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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r 15. 2023

길을 걷다(2)

해파랑길

[해파랑길 46코스]

속초 장사항 ~ 고성 삼포해변

총 15km  

약 5시간 10분 소요

난이도 하

2023년 3월 11일() 흐림





4년 전, 모처럼 부산 여행을 계획하며 해파랑길의 관문인 1코스 걷기를 일정에 넣었었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출발해 해운대의 끝자락 미포까지 총 17.7km, 약 5시간 50분이 소요되는 꽤 긴 코스였다.



하지만 부산 도착 첫날 일정이 조금 빠듯했던 탓에 완주하지 못하고 광안리에서 걷기를 멈추어야 했다.

그날 나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모든 해파랑길 코스를 걸어내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4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4년,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코로나19로 외출과 사회활동을 최소로 줄이며 자체 격리하듯 살았고, 웹소설에 도전해 첫 e-book을 발간하고, 종이책 출판의 꿈을 이루고, 화천에 내 집을 짓는 염원을 이루며, 서울을 떠나 화천으로 이사를 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23년을 맞은 이제야 소강 중이었던 걷기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이 설레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기에 훅 저지르는 심정으로 해파랑길 도장 깨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우선은 이동거리가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해보자는 심정으로 속초가 출발점인 46코스를 점찍었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8시에 나섰다.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가볼까도 했지만 1인당 15,000원, 남편과 함께 2인이면 왕복 6만 원이니 차량으로 이동하는 게 유류비, 톨비, 시간 절약 등의 이유를 따졌을 때 차라리 낫겠다는 판단이 서 차량으로 속초 장사항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화천에서 장사항까지 1시간 40분 소요되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침의 장사항은 무척 한가로웠다.

주변에 각종 횟집과 대게집,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했지만 그 시간 문 연 카페는 한 곳뿐이었다.



나와 23년의 인연이 있는 [다오름 산악회] 멤버들이 동행하기로 해 남편과 난 카페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팀은 토요일 아침 막히는 서울 벗어나기에 발목이 잡혀 약속시간보다 약 1시간 늦게 장사항에 도착했다.

10시 30분 출발 예정이었는데 11시 40분 출발하게 되었으니 예정보다 1시간이 밀렸다.

절반쯤 걷고 40년 전통 회냉면집에서 점심 먹을 계획이었는데 출발이 늦어져 마음이 급했다.


다오름과 함께 출발 인증샷


장사항에 무료 주차를 하고 깨끗한 공중화장실에 들러 걸을 준비를 단단히 한 뒤 인증 사진을 찍고 출발!

3월 들어 내내 한낮의 기온이 봄처럼 따뜻했던 기억만 하고 옷을 얇게 입고 나섰는데 하필 오늘은 흐리고 바람도 불고 추웠다.

해가 쨍하게 나지 않아 걷기에는 좋았지만 모두가 옷깃을 여미어야 할 만큼 으슬으슬했다.

그래서 사진 속 일행들이 모두 몸을 웅크리고 걷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군데군데 해파랑길 스티커와 리본이 있으므로 갈림길이 나오면 확인하고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다.

올레길 이정표나 리본만큼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자꾸 보고 확인하며 걸으니 종국에는 약 2백 미터 전방의 리본도 보이기 시작했다.



까리따스 요양병원, 속초 카페거리, 바다정원카페를 지나 차로로 나와 걷다 보면 설악산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물이 바다로 흘러나가는 용촌천을 만난다.

분명 육지에서 나오는 물들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것일 텐데 물은 서로를 보듬 듯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드나들며 교류한다.

냇물과 바닷물 하는 짓이 꼭 우리 사는 모습처럼 애달프다.



용촌교를 지나면 바로 우측으로 난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표지판이 해파랑길 스티커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보인다.

이 길을 걸으며 종종 마주하게 되는 표지판이기도 했다.

고요하고 한적한 자전거길을 조금 걸으면 동해바다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걸을 수 있다.

'이런 길만 계속되면 좋겠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에 와 엉겼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기에 가질 수 있는 바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캔싱턴 리조트 앞 해변은 투숙객을 위해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여덟 마리의 곰을 만날 수 있는데 개중 제일 마지막에 있는 [별이 빛나는 밤] 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천진해변까지는 아직 3월이라 그런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조금은 스산하게 느껴졌다.

대신 사람이 많지 않아 고요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천진항을 지나 두 번째 바다로 흘러가는 물길 천진천을 마주하게 된다.

청간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물색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물에 비친 소나무는 더 푸르게 보였다.


산을 올라야 하는 사람들이 걷는 길에 동행해서였는지 일행들은 자꾸만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산악인의 본능(?) 같은 것일까?

걸어야 하는 내 눈에는 리본만 보였는데 올라야 하는 그들에게는 언덕 위 정자 청간정이 보였던 것 같다.

