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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27. 2023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약속의 말씀, 그 반석 위에……

8월 13(일)


St. Paul 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이다. 첫 예배의 감격이 그대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역시나 한 달이 지나고 보니 이곳의 예배 형식에도 아쉬운 점은 드러난다. 한국에서 다니는 교회의 예배 영상을 유튜브로 보고 있노라면, 익숙함에 지루해져 버린 그 예배도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예배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나의 마음의 문제였고, 예배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서 그분을 높이는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는 마음을 다잡아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의 예배는 이 교회 설교 목사님으로 오랫동안 섬겨오신 데이빗 목사님의 인생 간증이 메인이었다. 오늘은 목사님의 생일도 겹쳐서 매우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목사님은 어릴 적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인생을 소개했다. 세계 대 2차 대전 직후의 영국, 흑백 사진 속에서 귀엽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면, 도서관에서 역사책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저 지구 반대편의 나와 나이도, 인종도, 성별도 전혀 다른 이 80의 영국인 할아버지 목사님의 삶의 이야기에서 나의 인생과의 교집합을 발견한 것은 이번 여행을 통해 그분께서 들려주시는 일관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신비였다.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는 사뭇 단조로웠다. 중, 고등학교 때 중간정도 되는 성적, 딱히 친구도 많지 않았던 내성적인 성격, 부모님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다닌 교회, 딱히 열정적인 믿음은 없었지만, 주일학교에서 하는 것들은 시키는 대로 했던 성실함. 입시를 치르고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패와 때로는 과분하게 받았던 성공의 경험. 적은 경험을 통해 그분의 역사를 믿는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 목회자로서도 양적인 성공과 명예는 딱히 없지만, 주어진 장소에서 성실히 목회를 했고, 은퇴 후에 보낸 가족과의 화목한 시간들, 여행.

어쩜 그렇게 나의 단조로운 인생 그래프 곡선과 굴곡이 비슷한지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마라맛 간증 스타일에 익숙했던 내게는 밍숭맹숭한 간증이었지만, 오히려 그 담백함 속에서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나의 평범한 인생이 왜 의미가 있는지, 나의 방향이 틀리지 않게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여러분 이 사진이 제가 7살 때, 저희 교회에서 했던 전도행사 사진입니다. 이때는 정말 어린이들도 많았죠. 우리는 모두 암송 말씀을 종이에 써서 그것을 초콜릿에 싸서 동네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얘들아 교회에 가자! 말씀 암송하면 선물도 준데!' 그 말씀들은 매우 간단한 말씀들인데, 알파벳 순서로 a~z까지 짧은 말씀을 뽑아 아이들에게 외우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마치 여러분의 영의 양식, 영의 비타민 a~z가 될 것입니다."

귀여운 아이들이 손에 작은 깡통 같은 것을 들고 있고, 배경에는 오래된 고딕양식의 교회가 보이는 오래된 흑백사진이 슬라이드에 비쳤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렸을 적에 사탕을 줄줄이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교회 언니 오빠들과 동네 놀이터에 가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참 아이들이 많았는데...... 80의 영국 목사님도 '그때는 교회에 아이들이 많았습니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공감을 하게 되다니, 피식 웃음이 난다.

목사님께서는 그때를 재연해 보시겠다며, 말씀을 붙인 초콜릿을 봉지째 들어 보이셨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마치 송구영신 예배 때 올해의 말씀을 뽑는 것 같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말씀 초콜릿을 받아 보았다.


말씀 뽑기를 무슨 점괘 뽑듯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모든 말씀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역시나 소름 돋도록 놀라운 말씀이다.


26년 만에 이곳 영국, 첼튼햄에 도착한 나는 이 먼 이방땅에서 처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게 된 외로운 10대 사춘기 소녀였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IMF로 한국에 돌아온 그 사춘기 소녀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그 하나님을 원망했었다. 영국에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신앙생활을 잘해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많은 친구들은 교회에 놀러 오는 것이 목적이었고, 진지하게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다들 나와의 대화를 꺼려하는 것 같았다. 답답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며 근근이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좌절을 주셨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입시 과정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그러다가도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 생활의 답답함을 벗어버리려 일본으로 도망쳤을 때, 또 그곳에서 많은 일들을 겪으며 다시 내 삶 속의 하나님의 이야기를 써 나갔다. 성과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내 능력 밖의 것을 주시기도 했지만, 또다시 가져가시기도 했다. 결혼과 아이라는 큰 축복을 주시기도 했고, 만만치 않은 세상을 마주하며 피로가 누적되기도 했다. 하나님과 깊이 만나고 눈물 흘리다가, 이내 바쁜 삶 속에서 최소한의 주일성수만으로 내가 크리스천인가 확인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인생 과정의 그래프는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 곡선에서 그분 나의 하나님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의 80세 영국인 데이빗 목사님의 간증에서, 또 주시는 초콜릿에 붙은 짤막한 말씀에서 이 여행을 통해 얻고 싶었던 인생의 답을 비로소 얻게 된다.  


‘Jesus Christ, yesterday, today, forever Hebrews 13:8’


나의 인생 과정의 단 한 줄 요약이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나에게 주시는 굳건한 반석 위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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