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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Oct 3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66 - 작은 행운

2023년 7월 17일 월요일


 어김없이 똑같은 아침이 맞이했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기분이 새롭다. 예전과는 다른 에너지가 감도는 듯하다. 새롭게 바뀌는 운의 전환점에 서있는 느낌이다. 며칠 전에 재미 삼아 샀던 로또 번호를 동생과 함께 맞춰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동생이 터무니없이 불러준 번호로 5등에 당첨됐다. 심지어 5줄을 전부 같은 번호 넣어서 25,000원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조그마한 행운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산책을 2번이나 다녀왔는데도 컨디션이 좋을 정도였다. 심지어 무슨 날인가 싶을 정도로 운도 따라 주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 갑자기 만두가 먹고 싶었는데 놀랍게도 만두가 생겼다. 점심시간에 같은 병실을 썼던 아주머니가 뜬금없이 동생이랑 나눠 먹으라며 검은 봉지를 내 손에 쥐어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봉지를 열어봤더니 그 안에는 만두가 들어있었다. 그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으로만 했던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요즘 신체적으로 많이 지쳤다는 게 느껴질 무렵 이런 소소한 이벤트가 생겨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지루하고 새로울 것 없는 메마른 삶에 한줄기의 소나기가 내린 듯하다. 다른 날도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 괜히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무거운 것보다 뭐든 가볍게 해야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글을 미룰 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자책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글을 매일 쓸 정도로 매번 일상에서 특별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방향을 어떻게 다시 잡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매일 발행하던 글을 중단해 보았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몰입을 하느라 버겁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미뤄놓은 일기가 한구석에 쌓일 때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기록하겠다는 작은 다짐이 어느새 의무가 되면서 부담감을 안고 쓰다 보니 숨이 막혔다. 나의 감정과 마음을 조절하기 위해서 시작한 글쓰기가 점차 버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깨우쳤다. 동생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나를 챙기는 일이다. 내가 건강해야 동생을 돌볼 수 있다. 한꺼번에 벌려놓은 일을 처리하려고 하다 보니 지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투병 생활은 장기전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동생을 챙기는 것과 함께 나를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며 버텼다. 지금은 동생 하나를 챙기기도 벅차서 나까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은 내가 지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뎌졌다. 해탈을 넘어서 세상 모든 것에 무미건조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하던 것을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생각을 정리하는데에 좋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조절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 좋은 것도 과해지면 좋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처음으로 글을 매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아무 생각 없이 일찍 잠들었다. 내가 책임을 지고 다 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서 그런지 나를 억누르고 있던 중압감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 오늘부터 앞으로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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