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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_마지막 홀의 버디로 70대의 불씨를 살리다

마지막 홀의 버디로 70대의 불씨를 살리다

by 나승복

무포기 골프정신의 특급 보상은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그것은 마지막 홀 버디로 꺼져가던 70대의 불씨를 살린 것이었다.


그 사연은 2015년 10월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이루어졌다.
오랜만에 대학동문들과 함께 한 라운드였다.


코스 주위의 가을 산하는 한 편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갈색 초목과 맑은 하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수확의 계절인 10월이었으니 다른 시기에 비해 잔디상태도 좋은 편이었다.
최적 날씨에 잘 관리된 코스에서 스코어 보드에 70대를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전반 9홀의 스코어는 이미 5오버였으니, 목표를 달성하기엔 암울했다.
아마도 가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다가 집중하지 못한 터였다.


그늘집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필자는 전반의 미흡한 결과에 커다란 아쉬움이 몰려왔다.


후반엔 스윙의 기본에 집중하여 골퍼의 체면을 회복하리라!
그늘집을 나서면서 후반 라운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잡았다.


후반 코스는 전반에 비해 더 어려운 편이었다.
14번홀은 연못을 넘겨야 해서, 17번홀은 매우 길어서 파를 일구기 쉽지 않았다.


몸이 좀 불편하세요? 안색이 안좋아 보여서요?
한 동반자는 전반과 달리 말수가 줄어든 필자에게 몸상태를 묻기도 했다.


전반의 미흡함을 만회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하다보니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페어웨이를 걷거나 카트 이동 때 유머를 던지던 전반의 모습과 달라서 그럴 만했다.


나름대로 집중해서 후반에 임했어도 전반의 누적 채무를 탕감하긴 역부족이었다.
마지막 홀에 이르니 70대 스코어를 달성하기 어려운 3오버였다.


이젠 79타라는 중대 과제를 완수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버디를 하는 것이었다.

그 홀은 466m의 파5였으며, 티샷부터 그린까지 오르막 지형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티샷에 임했지만 육중한 부담을 떨칠 수 없었다. 다행히 결과는 순조로웠다.
약 230m 거리의 페어웨이에 안착했으니 다음 샷을 하기에 수월했다.


이 홀에선 우드를 잡아서 멀리 보내더라도 40~50m 남을 경우 버디를 하기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하여, 자신 있는 피칭이나 9번 아이언의 거리를 남기기로 했다.


[2018. 10. 필자 촬영]


8번 아이언으로 공을 끝까지 보면서 자신감을 실었다.
약간의 오르막 지형이었으니 수월하게 100m 지점에 안착시킬 수 있었다.


이젠 버디를 향한 마지막 몸부림의 차례였다.
피칭을 꺼내들고 꼭 3m 안에 붙이겠노라고 다짐했다.


어쩌면 그날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긴장된 순간이었다.
나름의 지상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중차대한 샷이었기 때문이다.


백구는 디봇을 남긴 채 그린을 향해 그럴듯한 아크를 그리며 힘차게 날아갔다.
파온의 상서로운 느낌이 다가왔다.


그린을 향해 오르막 페어웨이를 걸으면서 얼마나 붙었을지 궁금했다.
그린 입구에 도달하여 살펴보니 백구는 홀로부터 1.5m 지점에 정지해 있었다.


파온의 쾌재도 잠깐이었다.
내리막 슬라이스 펏의 부담 앞에선 움츠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내리막 컨시드는 배우자에게도 안준다!
그만큼 내리막 펏은 고도의 집중과 정확한 동작을 요했다.


게다가 슬라이스 경사였으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짧은 펏이었으나 이중고를 극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펏을 위한 어드레스에 들어갔다.
각도와 힘에서 미세한 차이만 생겨도 79타를 향한 버디 찬가는 사라질 판이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그러나 필히 극복해야만 했다.
필자의 펏을 떠난 백구는 이중고의 여정을 조심스럽게 내딛기 시작했다.


백구가 블랙홀로 사라지기만 학수고대했다.
동반자들도 그 여정을 응시했지만 필자의 결연한 목표는 모를 수도 있었다.


와우! 버디다! 고난도의 멋진 버디다!
“그 어려운 내리막 슬라이스 경사에서 버디를 해내다니!”


동반자들의 진심어린 축하 세례와 필자의 솔직한 성취 환호가 말발굽 모양의 고난도 그린에 넘쳤다.
초집중의 후반 라운드로 끝내 70대의 기록을 달성해냈다는 결과를 자축할 만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고지에 올라선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리오?
중증불안의 초조펏에서 벗어나 최고의 행복펏으로 장식한 만추 라운드였으니 말이다.


그날 70대 목표를 향한 불굴의 의지, 우드의 유혹을 견뎌낸 전략, 육중한 부담을 극복한 집중의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와 달리, 전혀 뜻밖에 골프의 꿀맛으로 다가온 슈퍼 롱펏의 추억도 잊을 수 없다.


뜻밖에 골프의 꿀맛을 선사한 롱펏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차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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