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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Sep 0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8 - 흐르는 시간

2023년 7월 9일 일요일


 오늘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어제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친구를 만난 일 마치 꿈만 같았다. 출발하기 전에 빠진 건 없는지 확인을 하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건강검진 결과지를 훑어봤다. 뇌파 결과지를 보면서 처음에는 이런 걸 언제 검사했나 싶었다가 꾸벅꾸벅 졸면서 검사를 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결과지를 보니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두뇌활동정도와 스트레스 지수로 두뇌활동은 과부하가 나오고 스트레스 정도는 높음으로 나왔다. 웃긴 건 그와 반대로 맥파 측정 결과에서는 신체활력도가 활력으로 나오고 누적 피로도도 정상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뇌파는 스트레스가 가득한 채로 나오고 맥파는 그 누구보다 건강하게 나왔다. 너무나도 상반된 결과에 황당한 나머지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었다.


 일단 보고 있던 결과지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집을 나섰다. 병원에 가기 전에 부산에서 친구들과 잠시 만나 점심을 먹기로 해서 갈길이 바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병원에 있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는 것 같다. 분명 친구들을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한 달이 훌쩍 흘러있었다.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흐르는 것 같다. 다른 상황 같았으면 싫을 법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간이 빨리 가는 게 좋다. 그래야 이 순간도 빨리 지나갈 테니 말이다.


 친구들과 만나 첫끼부터 삼겸살을 먹으면서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당장 다음 주에 여행을 가야 하는데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은 걸 봐서는 비를 뚫고 가야 할 수도 있겠다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걱정만 할 뿐 어떻게 돼도 갈 애들이었다. 병원에만 있다가 갑자기 나와서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상황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왠지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친구들과는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친구들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정반대의 길로 향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롤러코스터에 탄 듯이 감정이 위로 올라갔다가 밑으로 내려갔다. 특히나  오늘 같은 날은 더욱 심했다. 바깥에서 자유를 누리다가 다시 병원으로 가야 할 때는 항상 다른 차원의 공간을 오가는 기분이 든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세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 순간에 바뀌어버린 세상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병원에 있는 삶이 진짜인 건지 바깥에서의 삶이 진짜인 건지 헷갈리며 그냥 모든 게 가짜같이 느껴졌다.


 예전보다 몸은 편해졌지만 생각이 많아져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두뇌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에 따른 조절은 필요하다고 생각힌다. 쓸데없는 잡념이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헤집어 놓을 때마다 기분도 같이 오르락내리락해서 괴롭기는 하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불쑥 나타나는 고민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떠오르는 생각에 잠겨서 힘을 쏟아붓다 보면 그 뒤에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평범했던 삶이 어쩌다가 몇 주 아니 한 달에 한번 누릴까 말까 한 특별한 외출로 바뀌어 버린 것일까. 문득 이 모든 것을 놓고 떠나겠다고 말하면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일지 궁금해진다.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할까 아니면 안 된다고 할까. 불현듯 스치는 궁금증을 뒤로 한채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쯤에는 몇 년 만에 얼굴을 보는 친척들이 면회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낯선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나랑은 사촌이라고 하는데 태어난 지 백일도 안 지났을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어느샌가 6살이 되어 있길래 놀랐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져서 내 눈앞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쳤다면 모르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친척들도 오랜만에 만났더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면회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병원에는 나와 동생 둘만이 남겨졌다. 동생에게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냐고 물으니 좋았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친구들은 안 보고 싶냐고 물었더니 보고 싶다고 하길래 면회 오라고 할까라고 하니 동생다운 대답이 날아왔다.


“알아서 만날게.”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괜한 관심을 갖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게 너무 웃겼다. 그리고 동생에게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왔는데 어떴냐면서 평소와 많이 다르냐고 물어봤더니 내 얼굴을 보며 말한다.


“많이 다르지. “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하는 걸 보면서 인지가 확실하게 돌아왔음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친구들이랑 만나서 뭐 하고 왔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했더니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듯이 대답을 이어나갔다.


“나 친구들 만나고 왔는데 뭐 하고 놀다 왔게?”

“친구들 만나서 술 마셔”

“오? 어떻게 알았어?”

”뻔해. “


 병원에 있는 동생한테 때 아니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간파당했다. 뻔하다고 말하는 대답에 허를 찔렸다. 그래도 동생이랑 재미있는 대화를 하니 병원에 있는 것이 그렇게 괴롭지만은 않았다. 역시 장난치며 노는 건 어디서든 즐겁다. 다음 주 주말이면 또다시 나갈 수 있으니 동생이랑 놀면서 일주일을 견뎌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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