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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Mar 18. 2024

책들의 시간 77. 마주

# 마주_최은미 장편소설_창비


  여전히 봄을 기다리고 있다. 예전 사진첩을 들여다보면, 작년 3월 13일엔 매화꽃이 피었는데, 올핸 아직 꽃봉오리만 있고 매화꽃이 피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꽃을 기다리는 이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꽃이 좋아지면, 늙어가는 것이라던데, 나는 자연이 참 좋다. 날 것 그대로의 자연보다는 도시의 가꾸어진 자연이. 

  소설이 읽고 싶었다. 표지의 사과와 싱그러운 풀, 하얀 천의 흔들림, 마음이 봄을 향해 가고 있어서인지, 표지가 나를 이끌었다. 읽고 싶은 마음. 그리고 제목, 제목이 ‘마주’다. 마주가 혼자서 쓰일 수 있던 단어이던가 그리 생각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마주, 서로 똑바로 향하여. 마주의 사전적 의미. 서로 똑바로 향하여 무엇을 바라보라는 것인가? 마주가 수식하고 있는 서술어는 무엇인가? 그런 생각으로 읽게 된 책이다. 재미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와 젊은 엄마의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 내면의 심리, 공황장애를 경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리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의 선한 마음들. 이 책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날 선 어떤 어휘의 휘몰아침과 결국은 찾아가는 평온함 사이에서의 감정 변화를 잘 드러난 책이다.     

 

1. 참 어려운, 관계 맺기.


  종수와 결혼을 해서 평생 단짝이 되면 나는 지겹고 불편했던 여자들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고 영화를 보고 맛집에 가는 것들을 종수랑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종수가 나를 사랑해 주는데 다른 여자들이 내게 뭐라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종수랑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자 내 앞에 펼쳐진 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촘촘한 여자들의 세계였다. 나는 이제 내 아이까지 옆에 세운 채 다시 그 세계를 뚫고 들어가 자리를 틀어야 했다. 여자들과 좀 멀어지고 싶어 종수랑 가까워졌는데 그게 빼도 박도 못하도록 나를 다시 여자들한테로 데려갔던 것이다. 종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종수랑 있고 싶어서 종수랑 살기로 한 건데, 종수는 간데없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키 크고 눈을 잘 안 맞추고 슬랙스가 잘 어울리는 어떤 어려운 여자와 롯데월드 투섬 테이블에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152쪽)


  나는 친구가 많이 없다. 어렸을 때에는 많은 무리와 친하게 지냈지만, 친구라고 이름 붙일 만한 아이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깊은 마음을 나누는 데에도 서툴렀지만,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려 내 행동의 제약을 가져오는 것이 무엇보다 나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들을 들키지 않고 잘 지냈다. 사회화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리 속에서도 늘 한 명의 친구와 잘 지냈으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각 시기의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었다. 다만, 그 아이가 없어지면, 나는 고장 난 로봇처럼 행동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숨기 바빴다. 


  지금은 다르다. 친구가 많은 건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으며, 그 누구보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딸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어,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마음을 나누는 일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책의 주인공 나리는 귀엽게 생긴 외모로 인해, 여자들의 질투를 받았으며,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의해 늘 소외당해 왔다. 그것으로 인해 나리는 늘 친밀감에 목이 말랐고,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는 자신을 가장 덜 피곤하게 하는 종수와 결혼을 한다. 결혼이라는 것이 결국은 가장 안전한 관계에 대한 열망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중심으로 또 다른 관계가 생긴다. 학교 엄마들!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반장을 했다. 그랬더니 같은 반 아이들의 엄마들이 연락을 해 왔고, 모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학부모 모임’ 같은 거구나, 막연하게 느꼈다. 우리 엄마는 중학교 때 학부모회 회장을 했고, 그리고 그 모임을 30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 물론 나는 그 학부모회 엄마들의 자녀인 중학교 동창 중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은 엄마를 통해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내가, 딸이 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부모 모임이 생기고 나니 숨고 싶었다. 결국 이래저래 연락을 피했더니 부반장 엄마 중심으로 따로 모임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잊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촘촘한 그 여자들의 세계에서 나는 빠져나왔지만, 그것이 아이의 삶에, 아이의 친구 관계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불안하기는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엄마들의 관계와는 별개로 자신만의 관계를 맺어가고 있으며 잘 자랐다.      


