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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Jun 18. 2022

17kg짜리 배낭을 메던 나를 보낸다.

전과 다른 여행, 변해버린 몸



확실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스무 살 초반에는 3시간씩만 자고도 종일 일하고 놀아도 거뜬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이젠 기대하기엔 너무 멀어진 그 시절이다. 떨어진 체력에 대해선 여행을 하며 더욱 많이 느낀다. 완연하게 예전과는 다른 여행 스타일을 찾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의 여행은 늘 걷고 마시고 또 걷는 것들 뿐이었을 정도로 먹지 않고도 걷는 건 필수였고, 걸으며 보는 풍경들을 너무도 좋아해서 국내외 할 것 없이 배낭여행도 많이 다녔다.


가진 것 없이 남는 게 시간뿐이었던 그 시절엔 그게 너무도 당연했다. 운전은 할 수 없었으므로 대중교통인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몇 달 동안 조금씩 모은 빠듯한 푼돈으로 여행을 떠나기 일수였기에 나는 차라리 걷는 걸 택했었다. 그래도 젊고 무모했기에 어떠한 부족한 점들도 체력 하나로 모두 감당이 되었다. 그 덕에 나는 여름엔 여름 하늘 겨울엔 겨울 하늘이 어떤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걸으면서 눈에 담기는 건 자연적인 것들이 더 많았기에.


5년 전 뉴질랜드 배낭여행 때에는 17kg에 달하는 배낭을 짊어 메고 3주간을 떠돌았었다. 날씨가 겨울이었어서 옷들이 다 무게가 있던 터라 위아래 옷은 두벌 정도로 입었던 것 같다. 수건이나 여분의 신발도 없고 노트북과 옷 두 벌, 속옷, 책 등등. 처음엔 20kg이 넘어서 무게를 줄이지 않으면 추가 요금까지 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것저것 다 빼고 포기한 뒤 이것들만은 지키자 해서 바리바리 쌌던 짐이 17kg이었고, 추후에 단 100m도 못 걷고 계속 주저앉게 만드는 통에 거기서도 조금씩 짐을 줄여나갔었다. 그때 나는 ‘내 짐은 내 욕심이다’라는 것을 깊이 깨우쳤던 걸로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내 서랍은 가장 큰 서랍, 그 안엔 온갖 잡동사니를 보물처럼 쌓아두고 누구든 집에 놀러 오면 자랑스럽게 열어 구경시켜주곤 했었던 나. 뭐든 수집하는 것도 좋아하고 이젠 보지도 쓰지도 않는다 해도 추억이 짙게 묻어있는 걸 잘 버리지 못하는 나였다. 그런 나에게 그 모든 걸 스스로 짊어지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것을 붙잡는 건 욕심일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했던 건, 뉴질랜드 배낭여행이 나에게 남긴 최대의 교훈이었다.


그 뒤에도 나는 틈만 나면 강릉이고 전주고 하며 일이 쉬는 날이면 당일치기로 어딘가를 떠났다가 오곤 했었다. 어떤 관광지를 가는 것도 아니면서 항상 새롭고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 지역의 거리, 그곳에만 있는 가게들,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쓰기도 했다. 하염없이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잡생각이 나지 않고 나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 시간이 나에겐 큰 위로였다. 외롭고 적적하고 때로는 청승맞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나다운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2년 만에 여행이라고 잔뜩 들떠 날아온 발리에서는 이상하게도 잘 걷지 않는다. 무더운 날씨에 기운이 잘 빠지고, 30분만 걸어도 헥헥거리기 일수다. 황당하게도 하루 끝 개운하게 씻고 누웠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처음으로 배워 본 서핑에도 너무 열정을 쏟았다가 몸살이 나기도 하고, 한여름에 웬 냉방병도 걸려 끙끙 앓기도 했다. 원래 기관지가 약한 편이긴 하지만 간절기 때가 아니면 약한지 강한 지도 잘 느끼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여기선 늘 목이 부어있다. 에어컨 바람 때문인가 싶지만 무더위에 안 틀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어젯밤엔 마스크를 쓰고 자는 불편함을 최선의 노력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엔 정말이지 속수무책이다. 늘상 이렇게 잘만 살아왔는데 갑자기 그렇게 살지 말라는 식으로 성을 내는 것 같다. 그동안 아플 때나 어디가 불편할 때 쓰던 방법도 통 들지 않으면 문득 불안해지기도 한다. 아직 젊은데 그럴 리 없겠지만, 조심하게 되는 나 자신이 작아진다. 그나마 한국에서였으면 병원 가고 쉬면 되는데, 발리까지 여행 와서 정말 이래야 되나 싶은 것이다. 그 옆에 남편에겐 더없이 미안해진다. 나도 나를 어떻게 못하는데 남편이라고 어쩔 도리가 없을 터인데, 자꾸 속상하고 불안한 마음을 기대게 되다가 마음이 상한다.


늘 같은 삶, 같은 생각, 같은 상황일 수 없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다.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늘 그런 여행을 하리라 생각했고, 그에 따라 내 몸도 따라갈 것엔 굳이 고민의 털끝도 들이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고 소중함을 몰랐던 건 내 어린 시절의 특권이자 그 시절을 나타내는 증표이기도 하다. 그 증표를 잃어버린 시점에서 어떤 새로운 증표 없이 공허해진 이 나이를, 어리다고도 늙었다고도 할 수 없이 애매한 구간의 방황을. 간절히 소중하면서도 끝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줄 방법을 몰라 애태우는 것처럼, 이 시기에 내가 원하는 것을 채워줄 방법은 모르지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더 이상 정처 없이 걸으며 음악을 듣지는 않지만 그 시간에 남편과 대화를 하고 영화를 본다. 이전만큼 무쇠다리에 에너자이저 같은 체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대신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변하는 모습에 맞춰 맞는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에 묶여 지금의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면, 소중한 과거마저 잃어가는 셈이다. 늘 마음에 품었던 배낭여행을 하던 어린 나를 이제는 보내기로 한다.


여행은 나를 알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여전한 모습과 변한 모습, 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루지 말고 내가 원하는 여행을 떠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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