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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Nov 04. 2024

책들의 시간 109. 이중 하나는 거짓말

# 이중 하나는 거짓말_김애란 장편소설_문학동네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간절히 기다리다 읽게 된 책이다. 어찌나 술술 넘어가던지, 읽는 내내 책이 너무 빨리 끝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읽다가 멈추어 한숨 고르고 다시 읽어내기를 여러 번. 재미있는 책은 이렇게 빨리 읽히는 것마저 아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단순히 재미만 있는 건 또 아니었다.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리고 뻐근하게 다가오는 어떤 통증, 그런 마음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가족의 죽음과 반려동물의 죽음,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결국은 사람을 통한 성장. 이야기의 흐름도 참 재미있었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한 문장이 많아 더 잘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1. 접속사만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마음. 


 채운은 자신의 오른손을 가만 바라봤다. 그러곤 자기 삶에 ‘그래서’와 ‘반면에’가 각각 어떤 비율로 존재할까 자문했다. 채운이 생각하기에 논리로 설명 가능한 일은 대부분 ‘그래서’와 ‘그런 뒤’ 다음에 일어났다. 반면 흥미를 끄는 쪽은 ‘그런데’나 ‘한편’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접속사 없이도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있다. (159쪽)     

  채운은 저때가 자기 삶에서 최고의 날까지는 아니어도 꽤 ‘좋은 날’이었음을 인정했다. 작은 몸에서 기쁨과 신뢰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던 때, 저 아래서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마음 놓고 내려와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어 그 사람에게 정말 마음껏 안겼던 그날이. 

 ‘그런데 어쩌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데 와 있을까?’

 채운은 접속사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여러 선택을 떠올렸다. 그러곤 다시 오늘의 학습 목표를 응시했다.(162쪽)     

 ‘반면에,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채운은 앞으로 자기 삶에 이어질 접속사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한 사건과 다음 사건 사이에 놓일 말로 적절치 않아 보였다.(172쪽)


  이 소설은 세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각자의 삶에서 거짓말 하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 그 거짓말이 숨기고 싶은 상처에 대한 자기 방어이면서 동시에 비밀이었기에, 비밀을 공유하는 순간 아이들은 서로의 위로가 되어 준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았다. 모든 것을 다 공유하지 않아도, 늘 같이 다니고 늘 무언가를 같이 하는 그런 친구가 아니어도 비밀 중 일부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서로에게 참 다행이다. 


  채운의 이야기, 영어 학습 어플에서 묻는 질문. 접속사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봅시다. 채운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학습 어플이지만 거기에서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적지 못한다. 말하고 싶지만 지켜야 할 것이 있어 말할 수 없는 비밀이기에. 

  ‘반면에,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접속사로 삶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단순해질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삶이 단순하기를, 그 어떤 사건과 사고 없이, 한없이 단조로워지기를 바란 적이 많다. 심심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평온에 대한 갈망. 유난히 예측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큰 나는 더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살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정말 접속사만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여러 선택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채운은 수업 시간 소리의 발표를 듣고, 접속사 없이도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채운의 삶 중 논리로 설명한 가능한 일은 늘 ‘그래서’와 ‘그런 뒤’ 다음에 일어났었다. 하지만 소리의 발표는 그런 인과관계가 없는 하루에 대한 발표였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상의 어떤 순간. 나의 이야기를 엄마가 듣고, 또 같이 웃고, 같이 걷는 일상. 그것이 최고의 날이었음을 소리는 발표했다. 하지만 소리의 엄마는 지금 죽고 없다. 


  책을 읽으면서, 딸이 생각났다. 주말이면 집에 오는 딸을 위해 지하철 역으로 데리러 간다. 아이가 차에 타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그 10분 남짓의 시간, 아이의 소소한 일상을 듣는 것이 나는 참 좋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 접속사 없이 그냥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웃는 시간, 그 시간이 참 좋다. 어떤 일이 어떤 순간에 갑자기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금의 순간을 감사하는 일밖에 없다. 

