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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l 29. 2024

책들의 시간 96. 아니 근데 그게 맞아?

#. 요즘 대중문화 긁어보기_이진송 지음_상상출판

   나는 지극히 체제 순응적인 사람이다. 불편함에 대한 인식이 남들보다 약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체제’라고 쓰고 있지만 ‘일상’의 대부분에서 불편하다 하여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조금 덜하다. 분명 아예 없지는 않을 테니, 덜하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것이 결혼해서는 집이었고, 지금도 집의 불편함들이 눈에 띄지만 그냥저냥 잘 참고 산다. 그리 살다 보니, 예전보다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아침마다 감사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이런 생활 가운데에서의 불편함에 대한 인식만 늦은 것이 아니다. 문화와 사회의 변화 속도에도 잘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하게 해 주는 일이며, 잘못된 생각을 바로 깨우쳐 깨닫게 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책 읽는 일이 참 필요한 사람이다.      


  이번 책은 작가님의 예전 책을 재밌게 읽었던 터라 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책이다. 또한 수업에서 언어와 매체를 다루고 있어, 매체에 대한 비평문이 읽고 싶었다. 매체 비평을 다루고 있는 ‘아니 근데 그게 맞아?’의 부제는 ‘요즘 대중문화 긁어보기’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으며,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책이다. 참 좋은 책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면서도 나와 같은 어떤 마음도 발견할 수 있었고, 전혀 문제라 여기지 못했던 어떤 일들에 대하여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었다. 물론 우리 딸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의 생각을 바꾸는데 나의 말보다는 책 한 권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이 책이 그 역할을 해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 건강의 기준


 『트럭 미러』(생각의 힘, 2021)를 쓴 지아 톨렌티노는 인터넷이 “규모의 왜곡”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유저를 중심으로 세계를 구축해서, 오직 ‘나’의 관심사만 보여주고, 결국 현재 상태를 공고하게 하는 뉴스 미디어만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우리’는 언제나 무조건 옳다고 느끼고, 더 나아가 광기에 빠지게 한다는 지적은 프로아나의 집단행동을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프로아나는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건강을 망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건강보다 마름이 더 중요하고 이러한 신념을 공유할 뿐이다. 관심사와 외모 강박이 비슷한 사용자끼리만 모여 결속하다 보니 현실 감각이 왜곡된다. ‘개말라’가 되면 행복과 선망, 인정이 따라오지만 살찌면 불행하고, 살찐 사람은 자기를 혐오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비만 혐오가 심각한 것과 별개로, 인터넷 환경 속에서 프로아나의 공포는 극단적으로 부풀려진다. (262쪽)



  몇 년 전에 ‘프로아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은 ‘안쓰럽다’였다. 하지만 방송 속 그들은 더 마르길 원했고, 더 말라야만 한다고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작가는 인터넷이 유저를 중심으로 세계를 구축하여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상태를 공고하게 하는 뉴스 미디어만을 소비한다고도 이야기하고 있다. 충분히 공감이 갔다. 메신저와 인터넷 검색, 통화 외에는 핸드폰을 잘 다루지 못하는 나도 소셜미디어나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할 때면, 내가 예전에 보았던 내용과 비슷한 영상만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정말 선생님들과 밥 먹으면서 이야기했던 ‘청보리밭’이 인터넷 검색사이트에 노출될 때, 핸드폰은 내 말을 엿듣는구나, 그렇게 느끼곤 한다. 알고리즘. 찾아보고 많이 보았던 영상 위주로 인터넷이 선별해서 보여주는 것. 알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결국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우리이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다행이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내 생각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다이어트 때문에 늘 주눅 들어 살았던 내 어린 시절, 지금도 병원 검진에서는 ‘과체중’이라고 나오지만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괜찮다. 봄날 벚꽃 필 때 친한  선생님께서 사진을 찍어주신 적이 있는데 사진을 받아보고는 화들짝 놀랬던 적이 있다. 생각보다 너무 뚱뚱해서. 인지부조화. 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진 속 나,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는 내가 많이 다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으로 충분히 괜찮다 여기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만족감을 먼저 헤아리고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  

    

  마른 몸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회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건강에 대한 열망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럼 나는 어떤 건강함을 갖추어야 할까? 건강검진의 결과상 ‘과체중’이라 할지라도 밥이 맛있고, 1층에서 5층까지 오를 수 있으며, 여전히 잘 걷고 잘 보고 잘 들을 수 있다면, 건강한 건 아닐까? 빈혈로 약을 챙겨 먹는 걸 빼먹지 않고 스스로 건강을 과신하지 않으며 병원 진료를 적절하게 받는 것, 그게 건강한 삶이지 않을까?      


  관심사와 외모 강박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여 현실 감각이 왜곡되어 가는 것, 그것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며, 살이 쪘지만, 그럭저럭 재밌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아야 하고, 자신의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더 마르고 싶어’라고 말하는 딸에게, 이미 충분히 예쁘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살이 쪘다고 불행한 건 아니라는 것도 말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건강한 삶에 대한 열망에 앞서 건강의 기준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고 싶다.      


