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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Mar 25. 2024

책들의 시간 78. 작별 곁에서

# 작별 곁에서_신경숙 연작소설_창비

   오랜만에 신경숙 작가의 책을 읽었다. 대학생 시절, 신경숙 작가의 책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손에서 놓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고, 나이가 좀 더 들었을 때 읽었던 ‘엄마를 부탁해’는 좋아하는 책 목록의 하나가 되었으며,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참 좋아서 친구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었다. 이번 책은 ‘작별 곁에서’이다. 이별을 다루고 있는 책이구나, 그런 생각에 처음에는 손에 들기가 머뭇거려졌다.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 나는 여전히 두려움이 크며, 처음부터 제목에 이렇게 ‘작별’이 들어가는데 얼마나 슬플까에 대한 마음이 책을 읽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제목이 ‘이별 곁에서’가 아닌 ‘작별 곁에서’인 것. 이별과 작별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리고 그 말이 주는 의미와 무게감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 뭐 이런 생각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는 그 옛날 들었던 ‘석별의 정’ 졸업식 노래.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이 부산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는 마음이 자연스레 가라앉았으며, 도토리가 흙바닥에 깔린 굴참나무 숲에 대하여 오래도록 생각했다.   

   

1. 보고 싶지 않은 마음


  혼자 그렇게 아프고 수술받고 잘 견디었네. 잘했어. 다만 1월 23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그때는 바로 알려줘. 그리고 썼다. 뭐라고 자꾸 말을 해. 내가 이렇다……라고 얘기를 해야 해. 서로 살고 있는 거리도 너무나 먼데 네가 아무 말도 안 하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라고 쓰다가 울적해졌다. 네가 아픈 것만 모르는 게 아니지, 싶었다.(93쪽)     

  나중에 네가 나 기억할 때 여기까지만이면 좋겠어. 너 아니고 누구라도. 오늘은 이상하네. 머리가 좀 많아. 이런 말 할 수 있어서 좋아. 통증이 시작되면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나도 몰라. 그냥 덩어리가 된 것 같아. 나도 모르는 고통스러워하는 나 말고, 너무 작아져서 없는 것 같은 나 말고…… 그래 여기까지만.(148쪽)     

  세상은 그런 것이다. 네가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혼자 고통과 대결하며 순간순간 까무러치고 있을 때도 어디에선가는 이런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며 질주하는 사람들이 있지. 이렇게 시간은 제각각이야. 나는 인파에 섞여 떠밀리고 나아가고 돌려세워지며 샹젤리제 거리에 서 있다. 너에게 가겠다고 억지를 쓰지만 허락하지 않는 너의 마음은 이미 알아.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게 나라는 거 너도 알겠지.(149쪽)


  이 책은 연작소설이다. 총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으며, 소설들은 인물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수학의 교집합 같은 느낌. 세 편의 소설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소설은 두 번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였다. 읽으면서 내내 생각나는 친구가 있었다.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 친구가 떠올랐으며, 미안한 마음이 계속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쌓여가고 있었으며, 다양한 순간들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소설 속 두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손을 잡고 자라왔다. 책의 구절을 인용하자면, ‘결핍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은 이유 없이 잡을 손이 필요했다. 나에겐 너의 손이 거기에 있었고 너에겐 나의 손이 거기 있었겠지.(112쪽)’에서처럼 서로의 손이 되어 주었다. 필요한 순간에 함께 있어 주었던 어떤 존재의 크나큼도 삶 속에 묻힐 때가 있다. 소설 속 인물 ‘나’와 ‘너’에게는 아마 한국과 독일이라는 삶의 터전이 달라졌던 그 순간이 아닌가 싶다. ‘나’는 뒤늦게 ‘너’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너’에게 끊임없이 가겠다고 하지만, ‘너’는 ‘나’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은 아무것도 몰랐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도 결국 나의 지식의 폭을 넘어서지 못하는 느낌. 그래서 내가 너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두렵다. 내 선택의 어떤 변명으로 작용하게 될까 봐.

  친구의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다. 요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가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가지 못했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친구에게 갔다. 마음 한편으로는 살아계실 때 한번 뵈러 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에게 여쭈었더니 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버지를 보러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찾아오면 그 순간엔 빙그레 웃지만 그분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그렇게 우셨다고 한다. 아픈 자신의 모습을 보이셨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나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보이고 싶은 모습과 끝까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는 것.      


  결국 소설 속 주인공은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친구가 사는 외국에 갔지만 친구는 자신을 보러 오는 것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마지막, 친구는 자신이 묻힐 굴참나무 숲의 주소를 가르쳐 준다.      


