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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Nov 07. 2024

비를 예측하는 낭만적 방법

"곧 비가 쏟아질 거야."

멀시가 말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구름이 점점이 떠 있었지만 비가 내릴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알아?"

"저쪽 하늘을 봐."

멀시가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쭉 뻗은 지평 끝에는 산이 있었다. 꼭대기가 하얀 눈으로 덮힌  산은 지척에 닿을 듯 가까워 보였으나 멀리 국경 넘어 미국땅에 있다고 했다.

안개인지 모를 뿌연 것에 가려 산은 보이지 않았다. 그쪽의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구름과 안개가 혼합되어 하늘과 산과 땅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온통 잿빛이었다.

"저 구름은 조만간 우리 쪽으로 올 거야. 이따가 한번 봐."

아이들은 오후 간식을 놀이터에서 먹을 예정이었다. 멀시의 예측이 맞다면 그만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돌아가야 했다. 비를 맞으며 간식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짙은 먹구름은 어느새 성큼 올라와 있었다. 아이들에게 도시락가방을 챙기라 이르고 서둘러 놀이터를 나섰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멀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네."

"동쪽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 우리 엄마는 빨래를 걷으라고 했어. 엄마뿐만이 아냐. 할머니도, 옆집 아줌마도 그리 말했지.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그랬어."





멀시가 나고 자란 나라는 보스니아다. 유럽 동남부에 있는 작은 나라라고 했다. 멀시의 고향 사람들은 동쪽 하늘을 보고 비를 예측한다.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나 인터넷으로 날씨를 확인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낭만적이다.

내가 살던 한국에서는 동쪽 하늘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지 않는다. 보통 스마트폰으로 날씨예보를 본다. 저 멀리 하늘을 보려면 시야가 확 트여야 하는데 그러기에 어려운 조건이다. 고층 건물이 빽빽하고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은 대체로 뿌옇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면 미세먼지 농도가 얼마나 나쁜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체크하는 것 만큼이나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캐나다는 동쪽 하늘을 보고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 대지는 광활하고 고층 건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미세먼지와 황사도 없다. 멀리 국경 넘어 미국에 있는 산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확 트였다. 덕분에 멀시는 고향 보스니아에서처럼 동쪽 하늘을 보고 비를 예측할 수 있다. 나는 사실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 전혀 모르는 방향치이고 한국에서 살 때는 하늘을 볼 마음의 여유가 한 톨도 없는 그런 인간이었다. 이제는 적어도 동쪽이 어느 방향인지 알고 그쪽을 보고 비가 올지 말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전보다 똑똑한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타국에서의 삶은 외롭고 적잖이 비루하지만 동쪽 하늘의 구름을 보고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낭만은 있다. 그런 장점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우기가 시작된 후 이곳은 하루에도 여러 번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이전에는 아이들과 바깥놀이를 나갔다가 수분 뒤 비가 와서 쫄딱 젖어 돌아오곤 했다. 요즘은 비가 올지 말지 헷갈리면 멀시가 한대로 동쪽 하늘을 다. 먹구름이 깔려있는지, 눈 덮인 베이커 산이 안개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지를 살핀다. 이 방법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무척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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