2. 인증 문화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연출하고, 정보를 편집하여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증 문화가 진정성과 결합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인증하는 것을 넘어 그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댄다. 인증 없는 정보는 즉각 진성성을 의심받고, 증명하라는 압박이 사방에서 들어온다. 몇 년 전, 트위터에는 어릴 때부터 불치병으로 투병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며 그동안 제한당했던 음식을 마음껏 먹어보고 싶다는 계정이 등장했다. 병원식 외의 음식 경험이 거의 없으니 맛있는 것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고, 오늘은 무엇을 먹어보았다면서 즐거워하는 계정주에게 많은 사람이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계정에 “네가 시한부라는 증거가 있느냐”, “병명이나 진단서를 인증하라”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니 질투가 났던 모양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검증받으려 하고, 그러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엄중함에는 헤아리기 힘든 끔찍함이 있다. 계정주는 괴롭힘을 받다가 안타깝게도 계정 운영을 중단했다. 맛있는 것을 추천받고 감상을 쓰는 일이 설령 주작이라고 한들, 이를 밝혀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정의 구현이지?(43쪽)


  이제 핸드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되었다. 핸드폰을 들고 걸어야 걸음 수가 측정되고, 그럼 10원, 20원 걸음 수에 따라 돈이 쌓인다. 이걸 ‘온라인 폐지 줍기’라고 한다고 딸이 말해 주었다. 엉뚱한 성실함이 있어 이 온라인 폐지 줍기가 나에게는 참 잘 맞았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늘 걷기를 체크하고 돈을 받았으며, 어떤 은행에서 하는 돈나무를 성실히 키워 나흘에 한 번 정도는 100원 정도를 얻는다. 연말에 이것 모아서 치킨이라도 사 먹어야지,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핸드폰을 많이 사용하는 것 치고는 다른 온라인 소통창구,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하지 않는다. 얼마 전 북클럽 문학동네 멤버십을 선물 받아, ‘북토크’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줌으로 열리는 ‘북토크’에 그림자처럼 있을 뿐이다. 성격이다.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쉽사리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 친절하기는 하지만 남들에게 없는 말을 하며, 굳이 말을 붙이지는 못하는 성격, 소통에 쉽사리 지치는 성격.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카카오톡 방이 있다. 매일 학교에서 만나지만, 카톡으로 그날 아침에 보았던 하늘 사진을 보내고, 읽었던 책의 좋은 구절을 보내고, 어제 먹은 음식을 보내는 그런 방. 그건 불특정 다수와 함께하는 방이 아니라, 친한 사람들과의 소통 창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또는 글을 써서 올리는 인증 문화가 주는 공감과 위로가 있음을 잘 안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는 지지와 응원의 힘도 잘 안다. 때로는 나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얻게 되는 자유함도 잘 안다. 하지만 그만큼 보여주는 어떤 면들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기고, 끊임없이 부정적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생기며, 과거의 어떤 행적들이 파헤쳐지기도 하고 원하지 않던 모습이 불쑥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밝혀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정의구현이지?’라며 의문을 드러낸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깎아내리면서, 또는 들춰내면서 정의를 구현한다고 의미를 부여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슬픔을 증명하라는 요구, 그리고 그 증명이 없으면 어떤 감정이나 표현, 사실을 ‘없다’고 여기는 감각, 자신이 타인에게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보고받을’ 의무가 있다고 착각하는 태도. 박지성의 ‘조의 사건’에는 SNS와 ‘인증 문화’에서 파생된 다양한 문제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다. 1920년대, 일제 치하 지식인들이 술 권하는 사회에 살았다면 2020년대, 현대인은 인증 권하는 사회에 산다. (41쪽)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순간이 있다. 중요한 문제다. 다만, 우리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사소한 어떤 일들에, 또는 타인의 개인적 일상과 감정에 인증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간섭인지도 모른다. 


  점심 급식 사진을 찍어 전송한다. 그건 나에게 사랑의 마음이다. 밥시간이야, 너는 무엇을 먹고 있니? 나는 지금 열무 비빔밥을 먹고 있어. 맛있는 것을 보면 네가 생각나. 이런 사랑의 마음. 김용택 시인님의 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처럼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는 마음. 모두에게 보이고 싶지 않지만 누구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적어도 나에겐 인증이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때로는 나의 사랑이 확장되어 많은 이와 공유하고, 연대하여 세상의 조금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 나는 두렵다. 나를 보여주는 것도, 타인의 일상을 너무 자세히 아는 것도, 내가 나의 기준과 잣대로 타인의 일상을 바라보게 되는 일도.  

 

3. 정리     


  한 사람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편협하다. 우리는 물리적 한계가 뚜렷한 몸에 기거하며 경험이 선을 그어놓은 범위 안에서 살아간다. 니체의 말처럼 인간은 유리잔에 빠져 그 안에서 보고 느끼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파리다. 그래, 우물 안 개구리, 그거. 하지만 서로의 우물과 하늘을 공유할 때, 울타리를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다.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며, 당연하고 여긴 관습과 폭력을 넘어설 수 있다. (164쪽)     

  누군가의 삶은 쉽게 내 이해의 규격을 초과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뭐라고? 타인은 ‘고작’ 나에게 이해받으려고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것은 혐오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낯선 존재이다. 사회가 정한 정상성 테두리 안에 있다고 안심하면서 남을 공격하는 이들은 알아야 한다. 지금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언제 변화할지 모른다. 시대는 바뀌고 규범은 변화한다. (168쪽)



  책이 말하는 큰 주제가 여기에 다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매번 생각하지만 쉽지 않은 마음의 태도라고도 생각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읽고 접하는 모든 문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길들여지기도 한다는 것, 잠재적 교육과정처럼.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비판 없이 매체를 접하면 안 된다는 것. 그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한없이 편협하며, 내 경험의 선을 넘어가지 못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혐오와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말 자명한 일이지만, 나는 온전히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작가의 말처럼, 시대는 변화하고 있고, 서로의 우물과 하늘을 공유하여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 그런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책 한 권의 힘이 참으로 강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잘 읽었다. 나는 아주 조금 나의 우물과 하늘을 내 보이고, 아주 조금 나의 세계를 확장해 간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건강의 기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건강한 삶이란 어떤 삶이며, 현재 자신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스스로 생각하는 건강의 기준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인증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어떤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지, 그 소통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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