  너에게 갈 수 없으니 나는 여기 있을게. 오늘은 어땠어? 내일도 물을게.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하지. 반짝이는 눈망울을 한 아이들, 모든 것을 잃고 멀리 떠나는 사람들, 남루한 세간살이들, 누군가를 부르는 애타는 목소리. 이 고통스러운 두려움과 대면할게. 사랑하고도 너를 더 알지 못해서 미안해. 그 강에서 내 눈 속으로 들어왔던 반딧불이 한 덩어리가 너에게 날아가기를 바라. 통증 때문에 점액질이 되어버렸을지라도 너의 눈이 단 일초라도 그 빛의 덩어리와 마주치기를. 신은 늘 굶주려 있는 것 같아, 잡아먹힌다 해도 앞으로 나아갈게. 내일 다시 연락할게. (157쪽)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친구의 아프신 아버지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친구를 보러 갔어야 했었다는 자각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친구의 마음을 나는 들여다보았어야 했었다. 오랜 시간 나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그 친구에게 나도 잡을 손이 되어 주어야 했었다는 그런 마음의 미안함이 몰려왔다. 나보다 먼저 수도권의 어느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아왔었고, 나도 이내 수도권의 어느 지역에 자리를 잡아 살아오면서 우린 가까워졌지만 자주 보지 못했다. 일상이 바쁘다는 것이 합리화로 작용했고, 마음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소설 구절처럼 ‘사랑하고도 너를 더 잘 알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문득문득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면서 감당하기 힘든 슬픔 가운데 빠질지도 모를 친구의 아픔을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의 곁에 있어 주고 싶다.


  내 연락을 기꺼이 받아주어 고맙다.      


2. 결국은 모든 일이 처음이기에.


  가끔 처음 해보는 일이나 처음 당해보는 일 앞에 처하게 되면 제 나이를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물끄럼해집니다. 아직도 처음인 게 남아 있다니 싶어서요. 도대체 얼마를 더 살아야 처음 닥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일까요.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일이 사라지는 날은 없겠지요. 누구에게나 죽음을 앞둔 일초 전도 처음 접하게 되는 순간일 테니. 그러니까 인간은 태어나서 죽기 일초 전까지 처음 앞에 서게 되는 거네요.(168쪽)


   세 번째 소설은 자녀와의 작별, 친구와의 작별을 겪은 주인공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편지 형식이다. 첫 번째 소설의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연락을 하기란 쉽지 않다. 주인공이 그러했다.


  다시 뭔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딸의 죽음 앞에, 주인공은 첨벙첨벙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다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지만 주인공이 다시 힘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바다를 보러 가겠냐고, 오름에 고사리를 따러 가겠냐고, 자전거를 타겠냐고, 끊임없이 물어봐 주는 어떤 선한 이웃이 없었다면 주인공은 절망 가운데에서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운과 불운, 사건과 사고, 만남과 책임마저 우리는 처음 맞이하게 된다. 가끔 정말 이 나이에도 이런 일들이 생기는구나,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두렵다. 지금의 평온함을 이야기하기가. 지금의 고통도 처음이겠지만 결국은 모든 고통과 평온의 순간이 처음이라면, 매번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두렵게 받아들이고 평온이 다가올 때마다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삶의 순간을 고스란히 혼자 견디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 주변의 좋은 사람 덕분임을, 나를 향해 이름을 부르고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나를 밖으로 이끄는 사람들 덕분임을 또 한 번 느낀다.      


3. 정리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일. 내게는 별일 아닌 이 과정이 어떤 분에겐 일생 동안 이루어지지 않는 일임을 느낄 때 마음의 분란이 잦아들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조용히 복무하게 된다. 내가 다시 돌아갈 서울은 나 없는 사이에 온 산을 물들이던 꽃들이 다 졌겠지. (중략)     

  나는 메말라가지만 내가 어떤 글을 쓰는 그 글들이 종내는 작별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어깨를 보듬어주는 온기를 품고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당신이 사랑한 것, 마음이 묻어 있는 것들과 온전하게 작별할 수 있기를, 지금 내게는 작별하는 일이 인생 같다. (267쪽, 작가의 말 중)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읽은 작가의 말에 마음이 좋아졌다. 정말 슬픈,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너무나도 슬픈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묻혀 있다가 물 밖으로 빠져나온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말이 그런 위로가 되었다. 소설이었지만 감정이 많이 이입되어 꼭, 나를 보듯 책을 읽었다. 요새 일상에 휘둘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너무 많이 울어 부끄러워졌던 적도 있었다. 좋은 사람들에게 나는 민폐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아니, 나이 마흔이 훨씬 넘은 이때에도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구나, 그런 생각에 한심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일상이라는 곳으로 돌아온 기분. 마음의 분란이 잦아들었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조용히 복무하기로 마음에 몸이 따라왔다. 몸과 마음의 조화.


  참 좋은 사람들에게 참 좋은 마음을 전하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런 무기력의 순간이 있었는지요? 그때 자신을 밖으로 꺼내 준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이별의 순간이 참 많습니다.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사람들과 이별 아닌 작별을 하기도 합니다. 기억나는 작별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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