그냥 가자는데도, 그 길이 아니라는데도 끝내 청간정에 오른 일행들 덕분에 나는 밴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점심 먹을 타이밍을 넘겨 허기진 남편은 비상식량을 꺼내 다시 걸을 힘을 비축했고.



그러는 사이 일행은 낮은 정상을 찍고 즐겁게 내려왔다.

잘 만들어진 데크길을 걸어 다시 바닷가로 왔고 청간 해변을 지나 아야진 인근에 도착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한 40년 전통의 회냉면집 [오미냉면]이 바로 이곳 아야진에 있다.

모두 배 고팠는지 걸음이 바빠지는 걸 느꼈다.

"여기서 3분이래."

작은 소리로 남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니 남편은 큰 소리로 모두에게 빠른 전진을 독촉한다.

그러니 회냉면의 맛평가는 접어두는 게 맞지 싶다.

이리 배고파 먹었으니 뭔들 맛이 없을까.

그래도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손님이 많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유명한 집은 맞는 것 같다고 말해본다.



밥과 약간의 반주에 힘입어 다시 출발하는 발걸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절반은 왔다는 것에 이제 왔던 만큼만 더 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예정보다 빠른 완주가 가능하겠다는 계산도 섰다.

아야진은 탁 트인 바다뷰가 멋있었다.

그래서인지 카페와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카페 안 그들이 바다를 구경하는 건지, 카페 밖 우리가 그들을 구경하는 건지 헷갈린다는 생각도 했다.

카페 안에 있을 땐 '왜 저리도 힘들게 걷나.' 했는데 카페 밖에서 걷고 있으니 '폼 그만 잡고 좀 걷지.' 싶었다.

사람이 이래서 참 간사하다.



아야진을 빠져나와 교암리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드디어 우리는 산(?)을 발견했다.

아니 언덕을 발견했다고 해야 하나?

소나무가 우거진 숲을 보자 모두가 웃음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드디어 산이다."

산은 산인데 정말 낮은 산이었다.

하지만 이 산을 오르며 이런 말도 나왔다.

"이거 둘레길인데 산이 너무 높은 거 아냐?"

내가 한 말인지 남편이 한 말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한 건데 약간의 진심도 들어있었다.

진입로 경사가 생각보다 가팔랐던 탓이었다.

그렇게 낮은 동산의 정상에 오르니 세상 멋진 소나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대체 수령이 얼마나 된 나무일까 궁금할 만큼 굵은 소나무였다.

단체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데 성질 급한 남편은 벌써 하산하고 없었다.

사진에 안 나온 사람은 중도 포기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교암해변을 지나 백도해수욕장까지는 아직 철을 만나지 못한 스산한 바닷가였다.

펜션들이 많았지만 모두 낡고 허름했으며 폐업한 곳도 많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둔 펜션인데 뷰가 참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백도해수욕장을 지나 잠시 바다와 작별했다.

마을길로 접어드니 문암리유적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유적이 발견된 곳이니 무단경작을 금한다는 표지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대체 어떤 유적이 나왔을까 궁금했다.



목적지까지 약 1.5km를 남겨 둔 자작도 해수욕장 인근에서 우리는 드디어 카페에 들어갔다.

오는 동안 뷰 좋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참 많았는데 가야 할 길이 있으니 쉽사리 발길이 향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완주가 코앞이라 생각하니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전망도 좋고 카페도 예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역시나 카페 안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따뜻한 라떼를 마셨다.

산악회의 나아갈 길에 관하여 열띤 토론도 하면서.



그렇게 쉰 덕에 또 마지막까지 힘껏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삼포 해변에 이르러서는 어찌나 열심히들 걷던지....

군대 행군인 줄.

출발 전 미리 가져다 놓은 차량으로 집결하니 딱 오후 5시였다.

11시 40분에 출발해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었는데 5시 도착이면 5시간 20분 소요된 거다.

순수하게 걷는 데에만 소요된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라고 보면 되려나?

허걱!

정말 빠르게도 걸었나 보다.

추운 날씨가 한몫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도착지에서 또다시 인증샷을 남기고 차량을 이용해 출발지로 다시 고고씽.

어찌 되었든 그리 오래 걸려 걸어온 구간을 딱 15분 만에 차로 이동하니 늘 그렇듯 참 허무하다.

그나마 일행이 있어 차량이동이 가능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버스로 약 50분을 달려야 도착했을 것이다.

가자미매운탕이 맛있다는 식당으로 이동해 저녁식사를 하고 오늘의 걷기를 마무리하였다.



옷깃을 여미며, 추운 날씨에 여유롭게 쉬지도 못하고 걸었지만 소소하게 나눈 대화들이 좋았던 걷기였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로, 전체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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