2. 결국은 자녀, 자식의 공과 나의 공


  나는 비웃고 싶어졌다. 

  경멸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예전부터 경멸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 세상엔 여러 여자가 있었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상황과 조건 속으로 자신을 기어코 다시 밀어 넣는 여자들이 있었다. 자신이 가장 취약했던 그곳으로 맨몸인 채 뛰어들어가 만회가 가능하다고 믿는 여자들이 있었다. 

  아이를 새로 낳고 싶어 하는 게 어떤 마음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나는 수미를 더 참아주기가 어려웠다. 그날 밤 서하가 울면서 앉아 있던 의자가 저렇게 내 눈앞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딸의 세상을 최선을 다해 좁게 만들어온 여자의 면상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딸을 발바닥만 한 신문지 위로 밀어 넣은 채 뻔뻔하게 눈을 뜨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침을 뱉고 싶은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179쪽)


  세상이 온통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리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 모든 관계에서 우호적 위치를 차지했던 사람이라면 더 그럴지도 모른다. 나리는 동네에서 친하게 지냈던, 아니 알고 지냈던 수미가 둘째를 가지겠다고 말하자 속으로 온갖 경멸을 다 한다. 수미의 딸 서하에게 엄마로서 충분하지 못한 수미가, 서하에게 정서적 폭력을 안겨주었던 수미가 둘째를 낳겠다고 하자, 자격이 없다고 비난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관계의 피로함이 느껴졌다. 친한척하지만 친하지 않은, 속으로 비난을 하지만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그런 관계의 피로함.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선택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비난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확고한 가치관과 태도는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모습은 저마다 다를 수 있음을 잘 기억해야 한다.      



  문을 쾅하고 닫는 소리, 책장을 확확 넘기는 소리, 아이의 한숨 소리, 아이의 화난 목소리, 아이의 짜증 난 표정. 아이가 내보이는 부정적인 반응들에 수미는 필요 이상으로 상심을 했다. 그 모든 신호들이 수미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다. 뭔가가 망가져가는 조짐이 되었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되었다. 

  서하가 웃지 않으면 수미는 쉴 수가 없었다. 

  서하가 행복해하지 않으면 수미는 불행감을 느꼈다. 

  서하가 우는 시간을, 수미는 좀처럼 견디지 못했다.(165쪽)


  나리가 수미를 못마땅해 왔던 이유 중 하나는 수미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수미는 자신의 아이 서하와 친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것이 늘 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조마조마해하는 엄마라면, 그 엄마의 삶이 참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미는 감정에 충실하며, 보상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이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을 것이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수미는 ‘난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아’ 그렇게 말을 하고 만다. 아이는 그것이 상처가 되었고, 엄마는 아이가 행복해하지 않는 것에 불행을 느꼈다. 


  자식이 부모의 공이 될 때가 있다. 자주 느낀다. 나의 불행을 감추어주는 존재, 자식이 잘 되면, 나의 삶이 불행하다 할지라도 자신이 잘 살아왔다는 증거가 되는 것.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자식이 자신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자식과 나의 삶은 적당한 분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수미의 아픔은 아이로 인해 치유될 수 없다. 하지만 둘째를 가지고 싶어 하는 수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가장 친밀한 자신만의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마음.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나는 한 명의 친구만 있으면 되었다. 그래서 잘 싸우지 않았으며, 어찌 참 다행스럽게 서로의 마음이 잘 맞아 피로함이 없는 관계를 쌓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가 달라질수록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필요했으며, 가족을 이룬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딸은 참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잘 볼 수 없지만, 여행을 같이 가도 참 잘 맞는 사이, 커피숍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어도 편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결국은 자식이 나의 공이 되어 준, 그런 사이가 되었다.      


3. 정리

  소설이 주는 재미가 있다. 세심하면서도 치밀한 심리의 묘사,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나의 감추어두었던 마음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 때로는 내가, 내가 아닌 것에 합리화를, 또는 나인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 좋다. 

  봄, 소설이 읽고 싶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사과가 먹고 싶어졌으며, 사과로 만든 술이 궁금해졌고, 문득 여행을 가고 싶어졌다. 주변의 참 좋은 사람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무엇보다 나의 가장 귀한 친구가 되어 주는 그와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졌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친한 듯 친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관계의 피로함을 느끼고 있지만 만나고 있는 사람은 있는지, 왜 그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자식관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혹시 가장 이상적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있다면, 어떤 모습 이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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