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둘레길 천아숲길]
천아수원지 ~ 돌오름
총 8.7km
약 3시간 소요
2022년 10월 21일(금) 맑음
제주도는 1년에 최소 한 번, 최대 세 번은 가게 되는 참 좋아하는 섬이다.
처음 제주도에 갔던 건 내 나이 서른, 결혼하고 큰 애가 백일 도 안 되었을 때였다.
시부모님과 함께, 시누 부부와 함께 갔던 여행이었는데 난 내 스타일대로 아주 빡빡하고 알찬 계획을 잡았다.
기상은 매일 6시였고,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은 매일 저녁 8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체력을 배려하지 않은 혹독한 일정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간 20회 이상 제주도에 갔다.
한 번의 여행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해외로 가고 싶은 바람을 충족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보상심리가 자꾸만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도록 끌어당겼던 것 같다.
지금은 코로나로 발이 묶여 제주도로 향하는 형국이지만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주를 찾는 이유는 변하지 않았다.
매번 제주에 갈 때마다 나는 가보지 않았던 곳을 여행계획에 넣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피하고 로컬들만 아는 곳을 찾아가는 게 목표였지만 내가 갔을 때는 이미 관광객들에게 다 알려진 후라 늘 취지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이따금은 성공적이기도 했다.
마흔을 넘기면서부터는 여행지도 여행지지만 맛집과 감성 카페를 찾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제 내 체력이 오래전 부모님 체력만큼이나 바닥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맛집과 카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상대적으로 아름다운 섬 제주의 풍광은 자꾸만 쪼그라드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제주도만이 주는 여행의 즐거움이 있으니 나는 제주도로의 회기를 계속해서 꿈꿀 거다.
서울 둘레길을 섭렵한 나는 한라산 둘레길도 욕심났다.
그 한라산 둘레길의 첫 코스로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는 [천아숲길]을 선택했다.
천아숲길은 천아수원지에서 돌오름까지 이어지는 숲길코스로 편도 8.7km, 약 3시간 소요되는 워킹코스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노로오름까지는 오르막이고 그곳을 기점으로 내리막이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나는 천아수원지 방면에서 시작했는데 계속 오르막이어서 출발지를 잘 못 선택했나? 후회했었다.
하지만 노로오름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걸 보며 알았다.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었다는 걸.
다만 편도가 3시간 거리이니 갔던 길을 되돌아가 주차한 차를 몰고 돌아가야 하는 게 문제였다.
서울의 둘레길은 어디서 시작하든 어디서 끝나든 버스나 지하철역이 가까워 집으로 돌아갈 걱정은 할 필요 없었는데 이곳은 상황이 좀 다르니까.
그래서 인터넷을 마구마구 뒤졌다.
다른 사람들은 이 멋진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주차한 곳까지 버스로 이동할 방법은 없나?
다행히 단 하나의 노선이지만 버스가 다녔다.
그래서 나는 버스 정류소와 아주 가까운 [천아숲길 입구] 인근에 주차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대신 약 2.2km, 35분가량을 걸어야 천아계곡, 둘레길 시작 지점에 도착한다.
길고 지루한 길이지만 조용하고 한적해 걷기 좋았다.
나중에 돌아와 자동차에 바로 오를 수 있다는 것에 위안 삼으며 긴 길을 즐겁게 걸었던 것 같다.
걷는 동안 천아숲길로 들어가는 차량이 제법 많았는데 히치하이킹의 유혹을 뿌리치느라 애를 먹었다.
손 든다고 태워줄지는 의문이지만.
그렇게 도착한 출발지점.
역시나 주차장이 많이 협소했다.
화장실도 썩 좋지 않았고.
여기서 우린 천아숲길 안내도를 사진으로 촬영해 걷는 동안 유용하게 썼다.
인증샷도 함께 찰칵!
주차장이 협소해 늦게 오면 자리가 없을수도 있을것같다.
한라산 둘레길 리본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분홍색이다.
제주도의 가을을 보려면 천아숲길을 걸으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 시월에 꼭 걷고 싶었다.
그리고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했다.
산과 숲이 정말로 가을로 깊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걷는 내내 수도 없이 많은 감탄사를 뱉어냈다.
어느 스포츠 의류 회사에서 해마다 연다는 하이킹대회와 맞물려 우리는 걷는 동안 돌오름 방면에서부터 걸어오는 많은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키보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걷기에 며칠간 숲에서 먹고자며 걷는 대회인가 보다, 상상했었다.
그러다 정말 궁금해진 우리는 지나는 사람 중 조금은 여유 있어 보이는 분께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밤 한라산 대피소에서 자고 오늘 아침 출발해 이 길을 걷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한라산에서 자다니, 정말 부러웠다.
산의 정기를 한 몸으로 받으며 즐긴 수면이 얼마나 좋았을까.
구간 구간 오프로드 가능한 도로들이 나타나는데, 오프로드를 허가한 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둘레길이라 만들어 놓고 큰 바퀴의 차들이 지나다니는 건 좀 위험했다.
피할 길도 없어 빠듯하게 지나가야 하는 구간들이었으므로 더더욱 그랬다.
평일이라 인적 없는 숲길을 참 고즈넉하게 걸었다.
평지만 있는 길이 아닌 고개와 내리막, 돌바닥과 흙바닥이 골고루 섞여있는 숲길은 한라산의 숲이라 할 만큼 아름다웠다.
보림농장에 도착하면 방향을 잘 잡아서 움직여야 한다.
계속 걸으려면 돌오름 쪽으로 가야 하고 우리처럼 버스로 출발지까지 이동하려면 나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작할 때처럼 이렇게 이정표가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어디로 가면 되는 지도 참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약간의 차도를 위험하게 걸어야 하지만 워낙 차가 안 다녀 걸을만했다.
그래도 인도가 따로 없는 길이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자주 있는 버스가 아니어서 버스 정류장에서 20여분을 기다려서 버스에 승차할 수 있었다.
굽이굽이 도는 도로라 걸어서 3시간 거리를 버스로 15분 정도 달려서야 출발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9시에 숙소를 나와 아침을 사 먹고 자동차로 이동해 천아수원지 도착 시간이 11시였다.
1시쯤 미리 사온 김밥과 사발면으로 점심을 먹고 귤도 몇 개 까먹은 뒤 출발했고 돌오름길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3시였다.
총 4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점심식사를 위해 보낸 시간은 고작 20여분이니 사실상 3시간 40분 만에 완주를 마쳤다.
물론 초입 35분이 포함된다.
그러니 안내대로 3시간 소요되는 숲길이 맞는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1100 고지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도 마시고 산책로도 걸었다.
제주도에 그렇게 자주 오면서 이곳에 들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도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언제 다시 걷게 될지 모를 한라산 둘레길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나이 더 들기 전에 꼭 와야 할 텐데.... ^^
23년 가을에 도전하기로 잠정 계획해 본다.
<22년 가을에 다녀온 것을 이제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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