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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Mar 01. 2023

책 몇 권



 나는 책 몇 권을 가지고 침대에 누울 때. 그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내게 여유를 묻는다면 주저 않고 이 순간을 빗대어 말할 것이다. 근데 중요한 건 꼭 ‘몇 권의 책’이어야 한다.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내게 책이란 음 뭐랄까 여행 같다. 바리바리 짐 싸서 비행기 타고 떠나는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 쉬이 바람 쐬러 다녀오는 숨 쉬는 여행. 내가 책을 읽는 건 잠시 다른 생각, 새로운 경험,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굳이 정독하여 빽빽이 읽어내고 나서야 다음 책을 꺼내 들거나 하지 않고, 매일 아니면 자주 꺼내 읽고 싶을 만큼씩 읽고 고대로 모아 쌓아둔다. 그리고 또 그 책의 느낌이 그리울 때, 그래서 그다음 내용이 궁금할 때, 왠지 오늘은 이 책이 필요할 때. 골라 읽는 그 재미에 책을 찾는다.


이걸 알고서부터 내 취미는 비로소 독서가 되었다. 이전엔 내가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르를 주로 읽는지 등 책의 취향도 방식도 모르는 채로 책을 취미라 말하기에 껄끄러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혹여라도 쏟아질 질문들에 준비되지 않은 것만 같아서. 책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과 내가 읽는 책들. 그게 생겼다는 건, 여유로울 때 집어드는 게 책이라는 건. 이제 내 취미라 부를 수 있을만한 근거가 생긴 것이다.


책 몇 권을 주워 들고 침대에 누워서 책갈피의 위치를 살피면 벌써 뱃속에서 꿈틀꿈틀 신호가 온다. 뱃속의 우리 아기는 내가 책 읽어주는 걸 아주 좋아한다. 주로 유대인의 가르침이 모음 된 두꺼운 책을 하루에 조금씩 읽어주는데, 아이에게 들려주며 나도 함께 배우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 아직도 한참 어리고 부족한 내가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좋은 엄마가 되려면, 늘 함께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고 한다.


이런저런 배움이 끝난 뒤엔 주로 에세이를 읽는다. 남에겐 별로 관심이 없는 나지만 남 사는 시시콜콜한 얘기는 또 재밌다. 나랑은 생각이 다르지만 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말들을 나누다 보면 잠시 약속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든 생각에도 종종 바람을 쐬어줘야 한다.


외국소설은 표현이 새로운 게 많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며 쓰인 문학적 표현은 다소 빙빙 돌려있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그걸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교적 소설이나 과학 소설 등 주제도 다양하고 가르침을 너무 고지식하게 주입하지도 않아서 종종 찾게 되는 책이다.


두세 권의 책을 적절히 다 읽었을 즈음되면 뱃속의 움직임이 많이 얌전해진다. 워낙 활발한 아기라 조용한 때는 많이 없지만 꿀렁꿀렁에서 꾸물꾸물 정도로 느낌이 바뀌면 이만 조용해졌다 싶다.


엄마의 취미를 함께 해주는 아기에게 벌써 든든함이 든다. 우리 아가는 어떤 책을 좋아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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