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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ug 2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6 - 건강검진 전날

2023년 7월 7일 금요일


 내일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예정이라서 점심 이후부터 금식을 해야 한다. 대장 내시경과 위 내시경도 함께 진행할 거라 3일째 카스테라와 두유만 먹고 있었다. 쓸데없이 투철하게 준비를 해서 그런지 오늘만 해도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려야 해서 괴롭다. 관장을 하기도 전에 이미 몸속에 있는 것들이 비워지는 느낌이다.


 해당 연도가 됐을 때 기본적인 검진은 항상 받아왔었는데 종합건강검진은 4년 만이다. 엄마는 대장 내시경을 받기에는 나이가 어려서 굳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23살에 위 내시경을 진행했는데 용종이 발견돼서 제거를 한 이력이 있던 터라 어리다고 멀쩡하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생의 일로 인해 나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질병은 나이를 불문하고 찾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이 질병 발생 확률이 낮을 뿐이지 그게 안심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일단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위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고 대장도 딱히 기대는 없다. 오히려 생활습관을 봐서는 건강 상태가 좋게 나오는 게 더 이상할 것 같다. 그래도 괜히 결과를 모르고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좋든 나쁘든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유난스럽다고 할 정도로 준비사항을 엄수했다. 씨가 있는 과일, 견과류, 섬유질이 있는 음식들은 검사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들을 피했더니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밍밍한 것만 먹다 보면 자극적인 음식이 생각나서 힘들다는데 나는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전부터 입맛이 없었던 터라 이참에 디톡스를 한다는 생각으로 카스테라랑 두유만 먹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동생은 밥을 먹고 후식으로 카스테라까지 뺏어 먹는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라고 말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게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그런데 같은 빵을 먹은 동생은 멀쩡한 걸 보니 오늘 아침에 마신 두유가 문제였던 건지 장난 안 치고 화장실만 4번 넘게 왔다 갔다 했다. 저녁에 집에 가서 관장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냥 오늘은 화장실만 갔던 기억밖에 없다. 퇴근을 하고 나와 교대를 해주러 온 엄마는 약을 먹으면 하루종일 화장실에 있어야 한다고 겁을 줬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관장약 없이도 내시경을 할 준비가 다 된 상태였다.


 주의 사항을 읽었을 때 약은 검사 전날 저녁 7시부터 복용하라고 했지만 집에 도착하니 8시쯤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복용 지시에 따라서 대장하제를 마셨다. 약간 느끼한 레모나 맛이었는데 생각보다는 먹을 만했다. 다만 레디프라산을 500ml씩 제조해서 30분 안에 15분 간격으로 마셔야 되는 게 번거로웠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건 칼같이 지키는 편이다. 그렇게 1500ml를 시간에 맞춰 3번 나누어 마시고 저녁 9시 반에 물 500ml까지 추가로 마시고 끝이 났다.


관장약을 복용했지만 이미 예상했던 대로 관장을 하기도 전에 자연적으로 관장을 해서 그런지 엄마가 겁을 줬던 것보단 별 거 없었다. 그냥 잠들기 전 화장실은 한 3-4번 정도 간 정도랄까. 그런데 오전 5시에 일어나서 한번 더 약을 복용해야 한다. 이미 시계는 12시를 향하고 있어서 5시간도 못 잘 것 같다. 물론 검사를 받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건 그 어떤 때보다 깨끗한 상태로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잠까지 반납하고 하루동안 무려 10번 가까이 화장실을 갔으니 말이다. 이로써 건강검진을 받을 준비는 완벽하게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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