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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Mar 11. 2024

책들의 시간 76. 야생의 식탁

#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_모 와일드 지음


   식탁시리즈 주간인가 보다. 지난주에 읽었던 책도 ‘식탁’이란 단어가 들어갔는데 이번 책도 식탁이 책 제목에 들어간다. 많이 읽고 싶었던 책이었고, 빌려와서 바로 읽었는데, 이 주가 걸렸다. 개학이라 바쁜 일상 가운데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책을 펼쳐드는 건, 책이 주는 위로가 크기 때문이다. 심란하고 부산스럽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아 마음이 일상으로 회복하게 해 주는 힘이 책에는 있다. 


  책의 부제가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이다. 내가 왜 이 책에 끌렸을까? 나는 여행지를 선택할 때에도 완전 자연의 모습이 살아있는 곳보다 가꾸고 정돈된 도시의 자연을 좋아하는 편이라 도시공원 여행을 선택할 때가 많다. 그런 내가 ‘수렵’과 ‘채집’이란 단어가 그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자연에서 채집한 것들로만 살아내기’ 1년 프로젝트의 결과가 궁금했고, 현대인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읽은 책. 좋다. 나는 이 책이 좋다.      


1. 자연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


 오늘은 남풍이 분다. 숲 속에 있어도 머나먼 고속도로의 차량소음이 희미하게 귓가에 들려온다. 끊임없이 자동차가 지나가고 트럭이 덜컹거린다. 이런 소음은 이제 영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 배경음악처럼 존재한다. 외딴 시골까지 침투하여 산에 울려 퍼지며 평원을 가로질러 구석구석 파고든다. 차량 소음이 아직 침투하지 못한 오지에서는 풍력발전기의 굉음이 대기와 땅을 진동시키곤 한다. 문득 인간이야말로 자연의 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3쪽)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삶이 친근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약초를 캐고 연구하는 삶이 낯설지 않아서이며, 침술을 신뢰하고 동양의 어떤 가치관들에 대하여 긍정하는 모습이 익숙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작가가 실천하는 삶의 어떤 모습들은 내가 바라는 모습이었으며, 작가가 고통스럽게 겪는 질환의 모습도 나 또한 겪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해서였다. 

 작가는 오랜 시간 이명을 앓아왔다. 나도 이명이 심한 것을 아니지만 겪고 있기 때문에 궁금했다. 작가는 이명을 치료하기 위해 침을 맞고 돌아와 생각한다. 숲 속 근처에 살고 있으면서도 늘 들리는 고속도로 차량의 소음, 배경음악처럼 파고든 도시 문명의 소리. 그러면서 자연에게 있어서는 인간이야 말로 이명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공감이 갔다. 


  이명이 아직 고통스럽진 않으나 당황스럽긴 하다. 귓가에서 울리는 높은 고음의 ‘삐’하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리다가 서서히 사라질 때가 있다. 그리고는 일상으로 이내 돌아오지만, 그 소리가 잦아지는 것을 느낀다. 의식적으로 그 소리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야 사라질 것 같아서. 따로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 확신할 수 없어서, 또 굳이 이명임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작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자연의 일상이 회복되던 순간의 감동에 대하여도 이야기하고 있다. 사슴들이 자유롭게 활보하고, 자연이 풍성해지던 순간, 인간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 살아나는 자연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인간의 삶은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멍하니 앉아서 사과를 먹는다. 원래 먹으려던 것보다 훨씬 여러 조각을 씹어 삼키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닫는다. 나를 매혹하는 것은 균류와 식물만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주는 종간 역학 관계라는 사실이다. 나는 자연이란 무자비한 존재이며 적자생존과 경쟁밖에 모른다고 믿으며 자랐다. 하지만 자연은 사실 모든 인간의 모범이 되려는 것처럼 협력과 공생 관계를 훨씬 더 많이 보여 준다. (중략)

  이제는 식물계의 작동 방식에 관해 많은 것이 밝혀졌다. 현재의 농작물 생산은 토양과 미생물에 극심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 과학자들은 현대식 농업에 근권미생물을 고려해야 한다는 시급한 필요성을 깨닫는 중이다. 땅에 화학 제초제와 살충제를 들이붓는 것은 자살 행위이며 생각보다 빠른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 (352쪽)


