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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Nov 0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67 - 비 오는 날의 행복

2023년 7월 18일 화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병실이 어둑어둑하다. 창밖에서는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날씨가 흐리면 환자들의 기분 상태도 같이 가라앉는다는데 다행히 동생의 컨디션은 좋아 보인다. 나 또한 어젯밤 일찍 자서 그런지 쌓인 피로가 조금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는 새벽 1, 2시에 자고 오전 6시 반에 일어났더니 항상 피곤한 상태였다. 그리고 간이침대는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러니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없어서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기는커녕 몸이 찌뿌둥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오래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 문제 없이 재활을 끝내고 쉬는 시간이 돌아왔다. 그런데 비가 와서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병원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복도 창가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창 밖만 구경하고 있다. 날씨가 이러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매한가지라서 모두 비구경만 하고 있다. 쉬는 시간에 딱히 할 것이 없는 우리도 창가에 가서 빗소리를 들으며 구경을 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산을 아무리 똑바로 써도 어디서 불어올지 모르는 비바람으로 옷이 다 젖어버리고  물웅덩이를 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실내로 들어갈 때마다 물기로 젖은 우산은 들고 다니기 번거롭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양손의 자유에서 한 손의 자유를 잃게 되는 게 제일 불편하다. 그랬던 내가 비가 내려도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 비가 올 때는 출근을 하는 것도 걱정이고 퇴근을 하는 것도 걱정이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고민이 필요 없으니깐 말이다.


 그저 평온한 마음으로 비구경을 하면 된다. 밖에 나가지만 않는다면 젖을 일도 우산으로 한 손의 자유를 잃을 일도 없다. 거센 비바람으로 시끄러운 바깥세상과 다르게 이 안은 고요하다. 오히려 비 내리는 풍격을 보면서 속이 뻥 뚫리는 이 기분은 뭘까. 한 번씩 묵혀 있던 것들을 싹 쓸어 버려야 할 때가 있는데 모든 걸 다 쓸어가는 비바람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비 오는 날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점심 때는 밥을 다 먹은 후 동생에게 과자를 먹자고 말을 꺼냈다. 일단 동생을 침대에 앉혀두고 뒷정리를 시작했다. 점심약을 먹이고 어질러진 주변을 정리하다가 문득 옷장에 붙어있는 거울을 봤다.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니길래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거울을 보니 동생이 입을 벌린 채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동 없이 뚫어져라 시선을 내쪽으로 고정하고 있길래 당황해서 물었다.


“날 왜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뭐 불편한 거 있어?”

“아니. 과자 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동생의 말에 당황했지만 이 상황이 그저 웃겼다. 과자를 주겠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게 대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기새가 어미새를 기다리는 마냥 빼꼼히 고개를 들고 쳐다보고 있는 모습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과자가 먹고 싶어서 나를 그렇게 애타게 쳐다봤던 거야?”

“어.”


 내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동생을 보는데 왠지 모를 순수함이 느껴져서 귀여웠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용건이 있으면 부르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동생 덕분에 배 아프게 웃었다. 이렇게 소소하지만 작은 즐거움이 지루한 병원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때론 힘이 빠지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항상 불행하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것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불행을 찾을 수도 있고 행복을 찾을 수도 있다. 원래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했다. 지금 여기에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 있는 동생과 나는 일류가 아닌가 싶다. 지금 동생과 나는 우리만의 즐거운 놀이를 찾으면서 각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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