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교육
<세뇌교육>
앞서 나온 ‘사막의 시’에서 녀석은 자신과 나를 사막의 캐러반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단순히 연정시에 자주 등장하는 ‘그대 없는 세상은 사막이요 그대는 나의 오아시스’라는 식의 상투적인 비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물론 사막과 캐러반은 녀석이 당시 가지고 있던 자화상이기도 했지만 실제적인 녀석의 동경이기도 했다. 녀석은 아랍의 역사와 문물을 모두 깊이 아꼈고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 했다. 심지어 아랍 선교사가 되겠다며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없던 고3시절 아랍어 문법책을 독학하기도 했고 프랑스 문화원에 연락하여 아랍권 사람의 홈스테이를 자청하여 불어와 아랍어를 연습하기도 했다. 나에겐 늘 아랍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꿈꾸듯 이야기했고 짙은 눈썹과 몸에 많은 털을 가진 자신이 아랍인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난 그건 아랍인의 특징이 아니라 원시인의 특징에 더 가깝다고 비꼬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우리가 고 3 땐가 그 유명한 쿠르드 난민 사태가 났다. 녀석은 연일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던 쿠르드족의 참사에 완전히 흥분해서 거의 공부를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들과 같이 굶기라도 하고 싶다며 종종 혼자 금식을 했고 기도하며 많이 울었던 것으로 안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도 함께 가슴이 답답해졌다. 녀석에게 내가 유일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녀석이 대화 중에 슬쩍 앞으로 함께 아랍민족을 돕자고 하면 난 정신이 번쩍 들어 아프리카를 가겠다고 우겼다. 그건 어릴 때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고 그 후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꿈이며 내 정체성이었다. 나는 이미 녀석을 별종으로 분류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친구인 이상, 지기 싫었다. 내가 녀석과 동등할 수 있는 게 아프리카 말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녀석은 나보다 5개월 늦게 태어났을 뿐 아는 것도 훨씬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더 많고……그러니 나는 평생 녀석 뒤만 쫓아다닐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자존심을 지킬 유일한 방법으로 아프리카를 고집했다. 거긴 유일하게 내가 먼저 찍은 내 땅이 아닌가.
“정 같이 일해야겠거든 넌 북아프리카를 맡아라. 나는 남아프리카를 맡으마. 넌 불어 배워. 난 싫어. 말이 뭐 말 같아야지. 난 영어가 좋아. 가끔 그 경계선에서 우리 만나 선교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자.”
녀석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세뇌의 힘을 믿는다며 늘 아랍에 대해 떠들어 대고 언젠가 우리가 함께 아랍에 갈 거라고 반복학습을 시켰다. 그러려면 우리의 이름이 문제라고 했다.
“나 개명할까 봐.”
“이름을 고친단 말이냐? 부모님께서 골라주신 이름을 어떻게 고치냐. 별로 좋은 이름은 아니지만 나름 정들었겠구먼.”
“그게 아니라 아랍에 가면 아내는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거든.”
“그런데?”
“네 이름이 내 성하고 잘 안 어울리잖아.”
“이젠 별짓을 다 하는구나? 누가 아랍에 간대? 아니, 네가 내 남편 성을 어떻게 알아!”
“걱정 마! 우린 꼭 아랍에 같이 갈 거야!”
그러더니 며칠 후 녀석은 감격에 젖어 내게 아랍식 이름을 지어서 진상했다. 연습장에 온갖 이름을 끄적이고는 어떤 이름에다가 붉은색 펜으로 장식을 해서 아랍식 지 성이 내 이름과 정말 잘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라고 온갖 자랑질을 해댔다.
“드디어! 내가 우리 둘 모두의 이름에 잘 어울리는 성을 찾아냈어! 정말 괜찮지 않냐? ‘이븐!’ 아랍 성에 ‘이븐’이란 성이 있더라고. 어때? 우리 이름이랑 둘 다 잘 어울리지?”
“어울리기는! 난 그 성은 한 이름밖에 안 떠오른다. ‘이븐 바투타’ 이런 투박한 이름! 집어치우지 못해!”
녀석의 정성스러운 진상품은 이렇게 그 면전에서 내동댕이쳐졌지만 그래도 녀석은 늘 그런 근사한 이름을 찾아낸 자신을 스스로 기특해했다. 나는 그 뒤로 곧 그 일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한 번도 불려보지 못한 그 이름을 되뇌어 본다.
‘이븐O’
어, 꽤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