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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화_35m의 버디펏으로 황홀경에 빠지다

35m의 버디펏으로 황홀경에 빠지다

by 나승복

골프의 꿀맛을 선사한 뜻밖의 롱펏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그것은 약 35m의 롱펏 버디를 일군 대형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2021년 6월 제주도의 한 골프장에서 일어났다.
2016년 부동산개발회사 인수자문 때 알게 된 기업인, 그 지인들과 함께 라운드했다.


제주 출장을 갈 때면 라운드를 통해 진행 사업이나 최근 이슈도 공유해 왔다.
그 라운드도 근 1년만의 회포를 푸는 것 외에 정보 소통의 자리를 겸했다.


인수자문 후 제주 출장 때마다 라운드를 하다 보니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게다가, 위 인수자문의 고객이 그 골프장의 회원이어서 뜻깊었다.


제주도의 초여름 날씨가 변화무쌍했음에도 그날은 라운드 하기에 참 좋았다.
기온이 좀 높은 편이었으나 바람이 불어서 시원했다.


골프장의 전체 조망, 코스 상태, 주변 조경, 그린 관리, 클럽하우스도 으뜸이었다.
특히, 멀리 보이는 한라산의 완만한 산세는 어머니의 포근함을 떠오르게 했다.


전반에는 근 1년만에 함께 한 자리다 보니 몇 차례의 스윙과 담소로 마친 듯했다.
후반에는 제주 막걸리의 그윽한 향기와 더불어 유연성과 집중도가 올라갔다.


후반 8번홀에 이르렀다. 파3로 154m였다.
그린 앞의 좌측과 뒤의 우측에 벙커가 있었지만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필자와 한 동반자는 파온에 성공했고, 남은 두 동반자는 프린지 부근에 떨어졌다.
주말골퍼가 이 정도면 상당히 순조로운 티샷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백구는 홀까지 35m 남짓 되어 그야말로 제주도 온그린이었다.
게다가 오르막과 내리막을 돌파해야 했으며, 좌우의 경사까지 해석해야 했다.


거리, 방향, 경사, 속도 모든 면에서 녹록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골퍼의 능력과 한계를 시험하는 가시밭 순례길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백구를 홀로부터 2~3m 거리 안에 붙이는 것이 목표였다.
1m 정도의 컨시드권에 넣는 것은 과욕이자 집착이 아닐 수 없었다.


[2021. 6. 필자 촬영]

동반자들도 멀리서 별 기대 없이 필자의 펏 어드레스를 쳐다보았다.
백구는 필자의 지령과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기나긴 여정을 출발했다.


먼저 GPS의 수치정보를 정확하게 석한 후 거친 오르막을 타고 힘차게 달렸다.
그러다가 다시 옆 경사의 변수를 더해서 중간값을 산출한 후 내리막으로 향했다.


내리막에선 또다른 옆 경사를 예의 주시하면서 속도를 조절했다.
최종값을 정한 후 조심스럽게 등고선을 따라 종착지에 근접해 갔다.


한참동안 관망하던 동반자들의 시선이 어느 순간 달라졌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백구의 자유의지와 과제집착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백구는 그린의 고차방정식을 풀어낸듯 당찬 표정이었다.
그래서인지 거리와 방향, 경사와 속도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났다.


오히려 필자의 간섭이나 조력을 거부하겠다는 뜻이 강해 보였다.
퍼터로 추력을 실어준 것만으로도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엔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35m의 머나먼 순례를 마치고 백록담 아래의 초록빛 심연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한참 지켜보던 동반자들과 필자 모두 동공정지의 상태로 서로를 응시하며 할 말을 잃었다.


오! 초장거리 버디다!
“다시는 보기 어려운 버디다!”


동반자들의 고성 환호와 진심 축하에 그저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치 백구에 도취되어 훨훨 나는 무중력, 현세에서 벗어난 황홀경에 있는 것 같았다.


라운드 후 제주시로 옮겨 한 잔 술과 함께 그날의 회포를 풀었다.
화제는 단연 초장거리 버디사건으로 모아졌다.


하늘엔 만인의 천당이 있고, 지상엔 나프로님의 35m 버디가 있다.
그때, 한 동반자의 축배제의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중증불안 펏은 다채로운 스토리와 넘치는 행복감을 선사해 주었다.
첫 70대 싱글도, 첫 펏이글도, 4인 올버디의 환상적인 협연도, 그리고 35m버디의 대형 사건도…

필자는 44회의 연재 내용과 같이 10년간 가시밭 시련과 적지 않은 역경을 거치면서 골프의 쓴맛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골프의 달콤한 행복감을 비롯하여 다양한 성과도 얻었다.


대충골프 탈출의 성과들은 무엇이었을까?


(차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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