  작가가 마주하는 자연의 모습은 적자생존과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공생이었다. 유익한 미생물이 함유된 식물의 뿌리가 식물의 성장과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토양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있으며 결국 이것이 인간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는 의견,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유기농 식물과 비유기농 식물에 대한 논란을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자연과 우리는 가까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자연의 모습에 친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의 원리에 가까워지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나만의 산책 지도


  여름이면 너도밤나무 잎 사이로 드리운 얼룩덜룩한 그늘에서 작고 하얀 땅감자 꽃이 가만히 흔들리며 온기를 만끽한다. 쌀쌀한 겨울인 지금 그 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나는 꽃이 피었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70쪽)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간직하고 있는 숲 속 여러 지도들에 대하여 감탄했다. 그러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특히나 버섯을 좋아하는 작가는 버섯이 나는 여러 장소들을 알고 있으며, 때때로 채취강습을 통해 함께 버섯을 따는 일상을 누리곤 한다. 멋있는 삶이다. 

  이번 주 개학이 있어 바쁘긴 했지만, 일주일의 삶을 계획하면서 ‘매화 피었는지 산책하기’를 미션으로 넣었다. 매화가 보고 싶기도 했고, 겨울의 끝자락과 봄을 맛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동네에 좋아하는 공원이 있다. 매화도, 벚꽃도, 명자꽃도, 작약도, 수국도 심긴 공원이다. 참 좋아하는 공원이라 매년 봄엔 열심히 발걸음을 떼지만 일상에 지쳐 여름이 넘어가면서는 잘 가지 못하곤 한다. 


  나도 나만의 지도들이 있음이 떠올랐다. 학교의 매화나무 네 그루, 그리고 근처 공원의 매화나무들, 우리 동네의 산책로에 벚꽃 나무들, 여름날의 수국이 멋있는 그 길, 가을날 은행나무잎이 흐드러지게 떨어져 장관을 이루는 절의 모습 등 내가 좋아하는 어떤 시간과 공간들이 있다. 그 공간이, 그 공간에서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이 나를 풍요롭게 만든다. 참 좋다. 또 다행이다. 나의 삶에 꽃의 시간과 공간이 있어서.      


3. 정리


  우리의 신체 조건이 솔직한 감정 표출을 가로막곤 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나는 이제 몸만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한층 가벼워졌다. 체중이 1킬로그램 줄어들 때마다 한 살 젊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거울에 비치는 내 몸이 그 안에 있는 마음과 더 비슷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몸이라도 매트릭스에 갇힌 슬픔을 껴안고 있었던 걸까? 나를 통과하는 에너지의 흐름이 막혀 있었는데, 체중이 줄면서 뚫린 것 같다. 이제야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고 작년에는 얼마나 다르게 느꼈는지 깨닫는다. 내 존재가 가뿐해지면서 나는 오히려 형체에 덜 얽매이게 되었다. 감정, 느낌, 기억은 모두 에너지이며, 야생식을 먹으면 그 에너지가 방출된다.(320쪽)     


  우리는 비리디타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일단 눈앞의 위험을 넘겼다면 자신을 갉아먹는 감정은 흘려보내고, 경험을 통해 배우며, 생명의 그물망을 통해 우리를 떠받쳐 주는 공동체와의 유대를 지켜내야 한다. 자연과 연결되는 기쁨은 영혼의 양식이다. 분노는 꼭 필요하며 마땅한 자리가 있는 감정이지만, 그 또한 행복한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382쪽)


  한 주간 다사다난했다. 삶이라는 것이 그런 다사나난함의 연속이겠지만, 이번은 마음에 꼭꼭 숨겨두었던 감정이 올라와, 어떤 일에 분노했으며, 그 감정이 나를 갉아먹어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유대가 나를 정서적으로 받쳐 주었고, 나는 다시 이내 일어났다. 그러나 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부당함을 당하고 있던 그 순간, 필요하고 마땅한 자리에서 분노하지 못했으며, 성숙하지 못한 감정으로 스스로를 자책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맞이한 주말, 동네 공원을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꽃이 피기 시작한 봄을 보았다. 아직은 꽃샘추위로 잔뜩 웅크리고 있지만 이내 풀과 꽃과 나무와 내가 기지개를 켤 것을 안다. 그래서 좋았다. 생명력이 느껴져서.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내야겠다. 자연과 연결되는 기쁨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      


[이야기 나눠 보기]

1) 나에게 있어 ‘자연’은 어떤 공간이며, 어떤 느낌인지, 자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눠 봅시다. 

2) 자신만의 산책지도가 있습니까? 좋아하는 자연의 어떤 공간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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