  그럴 수 없는 채운과 소리의 시간. 책을 읽으면서 내내 기도하는 마음이 든다.      


2.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그런데 모를 리 없는 저열함. 


그런데 지난번에 면회 갔을 때 언니가 그런 말을 하더라. 그땐 그냥 넘어갔는데 요즘 자꾸 그 얘기가 생각난다고. 어쩌면 누군가 그걸 원해서, 산산조각 난 유릿조각 앞에서 자신이 통곡하는 모습을 그토록 생생히 그릴 정도로 바라서, 간절히 꿈꿔서, 자기가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이모가 호박잎을 다듬다가 멈추고 문득 거실 바닥을 응시했다. 

있지. 사람들 가슴속에는 어느 정도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그런데 모를 리 없는 저열함 같은 게. 

  그러곤 다시 호박잎의 긴 섬유질을 손으로 뜯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도 조심해. (141쪽)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다. 그리고는 잠들 때에도 또 생각이 나서 마음이 힘들었다. 언젠가 들은 말들, ‘자랑하지 마라. 누군가는 시기해서 언젠가 말했던 너의 비밀을 약점으로 삼아 퍼트릴 수 있다’ 이런 말들. 결국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 

  채운의 엄마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감옥에 간다. 분명 징후가 있었던 가족의 불행이었지만, 결혼을 할 때는 그걸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한번 웃어주는 웃음, 그 찰나의 이완에 마음을 빼앗겨 결혼을 하고 평범한 일상을 꾸려나갔다. 그때 집에 놀러 온 채운 엄마의 친구. 있지도 않은 일을 보았다며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시작된 균열의 씨앗. 그리고 현실이 되어버린 불행. 


  ‘사람들 가슴속에는 어느 정도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아무도 모르길 바라지만 모를 리 없는 저열한 마음.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 정말 쉬운 일 같은데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을 땐 여유로움으로 인해 타인의 기쁨에 함께 축하해 줄 수 있는데, 내가 불행할 때 타인의 행복을 본다면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정말 모르는 어떤 사람이라면 가능할 수 있으나, 나와 밀접한 어떤 관계의 사람이라면? 친구라면? 또는 가족이라면.   

   

  겁이 났다. 미운 어떤 사람에 대한 복수 같은 마음, 불행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잘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적은 많다. 내가 받은 상처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또한 나는 그럴 힘이 없으니 누군가로 인해 그도 상처받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말을 하는 순간 혹시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말의 힘은 강하니까. 또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마음도 품지 않았다. 좋아하니까. 잘 되기를 바라니까. 질투가 없지는 않았으나, 좋아하는 마음에 잘되기를 바란 적이 더 많았다. 하지만 책 속 채운 엄마의 친구. 생생히 그릴 정도로, 간절히 꿈꿔서 말하는 거짓말. 무서웠다. 무서움이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3. 정리

  ‘이중 하나는 거짓말’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읽고 싶었다. 문학동네 프리미엄 강연을 기다리기도 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의 제목은 소설 속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시간 소개 프로그램이었다. 첫 시간 수업에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소설 속 청소년들의 삶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각자 몫의 삶의 크기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결국은 비밀을 간직한 채, 때로는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또 거짓말인 줄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친해지는 어떤 관계들로 인해 어른이 되어갈 청소년의 삶, 그 크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의 비밀을 아는, 또는 나의 허물과 상처와 아픔을 아는 사람을 멀리했던 적이 있다. 부끄러움을 들킨 것에 대한 방어. 하지만 지금껏 나의 곁에 남아 내 부끄러운 고백을 담담히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싶은 그런 날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다섯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 봅시다. 반드시 그중 하나는 거짓말을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문장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중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2)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그러나 모를 리 없는 저열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어떤 순간의 상황이며, 나의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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