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동네 북클럽 강연페스티벌_황석희 에세이_달 출판사
북클럽 문학동네의 2024 프리미엄 강연 페스티벌로 ‘황석희 번역가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퀴즈에도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신 분인 듯했는데, 나는 전혀 알지 못했기에 강연이 새로웠고 좋았으며, 새로운 세상을 맛 본 기분이었다. 강연 전에 미리 책이라도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강연 전엔 그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강연을 다 듣고 나서야 책을 빌려서 읽어 보았다. 그리고 황석희 번역가님이 번역한 영화 중 ‘데드폴’도 찾아서 봤다.
번역가님의 명함엔 ‘세상을 번역하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강연을 다 듣고 나서는 번역가님의 팔에 새겨진 타투가 참 예뻐서 타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마음이 오래 가지는 않아 이내 잠잠해졌지만, 다음날 바로 도서관에 가서 번역가님의 책을 빌려와서 단숨에 읽었다. 강연을 듣고 난 뒤의 독서라 그런지 정말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어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번역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적이 전혀 없다. 소설도 한국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고 영화도 외화보다는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더 관심이 적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년 전 ‘파친코’ 드라마를 보면서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며, 영어로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도 드라마 대본 작성 과정에 대하여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강연과 책을 통해 ‘파친코’ 드라마의 한국어 대본 작업에 황석희 번역가님이 참여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물 흐르듯 술술 넘어가는 대사에 번역가님의 역할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북클럽 문학동네 프리미엄 강연과 책을 통해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세계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어 참 좋다.
책의 부제는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번역가님의 삶의 모습이, 번역에 대한 생각이, 번역 과정에서 일어난 사람들과의 소통 과정이,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이 책에는 잘 담기어 있다.
굵직한 제목과 달리 책의 내용은 번역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예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일상을 번역하며 떠올린 상념을 엮어놓은 책이죠. 18년을 번역가로 살다보니 세상이 다 번역으로 보입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 상대의 말은 물론, 표정과 기분을 읽어내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도 번역이고 콧속에 들어온 차끈한 아침 공기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 것도 일종의 번역이죠. 그 과정에서 때론 오역을 하기도 하고 과한 의역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반드시 정역해야 하는 제 일과 달리 일상의 번역은 오역이면 오역, 의역이면 의역 그 나름의 재미가 있죠. (7쪽)
책을 다 읽고 나니, 앞부분에 실린 작가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누구나 번역가라는 말,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 자연의 변화를 읽어 내는 것, 그것이 번역일 수 있다는 말. 그리고 일상생활 가운데 얼마나 많은 오역과 의역으로 관계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가에 대하여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 후진 사람
과민성 이죽거림과 비아냥을 습관처럼 손가락과 입에 달고 살고, 남을 모욕하거나 상처를 주려 할 때 언어를 실체가 있는 무기처럼 점점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우린 갈수록 잔인해지고 과격해진다. 아니다. 그것만도 못하게 갈수록 비열하고 저열해진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후진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69쪽)
아버지 일을 겪은 후로 사람을 대하는 게 조금은 달라졌다.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일부러 상대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더라.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과의 마지막날이 있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래서라도 소중한 사람에겐 물론이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마지막 인사는 무던히 하는 게 좋다. 억지로 상냥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상처를 줄 필요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은 인사하자. (130쪽)
일을 하다 보면, 문서상의 실수를 저지를 때가 많다. 하도 많아서 가끔은 자괴감이 들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며칠 속이 상하기도 한다. 교감 선생님께서 이름을 부르실 때면, ‘아, 공문 또 틀렸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때로는 따로 고치라는 말씀 없이 손수 고쳐서 공문을 결재하실 때도 많으시다. 감사하다.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서. 분명 실수를 발견하셨지만 때로는 가르쳐주심으로 때로는 말없이 고쳐 주심으로 실수를 깨닫게 하시는 걸 통해 어른다움과 상사의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꼭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만난 것은 아니다. 날 선 말투와 시선으로 실수를 비아냥거리거나 자존감을 깎아 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책 구절처럼 ‘실체가 있는 무기’로서 언어를 사용하여 결국은 상처를 주는 사람. 언어로서 자신이 더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들로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렇게 ‘후진 사람’이 될 때가 있다. 사람이 너무 미울 때, 아침 출근길에 샤워를 하면서도 그 사람 생각에 출근하기가 싫을 때, 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상처를 주고 싶다. 비아냥거림으로, 적당한 무시와 풍자로, 또는 가시돋힌 말로. 근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은 아랑곳 없이, 내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잘 생활한다. 그걸 보면 나는 또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는 저주를 하게 된다.
“그래, 그렇게 살아라.”
책을 읽으면서 반성이 되었다. 영화 ‘쓰리빌보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작가의 경험, 아버지와의 관계. 저주의 언어는 아닐지라도 내뱉은 대로 이루어진 어떤 일에 대한 이야기. 작가의 다짐처럼 아무리 미워도 그저 덤덤하게,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지내야겠다는 마음이 가득 찬다.
2. 결국은 잘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임을.
실패하고 배우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이는 성실함. 이런 미련한 성실함은 단순해 보여도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조직의 입장에선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치명적일 때가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하지만 개인에겐 결과보다 노력이 중요할 때도 있다. 이상론, 낙관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렇다. 갈수록 재능이니 결과니 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력과 성실을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나는 아주 고깝다. 뭔가를 성취해낸 사람을 보면 노력의 방향을 잘못 잡았을지언정 바보 같고 우직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인 경우가 훨씬 많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주위에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 노력과 성실도 재능이라는 것을 언제쯤 이해할는지. (30쪽)
작가는 번역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양적인 측면에서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성실함이다. 그렇게 성실함으로 일을 한다고 해서 결과가 꼭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작가에게 자칭 선배라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한 말,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잘해야지.”
저 말을 많이 들을 적이 있다. 드라마에서 봤던가? 하지만 잘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성실함,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을 잘 알면서도 때론 잊고 산다.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아이들 중에 참 성실하지만 그 결과값이 잘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그럴때면 막연히 안쓰러움이 든다.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성실해 보이지만 성실한 척하는 것은 아닐까, 온갖 부정적인 마음이 든다. 하지만 성실함은 숨길 수가 없다. 늘 야자를 신청하고, 아침에 오는 시간도 일정하며, 단 한 번의 결석도 하지 않았던 아이, 간호학과에 가기에는 턱없이 성적이 부족하였지만, 그 학생은 결국 간호학과에 갔다. 수능 최저가 있는 지방의 간호학과에 마지막에 추가 합격했다. 지금도 성실함으로 잘 배우고, 결국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갈 것임을 믿는다.
성공의 방법과 과정이 사람마다 같지 않고, 성공한 사람이 다 성실한 것은 아니며, 성실하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말처럼 나도 노력과 성실이 재능의 하나임을 믿는다.
이제 학교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마음 한 구석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일을 전혀 모를 때 하나하나 가르쳐 준 좋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자료를 공유해 준 선생님들, 잘못해도 응원하며 부원을 지지해준 부장님, 잘하기 위해 성실했지만 나는 결코 혼자서 잘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노력과 성실이라는 재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번역이 좋아서 좋아했던 작품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어떤 장르의 무슨 작품이며,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스스로 생각하는 ‘후진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