 그 성공 방정식을 경험한 세대는 다시 부모가 되어 그 자녀들 역시 본인들만큼의 삶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그 트랙에 자녀를 태우고 싶어 했다.


우스갯소리로 강남 테북은 찐부자(올드머니), 테남은 전문직(뉴머니)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반포/압구정이 아닌 대치동이 교육의 메카가 되었다는 썰도 있다.(*테헤란로 북쪽/남쪽)


실제로 이런 연구도 있다. 마이클 그린스톤과 애덤 루니는 대학교육을 금융투자와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그 결과 그들은 금융투자로 더 나은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학사학위에 대한 투자는 인플레를 감안한 연간 수익률 15퍼센트 이상을 내었고 이는 역대 주식 투자 수익률(7퍼센트), 채권, 금, 부동산 투자 수익률(모두 3퍼센트 미만) 보다 현저히 컸다.


똑똑한 투자자(부모)라면 대학은 반드시 돈을 집어넣어야 할 곳이다. 심지어 돈을 잃을 위험도 없다. 교육에 대한 무형의 지적자산이 내재화되어 자녀에게 남기 때문이다.

@Maël BALLAND, 출처 Unsplash


그러나 이 연구 내용을 곧이곧대로 우리나라에 적용시키기는 어렵다. 우리는 지금 출산율 0.6의 시대에 살고 있고 아마도 지금의 초딩들은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저 연구결과를 우리나라에 맞춰 해석해 보면 학사학위 그 자체가 아니라 더 나은 교육과 지적능력을 갖추는 것이 인생에서 장기적으로 더 높은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이유로 나는 교육시장은 앞으로도 의미 있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선행이나 사교육 쪽. 출산율은 역대급으로 낮아지고 있지만 프리미엄 유아용품 시장은 오히려 천정부지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고령화 시대에 온 가족의 자원이 집중되는 ‘골든키즈' 때문이다. 결혼은 선택이고 아이를 갖는 것이 사치재가 돼 가고 있는 요즘이다. 소위 먹고살만해야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 기를 수 있다는 말인데 그렇기에 그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지적증여의 에너지 레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부를 증여하는 방식이 자본을 증여하는 1차원적인 형태가 아니라 내적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시켜 전달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교육을 통한 부의 세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재산을 상속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지혜까지 교육을 통해 전수한다는 말이다.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슨의 '가족계획'을 보면 이런 의사결정들은 어쩌면 사실 본능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자기가 낳은 새끼들 중 살아남는(성공하는) 새끼 수를 최대화하기 위해 산아 제한을 실행하는 것이고 그 제한된 산아에게 모든 자원을 집중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종합해 보면 신분세습의 욕망에 부합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교육 카테고리에서 조금 더 잘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자극적이 될 수는 있겠지만...


간단히 초등학교 학습지의 마케팅 메시지들을 살펴봤다 (눈높이.. 구몬... 생명력 ㄷㄷㄷ)


엘리하이 - 상위 1%로 가는 첫 시작

밀크T - 1등 교과서가 만든, 1등의 노하우

초코앤 - 교과서 발행부수 1등 기업

웅진씽크빅 - 학교 공부가 쉬워지는

구몬학습 - 풀이 깊은 진짜 공부


[쉽다. 재미있다. 1등이다.] 잠깐 살펴보았지만 반복되는 단어들이 눈에 띄어 재미있었다. 아마도 이 카테고리에서의 핵심 키워드들일 것이다. 이 중 눈길이 가는 메시지는 '엘리하이'였는데 [상위 1%]라는 것이 의도했던 안 했던 이런 시선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습지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교육시장으로 갈수록, 어쩌면 자녀가 더 좋은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한 신분세습의 도구로서의 마케팅 소구가 잘 먹히지 않을까 망상회로를 돌려봤다.


한 때 스토케 유모차가 유행했을 때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이게 왜 잘 팔리는지 알아?'

'왜?'

'다른 유모차보다 스토케 시트가 높은데, 매장 직원이 어렸을 적부터 더 높이 봐야 높은 사람이 된다고 영업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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